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청주시 수동 수암골목 1번지. 일명 ‘수암골’로 불린다.
우암산 서쪽 자락에 자리잡은 달동네다. 드라마 <카인과 아벨>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극중 초인(소지섭)과 영지(한지민)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터전으로, 애틋한 사랑이 싹튼 곳으로 소개됐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팔봉빵집으로 한번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드라마가 유명세를 타면서 마을을 찾는 관광객도 부쩍 늘었다.
수암골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마을이 가까워지면서 ‘카인과 아벨 촬영지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을 앞에는 차 5~6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입구에 ‘삼충상회’가 있다. 수암골에서 유일한 가게다.
담배와 음료수, 과자 등을 판다. 짙은 푸른색 페인트칠을 한 간판이 예쁘다. 빗물받이에도 꽃그림을 그려놓았다. 삼충상회 앞은 공터. 마을 사랑방 겸 회관 구실을 한다.


골목입구에 마을 지도가 그려져 있다. 지도를 보니 골목의 모양이 대충 상상이 간다. 골목은 밤톨처럼 생겼다. 찐빵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마을을 둘러싼 큰길이 있고 큰길 아랫부분에서 네 개의 골목이 갈래를 친다. 네 개의 골목은 마을 속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밭전자(田) 모양으로 나뉜다.
수암골은 원래 광복 후 일본과 중국에서 들어온 동포들이 터를 잡은 곳이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울산 23육군병원 앞에 천막을 치고 살던 피란민들이 청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커졌다. 수동이라는 지명은 옛날 수용소터를 가리키던 명칭이다.

“여기 흙으로 벽돌을 한 장 한 장 찍어 집을 지었지. 방 2개, 부엌 하나를 들였어. 그때 집을 튼튼하게 지었지. 판자로 얼기설기 엮은 집과는 달랐어.”
삼충상회 주인 박만영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집의 모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많이 바뀌었다. 전쟁이 끝나자 수암골에 자리 잡았던 피란민들 대부분은 수암골을 떠났다. 당시부터 살고 있는 가구는 몇 집 되지 않는다.
“다들 아들네, 딸네 집으로 갔어. 시내로 새집 사서 나간 집도 여럿 있고…. 지금 살고 있는 세대는 한 1백50여 세대나 될까? 빈집도 여럿 있구먼.”

물도 물지게로 져다 날라야 했고 연탄도 마을 아래에서부터 지게에 실어왔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도 공동변소를 사용했다.
“화장실 없는 집이 부지기수였지. 아홉 집, 열 집이 변소 하나를 나눠 썼는데 비가 오면 똥물이 또랑을 만들었지.”
6년 전 주택공사에서 번듯한 시멘트 공동화장실을 세워줬지만 화장실 문은 닫혀 있다. 전기세, 수도세가 많이 나오는 탓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쓸쓸한 달동네였던 수암골. 잿빛 시멘트 담을 두르고 슬레이트 지붕을 인 집들이 좁은 골목을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던 마을은 2007년 이후 달라졌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이홍원 화백을 비롯한 충북민족미술인협회 회원, 충북 민예총 전통미술 위원회 회원 작가, 청주대, 서원대 학생들이 ‘추억의 골목 여행’이라는 주제로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벽화를 그렸다.
무채색의 스산한 골목은 각종 그림으로 꾸며진 산뜻한 골목으로 재탄생했고 벽화골목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카메라를 든 네티즌들이 하나둘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라마 <카인과 아벨>과 <제빵왕 김탁구> 촬영 이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사진동호인들이 몰려든다. 요즘에는 일본인 관광객도 알음알음 찾아온다고 한다.

수암골은 작다. 느긋하게 돌아보아도 20~30분이면 충분하다. 지도가 그려진 길을 지나 골목길을 올라가면 벽화를 하나둘 만날 수 있다. 연꽃이 그려진 벽, 익살스러운 호랑이가 그려진 벽, 암탉이 병아리를 데리고 가는 그림이 그려진 담장도 있다.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고, 시원한 바다가 그려진 담장, 발레리나가 그려진 벽도 있다.
꽃잎이 새겨진 계단은 통째로 들어내 가고 싶을 만큼 예쁘다. 녹슨 철대문과 쓰러질 듯 서로 기대 선 담벽들, ‘근면·자조·협동’ 표어 따위들이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길은 어떻게든 서로 만난다.

굳이 벽화가 아니더라도 수암골 골목길 풍경은 놀랍다. 전깃줄 수백 가닥이 얽히고설킨 전봇대가 서 있고 사람 한명이 지나기에도 힘겹게 보이는 좁은 길도 있다. 집 앞에는 파와 상추를 심어놓은 화분이 놓여 있다. 화분도 알록달록하게 색칠했다.
대문 너머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골목 담벼락에는 양철 보일러 환기구가 버젓이 드러나 있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아이가 골목길을 뛰어간다.


전망도 참 좋다.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청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공터가 자리하고 있다. 공터에서 마을 쪽으로 내려오면 예쁜 골목과 만난다. 계단에 빨간 꽃그림이 앙증맞게 그려져 있고 벽에는 발레리나가 그려져 있다. 발레리나의 표정이 평화롭고 다정하다.
금방이라도 춤을 추며 골목으로 내려올 것만 같다.
저녁이 되면 수암골은 부산해진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골목으로 나온다. 줄넘기를 하고 배드민턴을 친다. 된장찌개 끓이는 냄새가 퍼진다. 주민들은 골목에 내놓은 평상에 앉아 텔레비전을 본다. 그 옛날 흑백텔레비전이 처음 나왔을 당시의 풍경을 보는 것 같다.
“여기가 수암골 극장이오. 상영시간은 해질 때부터 밤 10시까지.
저기 시내에 보이는 ‘대한생명’ 간판이 딱 10시에 꺼지거든. 그때면 텔레비전 끄고 자러 들어가요.”
드라마를 함께 보며 삶은 고구마를 나눠 먹는 모습이 마냥 정겹다. 하지만 수암골 주민은 밤 9시 이후 골목 투어를 정중히 사양하니 참고하자.
글과 사진·최갑수 (시인ㆍ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