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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인구는 2020년 기준 3738만 명이다. 그중 대기업 고용인원은 170만 명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대기업 못지않게 대기업에 속하지 않은 3500만 명의 생산인구가 얼마나 부가가치를 생산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난 30년 동안 대한민국 부모의 높은 학구열과 정부의 공교육 지원 정책은 ‘잘 배운’ 이들을 우리경제의 중심축으로 키워냈다. 지식으로 무장한 작지만 강한 매력있는 소상인, 즉 매력소상들이 우리 경제의 성장판을 키워낸다면? 대한민국은 ‘모두가 함께 잘사는 나라’에 성큼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매력소상 전성시대’는 변화라는 파도를 자기만의 매력으로 타고 넘는 작지만 강한 기업의 이야기를 발굴해 전한다
빵사장이 된 빵덕후, 훕훕베이글 박혜령 대표
“일하는 날 대부분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직접 매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고객의 피드백을 굉장히 빨리 접할 수 있어요. 매일 아침 오리지널 베이글 한 개를 사가는 분이 계셨어요. 여섯 살짜리 아이가 여기서 파는 빵 아니면 안먹는다고 하시더라구요. 빵의 맛을 알아주는 것도, 일부러 가게에 들러주시는 것도 감사해서 행복했습니다.”
“요즘에는 고객의 의견을 듣는 채널이 달라졌어요. 인스타그램이 고객들과 주요한 소통 통로가 됐거든요. 최근 편의점을 통해 신제품을 출시했는데 판매 첫날부터 우리 빵 소식이 굉장히 많이 올라왔어요. 직원들 모두가 볼 수 있어서 피드백을 보며 제품에 대한 개선사항을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어요.”
매력소상이 만족시키는 고객은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우리 브랜드를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한 사람’이다. 매력소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우리 브랜드를 좋아해주는 고객’과 나누는 소통과 보람이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한다. 요즘 베이글 맛집으로 유명한 훕훕베이글은 취미로 구운 빵에서 시작해 전국을 향해 동심원을 넓혀가고 있다. 서울 홍대 앞 베이커리의 매대를 빌려 시작한 매장은 경기 광명시 직영 매장으로 바뀌었고 온라인으로 전국의 고객을 만나고 있다. 10년 전 혼자 시작해 현재는 파트타임 직원까지 40명이 넘는 대식구로 변했다. 훕훕베이글 박혜령 대표가 10년의 세월 동안 한결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빵을 만들 수 있었던 동력은 ‘우리 가족이 먹을 빵을 굽는다’는 마음이었다. 치솟는 물가에 맛집들도 문을 닫는 시절에 훕훕베이글은 어떻게 전국구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무식할 정도로 우직하게 기본에 충실하되 대기업과 플랫폼의 영향력을 지렛대로 활용한 것이 그 비결의 핵심이었다.
매력소상의 시작:
빵덕후에서 빵가게 사장으로
박혜령 대표는 창업 전 디지털 광고대행사 직원, 마케팅 회사의 컨설턴트, 대기업 신규사업 개발 담당자를 거치며 5년 동안 마케터로 일했다. 그 과정에서 큰 비용을 내고 컨설팅을 받은 기업들이 실행까지 못 가거나 컨설팅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것을 목격했다.
“왜 다들 하다 말지?”
“우리가 컨설팅했던 건 어디로 날아가고 저런 결과물이 나온 거지?”
컨설팅 결과가 왜 작동하지 않는지는 대기업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큰 조직의 한계와 실무자의 꿈이 좌절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창업이라는 정박지를 만나게 됐다. 호기심을 동력 삼아 궁금한 것들에 대한 답을 찾아간 결과였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빵을 좋아했던 박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빵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겉으로 보기엔 똑같은 빵이라도 재료에 따라 질이 정말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빵 만들기 매력에 빠져 지내다 베이글을 만났다. 베이글은 밀가루, 물, 소금, 설탕, 이스트 딱 다섯 가지 재료로 만드는데 맛이 좋고 장비도 간단했다. 베이글에 관심을 갖고 있던 박 대표는 일본 도쿄 ‘니시오기쿠보’라는 동네에 갔다가 줄서서 사먹는 베이글 가게를 발견했다. 그동안 알고 있던 베이글이 아니었다. 크림치즈, 크랜베리 등 베이글 속 생각지도 못한 재료들은 충격이었다.
“내가 아는 베이글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도쿄에서 돌아오자마자 레시피를 찾아내 밤새 베이글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또 궁금해졌다.
“도쿄의 베이글은 내가 만든 베이글과 맛이 다를까?”
그 맛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휴가를 내서 5일 동안 도쿄로 베이글 투어를 다녀왔다. 거금을 투자해 얻은 것은 ‘나도 맛있는 베이글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하루 종일 베이글만 굽고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고 주저하는 대신 실행해보기로 했다. ‘해보다 안되면 비싼 학원비 냈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홍대 앞 크루아상 가게에 매대 하나를 빌려 베이글 가게를 창업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놓은 돈 3000만 원 중 2000만 원은 창업에 투자하고 1000만 원은 망했을 때 버티기 위한 자금으로 남겨놨다. 베이글이 요즘처럼 인기를 얻기 전에 시작된 원조 베이글 맛집, 훕훕베이글의 시작이었다.
매력소상의 성장방정식 :
백화점, 마켓컬리, 편의점을 성장의 지렛대로
베이커리 한쪽 매대를 빌려 베이글을 팔면서 찐 팬(진짜 팬)을 만들기 위해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단골고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택배 주문도 증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립매장을 내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매장을 박 대표가 나고 자란 광명으로 옮겨보기로 했다. 분명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기심으로 시작 버튼을 눌렀다. 동네 장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으로 꾸준히 고객과 소통을 이어갔다. 백화점에서 러브콜이 왔다. 백화점 입점 결정의 이유도 호기심이었다. 백화점 매장은 뭐가 다른지 궁금했다. 입점 매장의 한계와 어려움을 알게 됐지만 광명 매장만으로는 접할 수 없는 고객을 만나게 된 것은 큰 소득이었다.
훕훕베이글이 전국구 베이글 스타로 등극하게 된 것은 마켓컬리에 입점하면서부터다. 마켓컬리는 꾸준히 브랜드를 키워온 훕훕베이글에 입점을 제안했고 박 대표도 새로운 플랫폼 입점에 호기심을 느꼈다. 마켓컬리에 입점할 당시만 해도 베이글이라는 제품의 종류가 많지 않았다. 훕훕베이글을 모르던 고객들은 맛 좋고 저렴한 훕훕베이글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켓컬리 고객 리뷰 1만여 개 중 95% 이상이 맛, 품질, 원재료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최근 베이글이 인기를 끌면서 매장도 경쟁적으로 늘고 브랜드도 많이 생겨났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베이글을 굽기 시작한 훕훕베이글은 해썹(HACCP: 식품 안전성을 확인해주는 인증)시설을 갖춘 공장이 있다. 해썹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 매출 수준에 해썹이 필요한가?”라는 내부 의견도 있었지만 박 대표는 이 산을 넘어야 또 다른 산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해썹은 매출 성장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훕훕베이글은 ‘베이글에 진심인 기업’이라는 것을 고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관련 제품들도 추가로 출시할 예정이다. 고객들이 더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채널도 계속 확장할 계획이다. 지난 1월 편의점을 통해 출시한 베이글 샌드 제품이 곧바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도 이런 계획에 힘을 실어줬다.
훕훕베이글은 베이글 시장을 개척한 덕분에 선발주자의 기회를 누렸다.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백화점에 입점해 브랜드 인지도를 넓혔고 대유행(팬데믹) 기간에는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매출을 키웠으며 편의점이라는 유통망을 타고 더 많은 고객을 만나게 됐다. 이 모든 것은 차근차근 실력을 쌓았기에 가능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은 판단력과 순발력 덕분이었다. 작고 탄탄한 매력소상의 경쟁력이다.
매력소상의 일 :
여전히 재밌지만 여전히 어렵다
박 대표는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대로 하면서 돈도 벌고 급여도 줄 수 있어 즐겁고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박 대표가 베이글을 만드는 기준은 ‘우리 가족이 먹는 빵’이다. 홍보, 마케팅에 쓸 비용을 아껴 최고의 재료를 골라 사용한다. 홍대 앞 매대를 빌려 빵을 굽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원칙이다. 훕훕베이글은 프랑스에서 수입한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한다. 유기농 우리밀을 써보기도 했지만 우리밀은 생산수량이 많지 않아 밀가루의 품질이 균일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수출되는 프랑스의 유기농 밀가루는 밀가루를 날려 떨어지는 속도를 체크할 정도로 품질관리에 철저하다. 좋은 원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거래선을 살펴볼 때마다 배우게 되는 것들이 많다.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주는 감동은 박 대표를 설레게 한다. 작은 도전을 통해 진보하는 과정도 그가 창업가로 살아가는 여정을 즐기는 이유 중 하나다. 예를 들어 터키에서 무화과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었는데 수에즈운하 사고가 나면서 제품 수급에 문제가 생겼다.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직접 수입 가능한 방법을 찾았다. 상사를 통해 터키 현지에 연락해 제품을 발주할 수 있었다. 이렇듯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면서 작지만 우리만의 성공사례를 쌓아가는 과정이 기쁘고 즐겁다.
하지만 직원들이 떠나갈 때마다 아픔도 받아들여야 한다. 창업 이후 한 번도 매출이 떨어진 적 없지만 훕훕베이글은 크고 멋진 회사는 아니다. 입사한 직원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새벽 출근과 육체노동이다. 현실에 실망하고 떠나는 직원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을 지켜주는 직원이 늘어가니 든든하다. 그만큼 책임의 무게도 크다. 선택의 리스크를 직원들에게 함께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직도 어려운 일이다.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직원들이 감당하게 될 어려움을 먼저 생각하고 제안한다. 회사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하려고 애쓴다. 이렇게 조심조심 쌓아올린 시간들이 훕훕베이글에 녹아 있다.
장영화 조인스타트업 대표
박스기사
훕훕베이글의 하루
오전 5시에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10년을 해온 일인데도 이불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다. 오전 5시까지 출근하려면 4시에는 일어나야 하니 훕훕베이글의 구성원은 미라클모닝(이른 아침에 일어나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직영 매장에 출고할 제품을 먼저 생산하고 마켓컬리 등 온라인몰 주문 건을 순차적으로 생산해 각 입고지로 출고시킨다. 11시쯤 생산이 마무리되면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다음날 만들 제품을 준비한다. 생산과정을 마치고 나면 모두 함께 1시간가량 청소를 한다. 식품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위생에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다. 오후 3시가 되면 생산팀 직원들은 퇴근하고 대표와 경영지원 부서는 생산 외 업무를 처리한다.
박스기사
훕훕베이글이 활용하고 있는 정부 지원사업
식품제조업 특성상 훕훕베이글은 청년층과 장년층의 구성이 많아 정부의 급여지원정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만 15~34세 청년들이 일정 금액을 매달 저축하면 정부, 기업이 금액을 함께 적립)를 활용해 직원들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고 제품포장 단계의 업무를 맡고 있는 장년층 채용에는 고용장려금을 활용하고 있다.
훕훕베이글은 돈을 버는 대로 공장 자동화를 위해 재투자하고 있는데 자동화 설비 마련 시 광명시 중소기업 육성자금을 활용해 저리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사업이 철강·제조업이나 정보기술(IT) 기업에 쏠려 있어 라이프스타일 관련 산업의 경우는 활용이 제한돼 있어 아쉬운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식품제조업체들이 현장에서 지켜야 하는 법적 수준이 매우 엄격한 편이다. 훕훕베이글은 깐깐한 법·제도가 식품사고를 막을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사후 규제 대신 전문가들이 주기적으로 현장실사를 나와 미리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돕는 부분은 우리 행정이 선진화됐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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