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평소처럼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3만 피트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일몰이 시작되려 했다. 이날따라 일몰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다. 왠지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 무언가를 건드리는 듯했다.
해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할 때 하늘은 마치 거대한 캔버스처럼 색을 바꿔나갔다. 처음에는 따뜻한 오렌지빛이 번져나가더니 곧이어 붉은 장밋빛과 보랏빛이 물감을 쏟아부은 듯 하늘을 물들였다. 바로 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때의 감동을 제대로 담아내지는 못했다.
살다 보면 일상의 어느 순간이 마치 사진처럼 뇌리에 박히는 경우가 있다. 평상시 수없이 지나쳤을 광경이 갑자기 한순간에 빛나보이는 순간이다. 매일 지나치는 꽃이 어느 날 유독 더 예쁘게 느껴져 더 눈길을 오래 준다든지 저녁시간 붉게 물든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발걸음을 멈췄던 순간처럼 말이다.
그날의 일몰이 바로 그랬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마치 그날의 하늘이 내 마음의 아픔들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하늘과 태양, 그리고 구름이 만들어내는 빛의 조화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경이로웠다. 내 안의 복잡한 생각들이 차분히 정리되는 것 같았다.
비행기의 엔진 소리는 여전히 일정했지만 마음속에는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일몰을 바라보며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렸다. 지금 이 순간을 하늘에서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런 순간들이 내가 여전히 비행을 사랑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가족과의 일상 속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다. 아기가 꼬물꼬물 기어올 때 유독 사랑스러웠던 기억, 저녁식사 후 가족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웃음소리가 따뜻하게 들렸던 순간, 그리고 오랜만에 찾아뵌 부모님의 새하얀 머리카락에 새삼 마음이 숙연해졌던 기억.
태양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하늘이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며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그 뒤를 이어 밤이 천천히 다가와 하늘을 감싸안았다. 그날의 일몰은 내가 경험했던 수많은 비행 중 하나였지만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렇게 평범하지만 특별한 순간들이 우리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힘일 것이다.
원요환
프로N잡러 중동 파일럿. 국내 경제지 기자 출신으로 지금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민항기 조종사로 일하고 있다. 이외에도 작가, 리포터, 콘텐츠PD 등으로 활동 중이다.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구독신청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