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2020년은 음악계와 영화계의 권위 있는 시상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둘은 모두 새로운 변화를 보여준 것 같았다. 그래미와 아카데미 시상식 얘기다. 이번 제62회 그래미 어워드의 스타는 빌리 아일리시였다. 시상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너럴 필드’ 4개 부문, 그러니까 올해의 레코드(‘배드 가이(bad guy)’), 올해의 앨범(<웬 위 올 폴 어슬립, 웨어 두 위 고?(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올해의 노래(‘배드 가이’), 올해의 신인상까지 휩쓴 것은 1981년의 크리스토퍼 크로스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그는 ‘팝 보컬 앨범상’을 더해 5관왕을 차지했다. 심지어 빌리 아일리시는 그래미 역대 수상자 중 핵심 부문을 휩쓴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스타는 단연코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이었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으며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4관왕을 이뤘을 뿐 아니라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 영화로 작품상을 받은 영화이자, 비영어 작품으로도 최초의 수상작이 되었다. 물론 <기생충>은 아카데미에서만 화제가 된 작품은 아니다. 칸영화제부터 골든 글로브까지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을 수상했고, 그에 대한 대중적·비평적 설득력도 충분히 얻었다.



예전과 다른 그래미와 아카데미 시상식
한편 음악과 영화 부문에서 가장 대중적이며 권위도 있는 두 시상식의 결과는 또 다른 이슈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미와 아카데미는 수년 전부터 다양성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미와 아카데미 모두 장르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특히 인종차별과 장르 편중에 대한 논란은 매우 중요한 쟁점이었다. 그런데 두 시상식이 올해는 이전과는 달랐다.
먼저 그래미 어워드 결과부터 보자. 그래미는 최근 달라진 음악 환경, 특히 실시간 재생(스트리밍) 환경에서 강세를 보이는 힙합과 팝 음악의 소비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여전히 백인 중심의 장르, 앨범 중심의 평가에 묻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점에서 일단 랩 부문과 팝 부문의 변화가 눈에 띈다. 베스트 랩 퍼포먼스에는 닙시 허슬의 ‘랙스 인 더 미들(Racks In The Middle)’이, 베스트 랩/성 퍼포먼스에는 디제이 칼리드의 ‘하이어(Higher)’가 눈에 들어온다. 팝 부문에서는 릴 나스 엑스가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를, 리조는 베스트 팝 솔로 퍼포먼스 부문을 가져갔다. 이들은 모두 틱톡이나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뉴미디어 플랫폼에서 화제가 된 경우다. 특히 리조는 틱톡을 통해 빌보드 차트 역주행을 이뤘고, 이번 그래미 어워드 후보자 가운데 8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가장 많이 언급되기도 했다. 빌리 아일리시와 릴 나스 엑스 역시 틱톡의 챌린지 영상(일반인이 인기 대중가요의 리듬에 맞춰 춤추는 동영상)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다. 특히 릴 나스 엑스의 ‘올드 타운 로드(Old Town Road)’는 19주 연속 빌보드 핫100 1위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반면 록, 일렉트로닉, 리듬앤드블루스(R&B)는 기존 미디어 영향이 큰 것처럼 보인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기존의 ‘외국어영화상’ 부문을 올해부터 ‘국제장편영화상’이란 이름으로 바꿨다. <기생충>이 이 부문을 수상했는데, 여기에 대해선 관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놀라운 것은 한국어로 만들어진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모두 휩쓴 것이다.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모두 받은 것은 시상식이 열린 92년 동안 처음이다. 100년에 가까운 시상식 역사에서 최초의 일이 바로 한국영화로 시작된 것이다.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사실 음악계와 영화계는 다양하고 새로운 변화가 매우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영화는 넷플릭스, 아마존, 디즈니플러스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이 극장을 대체하고 관객들의 만족도도 빨리 변하고 있다. 음악은 소셜 미디어(개방화된 온라인상의 콘텐츠)가 곧 빌보드 차트 순위로 직결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짧은 동영상을 음악과 함께 올리는 틱톡은 총 10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며 전 세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이런 구조에서 틱톡과 음악 서비스는 직관적으로 연결된다. 과거 TV나 광고, 드라마가 음악을 유행시킨 것처럼 지금은 틱톡이 그 역할을 한다.
그런데 변화의 핵심은 유통이나 마케팅이 아니다. 음악의 소비자 그룹이 바뀌면서 음악 장르에 대한 접근법이나 이해도도 달라지고 있다. 애초에 록 음악이 ‘청년의 음악’으로 여겨졌지만, 2020년을 기준으로 새로운 세대의 변화, 혹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모양이다. 올해 그래미 시상식의 수상자 명단이 그 점을 가리킨다. 사실 ‘젊음의 음악’이라는 것은 특정 시간과 세대에 국한된 얘기라고 보면, 지금은 힙합과 팝이 바로 그 자리를 대체한다. 한마디로 록은 ‘늙었고’, 음악 소비에서 세대 격차는 더 심화될 것이란 얘기다.

▶빌리 아일리시

세상은 변한다, 결국은 좋은 쪽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이 <기생충>에 주요 부문의 상을 수여하고, 그래미가 빌리 아일리시에게 주요 부문을 시상한 것은 이런 변화, 기존에 관습적으로 이해되고 수행되던 영역의 장벽이 낮아지고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걸 반영하는 듯하다. 빌리 아일리시는, 물론 아리아나 그란데와 라나 델 레이에 비해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세대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큰 변화처럼 여겨진다. 아카데미가 <기생충>을 고른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할리우드 바깥에서 제작되는 영화, 특히 아시아에서 제작되는 영화들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때 중요해지는 것은 마케팅이다. 과거에 비해 미디어가 무수히 많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엔 틱톡 같은 새로운 서비스 외에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이 모두 포함된다. 마케팅 관점에서 좋은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이란, 그 자체로 좋은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유튜브나 스포티파이,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 등이 콘텐츠를 저장하고 보여주는 장소라면, 틱톡과 트위터 같은 서비스는 이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나르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2020년 이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본질적인 변화가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21세기의 대중문화 콘텐츠, 다시 말해 팝 컬처는 해가 바뀔수록 영향력이 넓어지고 사람들은 대중문화에서 삶의 태도와 세상의 변화를 배우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래미와 아카데미 시상식의 변화는, 우리가 바로 그 역사적 흐름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계기이기도 하다. 이 거대한 시대의 변화가 ‘시상식’이라는 지구적 행사의 결과이자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았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