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L Express 물품을 오늘 업무시간 이내에 배송합니다.’ 한창 일하고 있는데 이런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환호했다. ‘꺄, 왔구나!’
몇 주 전 ‘본델스 암스테르담’이라는 네덜란드의 한 크리스마스 오너먼트(ornament·장식) 전문 업체에서 주문한 물품이 드디어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오늘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앙증맞고 눈부신 오너먼트가 택배 상자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긴 야근의 고됨이 조금쯤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연말이면 나는 홀로 은밀한 즐거움에 몰두한다. 집 거실에 할 수 있는 한 크리스마스트리를 크게 만들어놓고 여기에 형형색색의 장식을 달아놓는 일이다. 기왕이면 더 예쁘고 근사하게 만들고 싶어 매년 전 세계 온라인 쇼핑몰을 뒤져가며 독특한 오너먼트를 찾아서 사들이기도 한다.
이 오너먼트의 세계에 한 번 빠지면 대책이 없다. 개미지옥과도 같다. 본래 실용적이지 않고 부질없는 물건일수록 사치재(奢侈財)에 속하고 사치재일수록 가격 상한선이라는 것이 없는 법이다. 이 주먹보다 작은 크리스마스 장식품이라는 게 보통 장인들이 유리를 직접 입으로 불어가며 기본 틀을 만들고 그 위에 각종 물감과 깃털, 반짝이와 특수소재를 붙여가며 채색하고 모양을 만들어내는 만큼 생각보다 훨씬 값비싼 경우가 많다.
모양도 상상을 초월한다. 감자튀김, 햄버거, 조개 안에 든 굴, 무지갯빛 케이크, 금빛 스프링클(sprinkle)이 뿌려진 도넛 모양부터 발레리나 슈즈, 샴페인 병, 여권, 핸드백, 복고풍 타자기는 물론이고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나 찰스 3세 국왕,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모습까지 똑같이 재현한 오너먼트도 있다. 갖고 싶다고 다 가질 순 없다. 매년 뼈를 깎는 고심 끝에 서너 개 정도를 겨우 골라 사들이는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렇게 매년 야금야금 사들인 오너먼트가 모여 이젠 서랍장 한 켠에 제법 가득해졌다.
남들이 보기엔 대단히 부질없고 무용한 짓일 수도 있겠다. 남편도 매년 도착하는 오너먼트를 볼 때마다 “아, 이걸 또 샀어?”라고 묻곤 하니까. 보석처럼 사모은다고 재산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골프처럼 사교에 도움이 되는 취미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나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작고 반짝이는 장식들을 매달면서 깊은숨을 내쉬곤 한다. 아이와 깔깔 웃었던 기억, 아팠던 기억, 회사에서 상처받고 분노했던 기억, 남편과 서로를 다독였던 기억들을 모두 크리스마스 장식 하나하나에 걸며 길고 쉽지 않았던 한 해와 아름다운 작별을 한다.
누군가는 가상화폐를 사모은 덕에 행복하겠고 누군가는 알뜰살뜰 모아둔 주식이 벼락처럼 올라서 기쁠 수 있겠지만 내겐 크리스마스 오너먼트가 있다. 부질없을지언정, 무용할지언정, 작고 아름답고 반짝여서 그 자체로 충분한 것들이 세상엔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송혜진
장래희망이 ‘퇴사’인 20년 차 신문기자.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됐나 싶다가도 그래도 ‘질문하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종종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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