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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은 예부터 국내 최고 고추장 마을로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 순창고추장은 그 전통에다 과학적 연구·개발과 체계적 경영 시스템 덧씌우기 작업이 활발하다. 세계화 식품으로 거듭나려는 장류 메카 순창의 변신 노력은 눈여겨볼 만하다.
가을 느지막하게 찾아간 전북 순창은 마치 화채를 담는 대접 같은 큰 분지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노령산맥 줄기가 제법 널따란 평지를 휘감아, 위로는 내장산이 있고 아래로는 백양사를 안고 있는 백암산이 자리잡았다. 섬진강 물줄기도 이곳 순창에서 똬리를 틀고 내려간다. 고도가 높아 햇볕이 좋고, 그러면서도 희한하게 물도 풍부하다. 곳곳에 쪽빛 호수가 즐비하다.
특히 순창의 물은 다른 지방보다 철분이 많아 순창 고추장의 감칠맛을 결정한다고 한다. 삼척동자도 다 알아들을 만큼 유명해진 ‘순창고추장’이라는 고유명사는 이런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순창군 홈페이지는 순창군이 전국 제1의 장수마을이자 장류(醬類)의 메카로 자리잡은 이유를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순창군은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 및 물과 바람의 내외 흐름이 적은 지형조건으로 산소가 정체돼 발효균주(유익균주)의 생육에 적합한 지형조건’을 가졌다. 또 ‘중산간지대로 일교차와 기후변화가 커(작물이나 채소·과일의) 당도와 영양도가 높다’.
순창고추장이 맛있는 이유는 전남 영광의 법성포 굴비와 경북 포항의 과메기 맛이 좋은 것과 비슷한 이치다. 국내외 대부분의 장수마을처럼 순창군이 장수고을로 각광받는 것도 순창 특유의 장류를 만들어내는 이 같은 자연조건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B]유기농산물, 발효천국, 장인의 손맛…[/B]
“왜 순창의 장류 맛이 남다르다고 생각합니까?”
더 과학적인 답이 있을 것 같아 장도연 순창장류연구소 연구사에게 물었다.
“이곳에 1997년 2만 평 규모로 전통고추장민속마을이 조성됐어요. 장류 제조업소들이 집단화하면서 이곳 민속마을의 공기와 토양에는 발효미생물이 풍부해졌습니다. 9∼10월이면 자연상태에서 메주를 띄우는데, 누룩곰팡이나 효모의 번식이 쉽게 이뤄집니다. 곰팡이가 분비하는 단백질 분해효소인 프로테아제와 아밀라제에 의해 메주가 잘 분해되고, 왕성한 유효발효균이 부패균들을 쉬 물리치게 됩니다. 순창고추장이 다른 지역의 고추장에 비해 더 감칠맛을 내는 이유는 최종 부산물인 아미노산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순창골 청정지역에서 생산되는 고추·콩·찹쌀 등 우리 곡물을 100% 사용할뿐더러 물과 공기 등 청정자원에 장류·발효식품을 만드는 최적의 발효균주들이 순창골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순창군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에 나타나 있듯 순창지역은 ‘발효천국(Yeastopia)’인 셈이다.
특히 재래종 고추와 메주콩은 순창 읍내를 중심으로 약 5리(2km) 이내 밭에서 생산된 것이라야 제맛을 낸다고 알려져 있다. 순창의 토질에서 자란 고추·콩과 물의 ‘궁합’이 맞는다는 이야기다. 전통 장류의 수요가 늘면서 순창군은 지난해부터 계약재배를 늘려 농가에 2억5,000만 원의 소득을 안겨주었다. 올해는 재배면적이 두 배 가량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순창의 고추장 맛을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면면히 전승된 전통의 ‘손맛’을 빼놓을 수 없다. 순창군은 장류 제조 장인들의 명맥을 잇기 위해 현재 ‘제조기능인제’를 실시중이다. 허광무 장류연구소 장류담당은 “현재 제조기능인은 모두 102명이며 대부분 민속마을에 정착했다”고 설명한다.
“제조기능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우선 순창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35세 이상 여성이어야 하고, 순창고추장을 잘 만드는 분이어야 합니다. 제조기능인 중에는 이미 일흔을 넘긴 다섯 분이 계시고 나머지는 50∼60대가 대부분입니다. 할머니세대에서 며느리대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죠.”
조선시대의 가정 종합백과사전인 <규합총서>에는 순창고추장과 태조 이성계의 일화가 들어있다. 순창 관내 만일사에 칩거중이던 무학대사를 찾아가던 이성계가 순창 농가에서 고추장을 맛보았는데 환궁 후에도 그 맛을 잊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후 순창고추장은 조선시대 내내 진상품이 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순창 고추장민속마을에서 생산하는 전통 장류 브랜드는 모두 37개인데 저마다 나름의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보면 토종 맛의 최고 진수라고 알려진 전주비빔밥 맛의 비밀도 순창고추장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B]‘장류특구’ 눈앞… ‘장류밸리’ 조성 꿈[/B]
순창군은 면적으로 볼 때 전국에서 가장 작은(494.74㎢) 지자체로 꼽히지만 지역혁신 전략산업만큼은 순창고추장의 매운맛 그대로다. 순창군은 지역특화산업으로 육성중인 고추장 등 장류산업의 전통을 살려 지역특화형 클러스터를 구축해 지역혁신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군내에는 2,000억 원 매출의 최대 장류기업인 (주)대상이 자리잡고 있는데다 고추장민속마을 일대가 12월중 ‘산업특구’ 지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고추장·된장·간장·청국장·고추장소스 등 5,000억 원 규모의 국내 장류시장에서 순창군의 점유율은 40% 가량 된다. 군내에서 성업중인 장류 제조업체는 모두 67개. 대표기업인 ‘청정원’을 제외하면 민속마을 전통 고추장의 시장점유율은 2% 안팎이지만, 군은 이를 5%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순창군의 장류산업 집적화를 위한 특구 지정은 지자체들의 지역특화전략산업 가운데 첫번째 사례이기도 하다. 장류산업 특구 지정이 이뤄질 경우 재정·세제 등의 지원은 없지만 장류산업에서 각종 규제가 완화되고 특제품에 대한 공동 연구, 공동 기술개발이 허용될 것이라고 한다. 군은 지역특구 지정을 위해 식품위생법·공정거래법·농업진흥법 등 3가지 규제 특례를 요청했다.
순창군은 특구 지정이 이뤄질 경우 매출증대와 관련 농업 발전을 통한 지역발전의 획기적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청사진이 마련된 ‘장류밸리(Valley)’사업에 본격 착수할 예정이다. 순창고추장의 품질과 기술력을 높이고 제조 단지를 넓혀 고추장을 국제적 식품으로 만들기 위한 교두보로 삼겠다는 것이다.
순창군은 특히 지난 2002년 6월 취임한 강인형 군수를 필두로 장류밸리 조성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1993∼97년 152억 원을 투입해 완공한 고추장민속마을은 공교롭게 완공 시기가 IMF 외환위기와 겹치면서 한파를 맞았지만 순창군의 자구노력과 함께 최근의 웰빙 바람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강 군수는 공무원들을 독려해 특구지정 외에도 굵직한 성과를 거두었다. 우선 지역특성을 살리기 위한 연구개발을 체계화하기 위해 순창장류연구소를 설립했다.[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
장류연구소는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최초의 식품위생검사기관으로 경비절감에도 기여했지만 연구 정보를 장류 제조업소끼리 공유함으로써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자가 품질 연구기관으로 정착한 장류연구소는 올해에만 5,200만 원의 순익을 예상하고 있다.
“가내수공업 수준이던 순창 장류 식품의 표준화·고급화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장류연구소 설립이 간절했습니다. 정부로부터 연구소 건립에 필요한 국비 지원을 얻기 위해 그동안 과학기술부를 50여 차례나 드나들었어요. 결국 국비 30억 원을 타내고 도비 15억 원과 군비 15억 원을 합쳐 2005년에는 연구소 건물까지 완공할 예정입니다.”
순창장류연구소 건립 실무를 맡은 허광무 장류담당의 말이다. 장류연구소를 통해 신상품 개발연구와 항암·다이어트 효과 등을 입증하는 기능성 연구, 유통분야 국제세미나 개최, 홍보전략 수립 등 생산활동을 지원할 예정이다.
[B]도·농 농촌체험시설, 장류대학 유치도 추진[/B]
순창군 장류밸리 조성사업의 비전 가운데는 2006년 장류체험관과 2007년 장류대학을 설립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장류 전시시설과 함께 도·농 농촌체험시설, 숙발시설 등도 조성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순창읍 백산리 일대 2만9,437평에 국·도비와 민자 800억 원을 투입해 2010년까지 장류밸리사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순창군은 이밖에도 청정원이 들어서 있는 제1농공단지 외에 풍산면에 4만2,000여 평 규모의 제2농공단지 조성에도 착수했다. 이곳에는 이미 사조식품을 비롯해 10여 개의 장류업체가 입주신청을 한 상태다. 이러한 기반을 통해 순창군은 산업과 교육, 관광이 한곳에 집약된 장류산업 클러스터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장류밸리 조성을 위해 순창군은 지역혁신 주체인 산·학·연·관 지원 네트워크 등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신설된 순창고추장연구회에는 전국 14개 대학 장류 전문가 20여 명과 식품회사 연구원들, 102명의 전통 장류 제조기능인이 참가해 매년 두 차례씩 세미나를 열고 있다.
고추장민속마을은 최근 들어 더욱 활발한 분위기다. 일요일마다 열리는 고추장 담그기 체험행사가 관광객들과 소비자들로부터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고추·콩 재배농가(1차 산업) - 장류 가공공장(2차산업) - 장 담그기 농촌체험관광(3차산업) 등이 결합된 순창의 장류산업은 전국 농촌지역의 대표적 성공모델로 손꼽힌다. 순창 고추장민속마을이 가내수공업 형태를 벗어나 세계적인 ‘장류밸리’ 건설이라는 원대한 꿈을 향해 뛰고 있다.
[U]<<인터뷰-강인형 순창군수>>[/U]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인구 3만1,400여 명이 사는 작은 산골 순창군을 이끄는 강인형(59) 군수는 직원들에게 불도저로 통한다. 평소 업무 스타일도 그렇지만 군정 현안 100대 과제를 세워놓고 밀어붙이는 추진력에는 군민들까지 혀를 내두른다. 11월29일 오후 마침 도쿄(東京)노인종합연구소 연구원 초청행사 등으로 분주한 그를 붙들고 몇 마디 물었다.
- 순창의 장류산업 발전을 농가소득과 연계하기 위한 방안은?
“순창고추장은 100% 국산 재료만 사용한다. 장류산업을 중심으로 농가와 고추장업체, 관광을 융합해 ‘버추얼 이노베이션 클러스터(Virtual Innovation Cluster)’로 육성할 계획이다. 우선 업체에 청정 원료를 공급하기 위해 고추·콩·찹쌀 등을 농가들과 계약재배하고 있다. 청정원에서도 콩단지 조성에 적극적인데, 장류단지가 늘어나면서 재배면적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장류연구소에서는 순창의 특산인 복분자·매실·호박 등을 이용한 기능성 장류 상품과 장류 소스를 개발해 농가소득을 늘릴 예정이다.”
- 대기업 양조식품과 민속마을 전통 장류식품 사이의 관계 설정은?
“양조식품과 전통식품은 순창 장류산업을 이끄는 두 개의 날개와 같다. 대상식품과 고추장민속마을은 자매결연을 하고 상호 학습·보완 관계를 갖고 있다. 장류연구회를 신설한 뒤 장류·발효산업의 석학들을 순창으로 초청해 연구 결과를 수렴하면서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 산·학·연·관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구체적 방안은?
“기업과의 협력관계 구축 외에 장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순창제일고에 장류학과 설치를 추진중이고, 전주대에는 발효공학과가 설립됐으며 전북대는 장류학과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광주 송원대에도 장류학과 설립을 요청했고 순창에도 전문대 설립을 추진중이다. 순창장류연구소 설립으로 가내수공업에 경영 마인드를 불어넣어 공장과 전통의 벽을 허물고 있다.”
- 장류민속마을에 가 보니 장 담그기 체험 행사에 대한 참가자들의 반응이 좋던데….
“체험관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한다. 지난해에는 가족관광 코스로 반응이 좋았는데, 올해는 학생들의 단체 체험 코스도 마련했다. 올해부터는 ‘도시의 장독을 순창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고추장축제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내년에는 콩집단화생산단지까지 관광상품화해 재배농관광(1차)·제조업관광(2차)·체험관광(3차)을 결합하려고 한다. 도시민들이 직접 담근 고추장을 숙성시켜 제품을 우송해 주려고 한다. 고추장축제도 꾸준히 발전시켜 세계적인 ‘핫소스 페스티벌’로 만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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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