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엔씨(NC) 다이노스 선수들이 11월 2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두산 베어스를 이기고 통합우승을 차지한 뒤 모기업 엔씨소프트의 리지니 게임 대표 무기인 ‘집행검’을 들어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엔씨(NC) 다이노스가 2020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왕조 구축의 발판을 놓았다. 정규리그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 두산전 4승2패로 통합 제패. 11월 24일 서울 고척돔에서 정상에 오른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모기업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게임 대표 무기 ‘집행검’을 치켜들어 강렬한 축하 장면을 연출했다. 외신도 “최종 보스를 물리치고 검을 빼앗는 것 같다” “팬들이 엔씨소프트를 더 많이 알게 됐다” 등의 평가를 내놓았다.
집행검 아이디어는 1번 타자 박민우가 낸 것으로 알려졌고, 구단이 그것을 흘려듣지 않고 받아들여 대형 모형을 만들었다. 이것이 개방, 소통, 연결 등 정보기술(IT) 기업 엔씨의 조직문화와 관계돼 있다고 보면 지나친 비약일까.
구단주인 ‘택진이 형’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를 보자. 그는 한국시리즈가 열린 서울 고척돔에 전 경기 출석해 선수들을 격려했다. 어려서부터 야구에 빠진 ‘야구 키드’의 열정이 그를 매번 고척돔으로 호출했을 것이다. 실제 그는 우승 뒤 “오늘 만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어록을 만들었다. 이동욱 감독과 주장 양의지의 노고에 감사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소통 뛰어난 감독 선수들에게 날개 달아줘
엔씨의 다른 점은 더 깊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가령 이동욱(46) 감독은 스타 선수 출신이 아니고, 현역 시절 프로 우승 경험이 없다. 1997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데뷔해 2003년 은퇴하면서 남긴 통산 기록은 타율 0.221와 5홈런 26타점이다. 이후 롯데, 엘지, 엔씨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2018년 말 사령탑이 됐다.
하지만 감독의 실력은 선수 시절의 명성과는 별개다. 그는 2011년 엔씨 창단 때부터 스태프로 합류했다. 그해 11월 전남 강진 베이스볼파크에서 열린 캠프 훈련에서 다진 창단 멤버들의 ‘강진 결의’ 분위기도 잘 알고 있다. 당시 캠프에 참가했던 선수 가운데 나성범, 박민우, 강진성, 김진성, 원종현, 노진혁, 김성욱 등 7명이 2020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됐다. 박민우는 “엔씨 다이노스가 창단하고 첫 1군 진입하는 개막전부터 이번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다이노스의 역사와 함께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소통 능력이 뛰어난 감독과 열정 넘치는 선수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을 갖춘 박석민(2015년·96억 원), 양의지(2018년·125억 원) 등 자유계약 선수의 합류다. 2020년 한국시리즈 최우수 선수로 뽑힌 양의지는 안정감 있는 투수진 리드와 타격에서 혁혁한 공로(타율 0.318, 홈런 1개, 3타점)로 팀의 중추 구실을 해냈고, 박석민도 중요한 순간마다 안타를 터트렸다.
여기에 엔씨의 데이터 야구가 퍼즐의 한 조각을 맞췄다. 엔씨 야구단에는 비야구인 출신으로 야구 통계(세이버메트릭스)를 다루는 이들만 5명이 있다. 자체적으로 ‘디라커(D-Locker)’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코칭진과 선수들은 투타의 세밀한 부분까지 필요한 영상 등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엔씨는 2월 모든 선수에게 최신형 태블릿PC를 지급하기도 했다. 실제 엔씨는 한국시리즈에서 상대 선수별 데이터에 기반해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자주 사용했다. 두산의 4번 타자 김재환이 등장할 때면 3루의 박석민이 1, 2루 사이에 들어가는 등 3루 쪽을 완전히 비워두었다. 대량 자료(빅데이터)를 활용한 엔씨의 전술은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일단 평가를 받게 됐다.
데이터 야구가 뿌리를 내리고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결정적으로 데이터 야구에 열린 사고를 가진 이동욱 감독이 사령탑으로 임명되면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엔씨 선수들이 시상식이 끝난 뒤 이동욱 감독을 헹가래하고 있다.│ 연합
미래 가치인 ‘왕조 구축’ 토대 쌓아
한국시리즈 우승을 계기로 엔씨가 미래 가치인 ‘왕조 구축’의 토대를 쌓은 것도 성과다. 엔씨는 창단 이후 여러 차례 포스트시즌에 올랐지만 ‘경험 부족’에 발목이 잡혔다. 이번엔 판을 뒤집었고, 이 과정에서 젊은 투수들이 대거 성장했다.
정규리그 15경기 9승 1홀드를 기록했던 좌완 구창모(23)는 한국시리즈에서 토종 에이스의 입지를 굳혔다. 한국시리즈 2차전과 5차전에 선발로 등판해 1승 1패 평균자책점 1.38을 기록한 그는 5차전 7이닝 무실점으로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고등학교 졸업으로 프로 2년차의 송명기(20) 또한 한국시리즈에서 1승 1홀드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선발 등판해 5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하면서 엔씨가 시리즈 전적 2승 2패로 균형을 맞추는 데 공헌했다. 빠른 공을 장착한 송명기는 엔씨가 우승을 확정한 6차전 8회초(4-2 상황)에 구원투수로 등판해 두산의 오재일, 박건우, 박세혁 강타선을 삼자범퇴로 돌려세웠다. 좌완 김영규(20)도 한국시리즈 3차전에 구원 등판해 2⅔이닝 2피안타 1탈삼진 1실점(비자책)의 경험을 쌓았다.
선수단의 정신적 지주인 주장 양의지는 한국시리즈 정복 뒤 “2020년 우승을 하면서 젊은 선수들이 큰 자신감을 얻고 기량도 많이 늘었을 것이다. 만족하지 않고 우승을 지키려면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경기를 해야 1등을 할 수 있는지 느꼈을 것이다”라고 짚었다. 그의 말처럼 큰 경기 속에 선수들은 더욱 단단하게 담금질됐다. 엔씨 왕조 건설은 이미 시작됐다.
김창금_ <한겨레>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