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힌 편지, 달달한 신혼부부의 가내 우체통, 외국인 아내를 둔 남편의 고백, 손녀가 열어본 할머니의 연애편지…. 4가족의 각기 다른 편지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모두 같다. 사랑이다. 좀체 펜을 들기 힘들다면, 이들 가족에게서 배워보자.
김병곤 씨 가족
갱년기 엄마를 위로한 사춘기 딸의 ‘마음 처방전’
▶ 시언이는 부모님이 유럽 여행을 떠날 때, 깜짝 선물로 여행가방 안에 편지를 넣었다. 부모님이 힘든 일을 겪을 때도 편지로 위로를 전한다.
김병곤(51) 씨 가족은 자타 공인 ‘즐거운 가족’이다. 사춘기 아이들이 있는 집이면 고성이 오갈 법도 한데 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
어느 집이든 막내딸은 보석 같은 존재지만 김병곤 씨 부부의 막둥이 시언(14)이는 더 특별하다. 시언이는 마음 씀씀이가 세심해 부부에게 힘이 되는 딸이다. 아빠, 엄마가 지쳐 있으면 마음을 담은 편지를 건넨다. 특히 지난해 갱년기를 겪었던 엄마 정혜진(50) 씨에게 시언이의 편지는 큰 힘이 됐다.
“갱년기를 겪으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가족에게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는데도 시언이는 엄마의 상태를 알아챘더라고요.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화장대 위에 내 마음의 처방전이라는 약 봉투가 있었어요. 봉투 안에 시언이가 깨알같이 쓴 편지 여섯 개가 들어 있었어요. 그중 하나를 읽어보니 ‘엄마, 마음이 힘들 때 혼자 짐을 지지 말고 가족과 나누세요’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때 아이에게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위로를 받았죠.”
시언이는 열한 살 때부터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 편지를 쓰기 시작한 이유를 물었다.
“어느날 아빠의 얼굴이 너무 피곤해 보였어요. 아빠가 다시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편지를 쓰게 됐어요.”
시언이가 처음 썼던 편지에 대해 말하자 아빠 김병곤 씨가 그때 받은 편지 이야기를 꺼냈다.
“시언이가 건넨 편지 안에는 메모와 종이가 함께 있었어요. 메모에 ‘아빠, 이건 감정 쓰레기통이에요. 종이에 아빠를 힘들게 하는 일을 모두 적어서 버리세요. 아빠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기 어려울 테니까 그런 감정을 남모르게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쓰여 있었어요. 시언이가 아빠의 고민을 덜어주려고 고민했을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뭉클했죠.”
가족에게 편지로 감동을 주는 시언이는 김병곤 씨 부부가 가슴으로 낳은 딸이다. 연애할 때부터 입양을 포함해 가족계획을 세운 부부는 아들 주언(17)이가 태어나고 3년 후 시언이를 공개 입양했다.
“저희는 결혼하기 전에 입양을 포함한 가족계획을 세웠어요. 한 명은 낳고 한 명은 입양하기로 약속하고 결혼을 했죠. 첫아이가 아들이어서 둘째는 딸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여자아이를 입양하게 됐습니다. 시언이가 우리 가족이 되면서 완전한 가족을 이루게 된 거죠.”
부부가 가슴으로 낳은 시언이는 출산으로 낳은 아들보다 훨씬 속 깊다고 느낄 정도로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은 딸이다.
“시언이는 놀라운 아이예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시언이는 누구보다 사랑을 잘 표현할 줄 아는 아이예요. 시언이가 가진 장점은 우리 부부의 유전자로는 물려줄 수 없는 부분이죠. 그래서 저는 시언이를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항상 우리 부부가 가진 유전자를 뛰어넘는 아이라고 말해요.”
장가현 | 위클리 공감 기자
손희연·이경남 부부
“신혼집 작은 편지함, 부부 위기 극복 통로죠”
▶ 손희연·이경남 부부의 신혼집에는 편지통이 있다. 가내 우체통인 셈인데, 부부는 이를 화해의 메신저로 이용하고 있다. 편지통 안에 들어 있던 희연 씨의 사과 편지.
여느 집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이었다. 가로, 세로 30cm 정도 되는 나무 박스. 웨딩 스냅사진을 넣어둔 액자 밑에 고이 놓인 이 상자는 손희연(30), 이경남(29) 씨 부부의 편지통이다.
이들에게 편지는 일상이다.
손 씨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가족들과 편지로 소통하는 걸 늘 보고 자랐다”면서 “부부 둘 다 글 쓰는 직종에 있다 보니 글로 소통하는 게 편하기도 하다”고 했다.
둘은 2016년 11월 결혼했다. 약 반년의 결혼생활이지만 그간 다툼이 여러 번 있었다. 때론 사사로운 일이 중차대한 사건으로 번지기도 했다.
“결혼하고 3개월간은 말도 못하게 싸웠어요. 잠드는 시간이 다른 것도 싸움거리가 되더라고요. 갈등 해결 과정도 달랐죠. 저는 갈등이 있으면 그때그때 말로 풀어야 하고, 남편은 끝까지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혼자 시간을 가져야 하는 편이고요. 어느 날 아차 싶더라고요. 맘만 먹으면 등 돌리는 건 찰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편지함이었다. 언제든 서로에게 할 말이 있으면 이곳에다 담기로 했다.
“아무리 심하게 싸워도 24시간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존심 때문에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럴 때마다 화해 편지를 썼는데, 횟수가 쌓이다 보니 편지함이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둘의 편지 역사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막 신혼집으로 이사 왔을 때 짐 정리를 하다 남편이 가지고 온 상자 하나를 발견했어요. 신발 박스였는데, 열어보니 연애 시절 저한테 받았던 편지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더라고요.”
1년 남짓한 연애 기간이었는데 편지 양이 꽤 됐다. 울컥했다. 눈물이 맺힌 건 비단 감동 때문만이 아니었다. 손 씨 또한 연애편지를 모아놓은 고만한 상자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부부인가 싶었다. 하던 짐 정리를 접어두고 세어봤다. 엽서 20통, 편지 36통, 자금자금한 쪽지 30여 개.
“짧은 세월이지만 그 안에 저희 부부의 역사가 들어 있더라고요. 서로 ‘밀당’을 하기도 하고, 아픈 흔적도 있고요. 마침내 오해를 풀어가는 모습, 그리고 다시금 사랑을 맹세하는 과정까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편지가 있다.
“북 찢은 연습장에 ‘보고 싶어’라는 네 글자만 크게 쓰인 편지예요. 연애 초기, 절 만나기 직전 버스에서 부랴부랴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 어떤 화려체의 편지보다 더 감동적이었어요.”
이 두 개의 상자가 합쳐진 게 이들의 새로운 편지함이다. 이름도 붙였다. ‘어떤 나무.’
“이 편지함 밑에는 저희가 연애 시절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깔아놨어요. 그 위에는 헝겊을 덮어놨고요. 예전에 주고받은 편지들이 뿌리가 되고, 그 위에는 쌓일 편지들이 나무인 거죠. 어떤 나무로 자랄지는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어요. 그래서 ‘어떤 나무’라고 지었는데, 남편은 편지 상자가 나무니까 ‘어떤 나무’인 거라네요. 우리 부부, 참 다르지만 재밌지 않나요?”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
김민수·샤샤 부부
“아내 마음을 녹이는 데 편지만 한 게 없어요”
▶ 잦은 야근으로 아내 샤샤 씨를 서운하게 하는 김민수 씨가 아내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처음으로 쓴 편지. 편지를 받고 기뻐하는 샤샤 씨를 보면서 민수 씨는 아내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자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C영상미디어
김민수(40)·샤샤(29) 씨 부부는 늘 티격태격한다. 이 부부를 지켜보는 사람들 눈에는 사랑싸움으로 보이지만 당사자인 부부는 늘 심각하다. 부부를 만나러 찾아간 집에는 왠지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남편 김민수 씨가 슬쩍 전날 밤에 부부싸움을 했다고 말했다.
“회사에 중요한 문제가 생겨서 술자리에 참석해야 했어요. 이야기가 길어져서 귀가하기로 한 시간보다 늦게 집에 들어왔죠. 아내는 제가 항상 일찍 들어오길 바라지만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없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래서 아내가 좀 토라졌어요.”
아내 샤샤 씨도 남편에게 지지 않는다. 샤샤 씨의 뱃속에는 7개월 된 ‘만만세’가 자라고 있다. 게다가 딸 별(2)이가 아빠를 자주 볼 수 없는 것도 불만이다.
“민수 씨는 결혼하고 나서 변했어요. 집에 일찍 와서 저랑 이야기도 좀 하고 별이랑 같이 놀기도 하면 좋은데 자꾸 늦게 와요. 어제도 집에 일찍 오겠다고 약속하곤 또 늦게 왔어요. 민수 씨는 거짓말쟁이예요.”
심각한 표정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이 부부는 사실 누구보다 뜨거운 연애 끝에 맺어진 사이다. 러시아어를 배우러 벨라루스에 갔던 김민수 씨는 중국인 친구를 통해 샤샤 씨를 만났다. 샤샤 씨에게 첫눈에 반한 김 씨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서툰 러시아어로 더듬더듬 말하는 김 씨의 모습에 샤샤 씨의 마음이 열렸다.
2015년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은 한국에서 신혼집을 꾸렸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서툰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짧은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때 김 씨가 생각해낸 방법이 편지였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아내와 대화하는 데 부담이 생겼어요. 아내는 저와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한국까지 왔잖아요. 행복하기는커녕 한국에서 지내는 게 불행하다고 느낄까 봐 걱정이었죠. 그래서 아내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어요. 한글뿐 아니라 러시아어로도 편지를 쓰려고 하는데 러시아어는 아직도 어렵네요.”
처음 김 씨의 편지를 받은 샤샤 씨는 크게 감동했다. 꽃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뻤다. 결혼 후 남편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서운함을 느끼던 차에 남편의 편지는 큰 위안이 됐다.
“결혼하고 나서 남편한테 서운한 점이 많았어요. 일 때문에 바쁜 건 알지만 벨라루스에서 본 남편과 한국에서 보는 남편이 너무 달라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남편의 편지를 받으니 다시 내가 알던 남편으로 돌아온 것 같아 기뻤어요. 아직 편지 내용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남편이 저에게 전하려고 한 마음을 받았으니까 괜찮아요.”
남편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후 샤샤 씨는 어렵기만 했던 한국어 공부에 재미를 느꼈다. 얼른 한국어 실력을 쌓아서 편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이런 아내의 변화에 내심 놀랐다.
“아내가 편지를 이 정도로 좋아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그동안 아내에게 준 선물 중에 제가 쓴 편지가 제일 좋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아내를 기쁘게 했다는 게 뿌듯하기는 하지만 미궁에 빠진 기분입니다. 편지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니 여자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장가현 | 위클리 공감 기자
손녀가 열어본 할머니의 연애편지
“당신을 뵈옵는 날만이 최후의 행복한 날일 것만 같아요”
▶ 윤여준 씨가 공개한 외할머니 정숙진 씨의 연애편지. 현재의 할아버지와 연애하던 시절과 부부의 연을 맺고 나서의 절절한 사랑 편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서로의 볼에 뽀뽀를 할 정도로 대단한 금슬을 자랑한다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연애는 어땠을까. 왠지 현 세대를 사는 20대 청년들이 앓는 사랑의 열병은 없었을 것만 같다. 주변을 떠들썩하게 하는 ‘대단한 연애’보다는 그저 점잖은 만남을 이어가다 결혼을 하고 현실의 터울 안에서 자식을 낳고 기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가 ‘나’라는 존재가 나오지 않았을까….
그런데 아니다. 그 시대에도 뜨거운 연애는 있었다. 1928년에 태어난 89세 정숙진 씨. 그리고 1992년생인 25세 윤여준 씨. 둘은 조손지간이다. 동시에 저마다의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이기도 하다. 손녀가 열어본 할머니의 연애편지. 그 속에서 발견한 건 뜻밖에도 ‘사랑’ 그 이상이었다.
“사실 할머니의 이야기라고 하면 진부한 ‘옛날이야기’가 떠오르기 마련이잖아요. 나 또한 옛날 옛적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그런데 그 속에 현재의 내가 있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있었습니다.”
여준 씨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연애편지를 열어본 건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이라고 한다. 당시 동양화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라는 주제로 졸업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준 씨는 “이 연세에도 남편을 위해 삼시 세끼를 준비하고, 자녀들의 작은 선물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날씨 좋은 날 남편과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랑스러운 여자”라고 할머니 정숙진 씨를 표현했다. 한창 연애하던 시절, 정숙진 씨의 연애편지는 그런 그의 모습을 잘 담고 있었다.
“만남이란 이렇게도 고난한 것인지. 사랑이란 할 것이 아니구나. 오시지 않을 리 없는 선생님. 어이하여 그대 그림자 안 보이는지. 광인처럼 왔다 갔다 헤매고 나니 땡땡 9시를 가리키는 시계 소리. 정신이 아찔하고 금방 주저앉고 싶은 마음. 실망과 낙심. 선생님 어디에 계십니까. 소리치고 싶었으나 차마…”(할머니의 연애편지 중).
“고등학교 교사였던 할머니는 같은 학교 교사였던 할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셨어요. 당시에는 흔치 않던 연애결혼이라 떠들썩했다고 해요. 할아버지는 결혼 6개월 만에 징집돼 전쟁에 나갔다 돌아왔어요. 첫딸을 낳으면서 교직을 떠난 할머니는 그 후 4남매의 엄마로, 할아버지의 아내로 충실한 삶을 사셨죠.”
“‘상봉’ 생각만 하여도 마음 구석에 희망이 용솟음쳐 오릅니다. 당신을 뵈옵는 날만이 최후의 행복한 날일 것만 같아요. 일찍이 당해보지 못한 그리움입니다. 하기는 결혼 후 처음 해보는 오랜 이별이기에 상심치 말자 하면서도 종일 묵묵히 있으려니 어찌 당신 생각을 떠날 수가 있을까요. 오직 보고파 그리워하는 말을 수백 번 적어서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글을 쓰면서도 날아가 보고픈 심정 태산 같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처지”(할머니의 연애편지 중).
여준 씨는 이 같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엮어 <그때, 우리 할머니>라는 책도 펴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연애 이야기 속에서 나의 연애를 찾기도 했고, 대학 시절 고민을 들으며 어제의 근심을 떠올리기도 했어요. 또한 할머니의 어린 시절 철없는 이야기에 어린 나의 모습이 생각나 ‘내가 할머니를 닮았구나’ 하며 웃음 짓기도 했고요. 할머니의 결혼 후 이야기에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기도 했죠. 할머니의 이야기는 단순히 80여 년 전의 옛날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보다 조금 빨리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여성의 삶의 기억인 거죠.”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