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팀장 말고 선배로 제가 뭐 좀 여쭤봐도 돼요?”
몇 달 전 일이다. 친한 후배가 아이를 낳고 복귀하면서 나와 같은 팀의 팀원이 됐다. 복귀하기 전날 밤, 그가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럼”이라고 답했더니 후배는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물었다. “선배도 혹시 아이 낳고 처음 회사 출근하던 날 울었어요?”
“그럼, 울었지.” “정말요? 왜 전 몰랐죠?” “이런 일은 겪어보지 않으면 말해도 잘 모르니까, 내가 네게 굳이 말 안했을 거야.” “아… 저는 진짜 그동안 아이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 여자 선배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전혀 몰랐던 것 같아요.” “아이 두고 나오는 첫날은 원래 불안해. 그래도 곧 적응할 거야. 걱정 마.”
전화를 끊고 나서 100일 갓 넘긴 아기를 떼어놓고 처음 회사를 출근하던 날 아침이 떠올랐다. 회사엔 어린이집도 없었고 친정 부모님이나 시부모님 손만 쳐다보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중국동포 이모님’을 모셔왔다. 아이를 이모님 품에 맡기고 “잘 부탁드릴게요”라고 말한 뒤 뒤돌아서는데 갑자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살겠다고 이 젖냄새 폴폴 풍기는 녀석을 떼어놓고 나오나, 그런 자책도 했던 것 같다.
자다 깨면 새로운 저출생 정책이 쏟아져나오는 세상이지만 정작 갓난아이를 두고 출근길을 나서는 직장 여성의 고충을 이해하는 내용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핵심은 출근하고 일하면서도 아이 걱정을 덜할 수 있어야 하는 데 있는데 말이다.
일터로 돌아온 후배는 예전처럼 씩씩하게 일하는 중이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일을 잘하고 싶어서 조바심을 내는 것이 보인다. 그러다가도 간혹 회의하다가 잠깐 전화가 걸려올 때, 미팅 중 슬쩍 나갔다가 돌아올 때 눈시울이 얼핏 붉어진 것이 보인다. 그때마다 “아이가 혹시 아프대?” “남편이 빨리 들어오래?”라고 물으면 화들짝 놀라면서 “어떻게 아셨어요?” 한다. 누가 워킹맘 티 낸다고 할까봐 차마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을 것이 뻔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한창 일할 나이에 어쩌다 육아도 같이 시작하게 된다. 직장에서 일로 쭉쭉 뻗어나가도 모자랄 시기인데 아이 키우는 것도 그 시기가 제일 힘들고 치열하다. 잘나가던 여성 동료들의 무릎이 꺾이는 것도 이때쯤이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관두는 후배도 여럿 봤고 육아 때문에 동료에게 밀리는 게 분하다며 가슴을 치는 경우도 종종 봤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은 내 입장에서 그나마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래도 이 시기는 지나간다는 것, 회사 생활은 장기전이니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후배에게 이런 말을 구구절절 다 하는 건 좀 낯간지럽다. 이럴 땐 그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애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일찍 가야 하면 대놓고 말해도 돼. 부장에게 말하기 어려우면 그냥 내게 말해. 팀장은 뒀다 국 끓여 먹으려고?”
송혜진
장래희망이 ‘퇴사’인 20년 차 신문기자.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됐나 싶다가도 그래도 ‘질문하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종종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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