문화/생활
지난 3년간 한국 재정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왔다. 2023년과 2024년 연속으로 발생한 대규모 세수 결손은 국가 결산을 통해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며 이는 단순히 장부상의 숫자를 넘어 국가 운영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흔들었다. 감세 기조가 초래한 반복적인 세입 부족과 재정 불용의 상시화는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렸고 정부 정책이 계획대로 집행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재정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정부 정책의 신뢰도이자 경제 주체가 미래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되기에 세입 기반이 흔들리면 정책의 지속가능성도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어두운 터널 지나 구조 개혁의 길로
이러한 위기 국면 속에서 지난해 6월 출범한 이재명정부의 재정 운용 방향은 명확했다. 무조건적인 지출 확대나 급격한 긴축이 아닌, 효율과 예측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스마트한 적극재정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2025회계연도 결산 결과는 이러한 기조 변화의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준다. 총세입은 597조 원대 수준으로 관리되었고, 국세 수입은 추경 전망치를 웃돌며 3년 만에 세수 결손의 늪에서 탈출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세출 집행률은 최근 5년 중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불용액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숫자의 반등보다 중요한 것은 계획과 현실의 간극이 좁혀지며 재정이 비로소 정책의 신호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세입 경정에 따른 착시효과를 지적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이는 오히려 재정 정상화를 향한 정직한 출발점이라 평가할 수 있다. 과도하게 낙관적인 전망을 고집하기보다 경제 여건을 반영하여 전망을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세수 오차를 줄이려는 보수적 접근은 단기 성과를 작아 보이게 할 수 있으나 장기적인 신뢰를 회복하는 핵심 조건이 된다. 실제로 코로나19 시기 급등했던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점진적으로 축소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국가채무 증가 속도 역시 둔화되는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결산 숫자 맞추기가 아니라 오차율 자체를 낮추려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본격화됐음을 의미한다.
재정 정상화의 다른 한 축은 지출의 질적 개혁에 있다. 정부는 방대한 재정 사업을 전면 재점검하는 통합 성과평가 체계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수천 개 사업을 대상으로 필요성, 계획의 적정성, 집행 효율성, 성과 달성도를 다층적으로 평가하고 결과를 차기 예산 편성에 직접 연계하는 방식이다. 특히 민간 전문가와 시민사회 참여를 확대해 부처 스스로 매기는 성적표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낭비와 비효율을 국민 눈높이에서 투명하게 드러냈다. 평가 결과가 감액이나 폐지로 이어질 경우 부처가 이를 뒤집어 다시 예산을 요구하려면 구체적 사유를 공개해야 하는 환류 장치는 관성적 증액의 문을 닫고 성과 중심 편성의 문을 여는 제도적 혁신이다.
스마트재정의 조건은 덜 쓰기보다 제대로 쓰는 것
적극재정의 시대일수록 이러한 장치는 더욱 중요하다. 스마트재정은 무조건 덜 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쓰는 데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성과가 낮은 곳을 과감히 걷어내면 그 재원은 취약계층 보호, 지역 격차 완화, 미래 신산업 전환, 인구 및 돌봄 과제처럼 긴 호흡이 필요한 국가적 난제에 더 많이 투입할 수 있다. 총지출 규모를 기계적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재원이 정말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도록 설계하는 정교한 재배치의 기술이 핵심이다. 이러한 재배치는 이해관계자의 저항을 수반할 수밖에 없으나 객관적인 데이터와 성과를 바탕으로 국민을 설득할 때 비로소 강력한 추진력을 얻는다.
거시경제 환경도 수출 회복과 기업 실적 개선을 통해 정상화 노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은 호황을 전제한 낙관이 아니라 단기적 경기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재정 운용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다. 세입 측면에서 기업 이익과 자산시장 등 변동성이 큰 요인을 촘촘히 분석하고 행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결합하는 디지털 추계체계를 갖춰야 한다. 특히 자산시장의 급격한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데이터 시스템의 고도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추계가 반복적으로 빗나가 예산이 매년 추경에 의존하면 정책의 신뢰는 약해진다.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세입 분석 기능을 강화하는 것은 편성 단계에서부터 흔들림 없는 재정으로 나아가는 필수 과정이다.
재정 정상화는 화려한 선언이 아닌 제도적 혁신과 투명한 소통으로 완성된다. 기금과 특별회계를 포함한 재정 전체의 그림을 국민이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비효율을 줄여 어디에 더 썼는지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 평가 결과가 예산서 부록으로 남지 않고 국회 심의와 대국민 보고까지 이어질 때 성과 평가의 신뢰도도 커진다. 무엇보다 정치적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원칙을 유지하는 정부만이 재정 운용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적극재정과 건전재정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성과 중심의 구조 개혁이 뒷받침될 때 두 목표는 상호 보완하며 국가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지금의 변화가 일시적인 반등을 넘어 구조적인 혁신으로 정착된다면 대한민국 재정은 양적 팽창을 지나 질적 도약의 길로 당당히 나아갈 것이다. 투명성과 원칙이라는 기본을 지킬 때 우리 재정은 비로소 진정한 정상화의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재정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설계도여야 하며 그 설계도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그것이 바로 터널을 빠져나온 한국 재정이 가야 할 진정한 길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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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