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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갱깨깨 깽깽깽깽’ ‘덩덩 덩더쿵 더러러러’. 지난 9월10일 오전 10시, 장터에는 ‘버꾸농악’이 터졌다. 상쇠 윤도열(70) 씨가 선창하듯 꽹과리치며 지휘봉을 올리자 선북 오권안(65) 씨가 북소리 장단으로 뒤를 받았다. 기다렸다는 듯 농악대의 장구와 징소리가 휘몰이 장단을 척척 맞춰 가며 빠르게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귀가 멍멍해졌다. 어깨춤이 절로 난다.
우리 옛 장터는 원래 이처럼 요란한 풍악으로 먼저 분위기를 돋웠다. ‘꽝!’ 하는 뻥튀기 소리도 요란하다. 고소한 ‘튀밥’ 냄새가 시장 안에 그득 번진다. 그것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사람들이 금세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밀고 당기며 흥정하는 모습이 정겹다.
장흥 토요장은 농악대가 시장 개장 신호탄을 쏘듯 한바탕 어우러진 민속광장에서 시작된다. 이 광장에서는 주로 먹고 마시고 놀아야 한다. 첫 번째 가게가 장흥산 콩을 불려 맷돌에 갈아 만드는 손두부집. 만드는 과정을 누구나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부는 신김치·동동주와 함께 즉석에서 먹을 수 있다. 꼭 장날이 아니더라도 ‘빼어난 맛’ 때문에 목포에서 모두 사 갈 정도로 인기가 높아 만들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전 부치는 집이 이웃해 있다. 특정한 가게 터도 없이 그냥 땅바닥에 무쇠 솥뚜껑을 걸고 파전·녹두전·생선전 등을 즉석에서 부쳐낸다. 의자도 없다. 멍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소반이 올라온다. 여러 가지 전을 안주로 더덕·국화막걸리 등 토속주를 마시는 모습이 흥겹다. 장흥장에서는 막걸리도 면(面)별로 재료도, 맛도 다른 특산품을 가져오기 때문에 골라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나무술·뽕잎차·영지버섯·표고버섯 등 장흥에서 내로라 하는 특산물이 민속광장 한편에서 판매되고 있다. 뽕잎차에는 ‘노인 일자리 창출 생산품으로 장동면 삼정노인회에서 만든 물건’이라고 적혀 있다. 장흥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농촌 사람 대부분이 노인이어서 이곳의 물건들은 할아버지·할머니들의 수십 년 묵은 솜씨와 정성이 배어 있다. 짚으로 만든 수공예품도 눈에 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사가랴 싶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옛것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가슴 한켠이 찡해 온다.
[B]옛 향수 불러일으키는 볼거리 많아[/B]
뻥튀기가게·이불가게·생선가게를 지나가면 떡집이 있다. 정확히 오전 11시가 되니 떡메를 치기 시작한다. 떡메를 치는 남자의 솜씨가 시원찮다. 구경하던 생선가게 여주인이 “뭐가 잘 안 맞구마. 철썩철썩 소리가 나야지” 하고 입심으로 거든다.
이처럼 장흥 토요장에 가면 우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풍물시장의 민속광장에서 토속음식점을 운영하는데 옛 시골장터의 음식맛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것이 시장상인들의 이야기다. 실제로 요즘은 보기 드문 보리개떡·동지죽 같은 전통음식 시식회가 열린다. 회진 포구를 비롯한 바닷가가 가까워서인지 횟집 접시에 올라오는 생선회가 유난히 푸짐해 보인다.
장흥 토요장에는 볼거리도 많다. 장흥의 자랑거리인 버꾸농악은 물론이고 각종 풍물놀이가 펼쳐진다. 품바 공연, 남사당놀이, 팔도예술단 등 잊혀져 가는 볼거리가 그것이다. 관광객이 직접 참여하는 놀거리도 있다. 윷놀이·제기차기·팽이치기·널뛰기·투호놀이가 재현된다. 추억의 동창회 행사도 무슨 회관이나 주점이 아니라 바로 이 장터에서 열린다. 장터 바로 옆에 있는 탐진강 둔치에서는 추억의 운동회·노래자랑·줄배놀이 등을 즐길 수 있다.
장흥군은 올 하반기부터 장흥 토요장 민속광장 옆에서 국제풍물잔치를 열 계획이다. 최근 농촌에서는 총각들이 시집올 여자가 없어 결혼하지 못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농촌 지역인 장흥도 예외가 아니다. 베트남·몽골·중국·필리핀 등지에서 시집온 외국인 아내들이 장흥에도 적잖은 실정이다. 현재 전라남도만 해도 22개 시·군에 4,000여 명의 외국인 아내가 있다. 장흥군은 한국으로 시집와 사는 이들 외국인 아내들을 장흥 토요장에 모두 불러 모으는 야심찬(?)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장흥 토요장에서 정겨운 얼굴들을 만나 애환을 나누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장의 본래 기능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다. 장흥 토요장에 나오는 물건은 웬만한 대형 할인점 못지않게 가짓수가 많다. 장흥의 산과 들, 바다에서 생산한 무공해 농·수·임산물과 각종 공예품은 도시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토산품이다. 이런 물건들을 싼값에 살 수 있는 것이 장흥 토요장의 또다른 매력이다.
장흥 토요장은 지난 7월2일 처음 문을 열었다. 단순히 장흥군민만을 위한 시장이 아니다. 재래시장의 향수를 간직한 수도권 주민들을 주말에 이곳으로 끌어들일 ‘원대한 전략’(?)으로 계획됐다. 그 일환으로 도입한 것이 관광버스를 이용한 수도권 재래시장 관광객 수송작전. 이를 위해 장흥군은 여행사와 협정을 맺고 매주 서울에서 관광객을 모아 장흥 토요장으로 운송한다. 이 여행사는 부산 자갈치시장, 안동 하회마을 관광과 연계한 경북안동재래시장, 최근 막을 내린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이 있는 전북 부안 5일 관광상품을 취급하는 전문 여행사다.
이 관광버스를 타고 9월10일 장흥 토요장에 들른 이 고장 출신 출향민 전옥숙(여·서울 광진구) 씨는 “재미있다. 원래 재래시장을 좋아했는데 고향 구경도 하고 또 좋은 물건을 살 수 있으니 기분이 좋다. 또 오겠다”고 말했다. 역시 서울 광진구에서 같은 관광버스를 타고 온 이순자 씨는 “어릴 적 장흥장에는 할머니들이 직접 농사지은 작물들을 가져와 팔던 기억이 난다. 장흥 토요장은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좋다”고 말했다.
이 두 사람의 경우처럼 장흥 출신 출향민은 장흥 토요장으로 유인할(?) 주요 공략 대상이다. 장흥군은 여기에 장흥향우회와 동창회를 주요 네트워크로 활용하고 있다. 마을별로 관광버스를 제공해 수도권에 살고 있는 향우들을 출신 마을로 초청하게 했다. 고향마을에서는 찾아온 출향객들을 마을회관으로 불러 돼지를 잡는 등 음식과 술을 푸짐하게 대접한다. 이렇게 초대받은 향우들은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갈 때는 모두 감격한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잊고 지내던 고향을 찾아 아짐도 만나고 당숙도 만나고 울고 왔다. 텃밭에서 딴 호박잎과 나물들을 한 소쿠리나 따 주더라.”
현재 장흥군청에는 이런 사연들이 채곡채곡 쌓이고 있다.
장흥군은 또 호남선 고속철도(KTX)를 이용해 수도권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방법도 잊지 않고 동원했다. 수도권의 백화점 등지에서 고객을 모아 서울 용산역에서 토요일 오전 8시25분에 출발하는 205호 KTX로 나주역까지 실어나른다. 나주역 도착은 오전 11시 23분. 이후 장흥 토요장까지 전용 관광버스로 연계 이동한 뒤 장흥군에서 당일치기 또는 1박2일 일정으로 즐기는 테마여행상품을 개발한 것이다. 관광객들은 장흥 토요장을 본 뒤 원하면 저녁 불꽃쇼, 탐진강의 장흥댐 탐방, 농촌관광마을 탐방도 할 수 있다. 이 모든 관광상품의 한가운데 장흥 토요장이 있다.
[B]‘청정 휴양촌’ 이미지로 ‘시골장’ 상품화[/B]
전남 장흥군이 토요장을 전략상품으로 개발한 데는 여러 가지 속사정이 있다. 장흥은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전남 서남부 지역의 중심도시였다. 장흥은 조선시대에도 부사가 머무르던 곳이었다. 조선의 지방행정제도는 도지사 격인 8도의 관찰사 밑에 부·목·군·현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부사가 머무르던 장흥은 전라도에서는 꽤 번성한 고장이었다. 또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이곳에는 법원과 검찰의 지원·지청이 있을 만큼 인근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산과 바다, 들을 함께 끼고 있어 물산 또한 풍부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그러나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시골인 장흥 역시 소외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인구마저 점점 줄어들어 지금은 ‘낙후한 시골’이 됐다. 인접한 보성군은 녹차 산지로, 강진군은 청자 도요지로 그나마 유명세를 탔으나 장흥은 이렇다 할 관광상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비교적 덜 알려졌다는 점이 장흥에 오히려 도움이 되고 있다. 공장 등 오염 시설이 전혀 들어서지 않아 ‘청정 휴양촌’이미지를 앞세워 도시민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토요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장흥군청과 지역 주민들의 노력은 거의 필사적이다. ‘링고 서비스’라고 불리는 자동전화안내도 그 중 하나다. 다른 지역에서 장흥군의 읍·면 관공서에 전화를 걸면 기계음 대신 “정남진 장흥 토요장에서 가족과 함께 옛 장터의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라는 멘트를 들려준다.
또 매주 장흥군 읍·면별로 순서를 정해 돌아가며 특색 있는 공연을 자체적으로 준비해 토요장터에서 벌이도록 했다. 아예 토요장을 위한 전속 악단과 원로가수진을 마련해 토요장에 가면 정겹고 흥겨운 옛노래를 들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전국의 2,000여 여행사를 대상으로 장흥 토요장을 적극 홍보, 테마여행 상품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장흥 토요장은 전래의 5일장도 아니고 상설시장도 아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이 토요장은 이처럼 독특한 풍경과 개성이 두드러져 지난 8월1일에는 한국철도공사로부터 ‘남도의 마지막 청정지역 정남진(正南鎭) 토요 휴양 웰빙지역’으로 공식 인증을 받았다. 또 8월12일에는 장흥군이 지정한 ㈜하나강산과 장흥관광상품 개발위탁업무 전담 지정여행사 협정을 맺었다.
개장한 지 두 달 남짓 지났지만 장흥 토요장의 발전을 위해 현재 장흥군은 관민이 총동원 체제로 뛰고 있다. 전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시골장의 본격 관광상품화, 그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RIGHT]최영재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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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