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체에서 혈액이 지나다니는 길, 바로 혈관이다. 도시에도 혈관이 있다. 바로 ‘도로’다. 혈액이 잘 순환해야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듯이 도시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 역시 도로에 달렸다. 최근엔 전기자동차나 자율주행차 같은 새로운 차량과 이동수단이 등장하면서 도로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어떤 기술이 도로를 어떻게 바꿔놓고 있을까?
도로 많으면 교통 원활? 교통량 줄이는 도로설계가 핵심
도로는 사람, 차 등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넓은 길을 말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차와 사람이 다니는 공간이 아니다. 다양한 장소와 사람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다. 도로를 통해 사람들은 여행을 하고 교역을 하고 전쟁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도로 활용이 많아지면서 교통체증 또한 심각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도로의 수를 늘리면 교통체증이 해소되지 않을까’하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독일 수학자 디트리히 브라에스가 제시한 ‘브라에스의 역설’에 따르면 도로의 수를 늘리거나 넓히면 교통체증이 더 심해지고 반대로 도로를 축소하거나 폐쇄하면 묘하게도 교통흐름이 빨라진다고 한다. 빠른 길이 새로 생기면 그곳이 잘 빠질 거라고 인식해 운전자들이 그 길로 몰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지난 10여 년 전부터 매년 하나 정도의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있다. 철거 전후의 차량 속도를 비교해본 결과 철거 뒤 주변 교통흐름이 좋아진 경우가 훨씬 많았다고 한다. 이는 ‘도로 다이어트’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징이다.
교통공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한 차선에서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자동차의 수는 시간당 1800대다. 자동차가 2초에 1대꼴로 지나가는 속도다. 최소 이 정도는 돼야 운전자가 앞차의 움직임을 파악하면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 이 이상 자동차가 많아지면 그 도로는 막히고 사고 위험도 높아진다.
실제로 도로에 차량이 늘면서 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사고 발생률을 줄이기 위한 과학적 원리가 도로에 숨어 있다. 그중 하나가 선(line)이다. 신호등이 필수인 도심의 도로는 보통 직선 위주로 설계돼 있다. 신호 연동이나 방향성에 직선도로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출발지와 목적지가 최단거리로 이어져야 이동 비용도 가장 적게 든다.
그런데 직선도로를 오래 달리면 운전자의 주의력이 떨어지고 지루함이 느껴져 졸음운전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고를 내기 쉽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이 때문에 직선 구간이 긴 고속도로의 경우 적당한 지점에서 완만한 곡선이 이어지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때 곡선 구간을 빨리 돌면 자동차가 원심력(물체가 원운동을 할 때 중심으로부터 바깥쪽으로 작용하는 힘)에 의해 도로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이 원심력에 저항할 수 있도록 곡선의 바깥쪽을 약간 높게 만들고 그래도 부족하면 마찰력이 큰 재료로 도로를 포장한다.
평평하게 보이는 직선도로에도 약간의 경사각이 있다. 도로 표면에 빗물이 남아 있으면 자동차가 미끄러지기 쉽기 때문에 빗물이 고이지 않도록 중앙선을 높이고 도로의 좌우를 기울였다. 세계적으로 직선도로의 좌우 경사는 운전자가 느끼지 못하도록 1.5~2%로 정해져 있다.
도로 상황은 우리의 삶과 직결된다. 대중교통 노선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매일 한두 시간씩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삶이 달라진다. 따라서 단순히 ‘살기 좋은 동네를 위해 도로를 넓히겠다’라는 식의 계획을 넘어 복잡한 교통량 문제를 예민하게 분석하는 기술을 적용한다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태양광 도로·폐플라스틱 도로·이산화탄소 분해하는 도로…
세계가 꿈꾸는 미래의 도로는 친환경 도로다. 그중 하나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전기차를 위한 무선 충전 도로다. 전기차를 몰고 도로 위를 달리기만 해도 배터리가 충전된다. 이미 스웨덴·미국·이스라엘·독일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1~2㎞의 짧은 구간에 무선 충전 패드를 설치한 전기 도로를 만들고 있다.
전기 도로는 보통 전자기 유도 방식으로 건설된다. 전자기 유도는 자기장의 변화로 전류가 흐르는 현상이다. 이를 테면 도로에 매립된 구리코일이 든 충전 패드에 전력을 연결하면 구리코일에 전류가 흘러 자기장이 형성되고, 전기차가 달리면 차 바닥 부분에 장착된 ‘전자기 유도 충전 수신기’가 전력을 공급받아 충전되는 원리다.
도로 전체를 태양광 발전소로 쓰는 나라도 있다. 최근 바르셀로나에는 스페인 최초로 태양광 포장도로가 깔렸다. 바르셀로나 글로리스 지역에 위치한 작은 공원에 설치된 50㎡의 태양광 전지판은 연간 7560킬로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도로를 포장하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폐플라스틱을 자갈과 섞어 170℃로 가열하면 자갈에 플라스틱이 코팅되는데 이를 아스팔트에 섞어 도로를 포장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환경을 파괴하는 아스팔트 사용량의 15%를 줄일 수 있고 골치 아픈 플라스틱 쓰레기도 처리돼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 셈이다.
캐나다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를 수산화칼륨 코팅 박막에 통과시켜 탄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기술을 개발해 시험 중이다. 이 박막을 도로에 깔아 차에서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도로에서 발생하는 자동차 배출가스가 사라지면 숨쉬기가 한결 편해질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시가 앞으로 시공되는 도로에 중온 포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중온 포장은 일반 아스팔트보다 약 30℃ 낮게 시공하는 방식으로 생산 온도를 낮추면 질소산화물 등 오염물질의 발생을 줄일 수 있다. 2027년부터는 모든 노후 포장 정비공사에 중온 포장을 적용해 친환경 포장도로를 만들 계획이라는 것이다. 우리 눈앞에 펼쳐질 친환경 도로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지 기대가 크다.

김형자
편집장 출신으로 과학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과학 칼럼니스트. <구멍으로 발견한 과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