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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남단 한려수도의 중심에 위치한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창선은 섬의 이름이자 행정구역상 면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천시
삼천포항에서 연륙교인 창선·삼천포대교를 타고 자동차로 10여 분쯤 달리면
닿는 곳이 가인리 석포마을이다. 이곳에 가면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색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계단식 고사리밭이 그것이다.
아낙네들이 산기슭에서 줄지어 고사리를 따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을 연상하게
한다. 집집이 마당과 마루 등에는 햇볕에 말리기 위해 널어 놓은 고사리가 지천이다.
이런 풍경화는 이웃 언포·고두·대곡마을까지 연이어 펼쳐진다. 해마다
4∼6월이면 이곳 일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장관이다.
10여 년 전부터 이곳 창선은 명품 농산물 한 가지를 보태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앞서 말한 고사리다.
무구한 산과 청정한 바다가 어울려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자랑하는 창선.
1억1,000만 년 전 백악기 공룡 화석이 발견된 곳으로, 우리 역사의 발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땅이기도 하다.
창선 고사리는 예부터 그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곳 역시 과거에는 수풀 사이로
띄엄띄엄 올라오던 고사리를 채취해 팔던 것이 고작이었다. 주민들이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고사리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과수원의 과실 나무를 모두 뽑아내고 그
밭에 고사리를 심은 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창선면사무소 김추천 산업계장은 “과수 소득이 줄면서 대신 고사리를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창선면에는 원래 감나무·밤나무밭이 많았습니다. 1990년부터 일부 농가에서
소득이 줄어들면서 감나무·밤나무를 베어내고 대신 고사리를 심은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 과수원에 1년도 안 돼 고사리가 무성해졌습니다. 잡초를 제거하고 거름을 주자
고사리 생산량은 해마다 늘었고, 농가 소득도 올라가게 됐죠. 지금은 고사리가 창선의
대표 농산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사리 재배의 최적지, 국내산 고사리의 35% 차지
1990년대 초, 고사리
생산량이 증가하자 창선 주민들은 너도나도 과수원을 고사리 밭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계단식 논마저 모두 고사리 밭으로 변했다. 이에 발맞춰 창선면사무소와 창선농협에서는
기술지도와 수매를 통해 고사리 재배를 지원했다. 주민들은 고사리 포자가 잘 번식할
수 있도록 햇빛이 잘 드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 결과 우수한 품질의 고사리
생산이 가능해졌다.
창선농협 관계자는 “마을마다 고사리 작목반이 결성돼 자재를 공동으로 구매하고,
따뜻하며 바닷바람이 많은 이곳 기후 특성을 잘 살린 재배법을 연구해 부드러우면서도
고유의 향이 강한 창선 고사리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창선농협은 창선 고사리의 가격 안정을 돕기 위해 1997년부터 직접 나서 수매를
시작했다. 중국산 고사리의 품질이 갈수록 좋아지는 상황에서 국산 고사리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편 고사리를 이용한 식품을 개발하는 등 소비를 늘리고, 유통망을 확충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고사리의 35%가 이곳 창선에서 공급되고 있다. 이제 고사리는
남해 창선의 농산물 중 최대 소득원이 되었다. 이곳의 대표적 농산물이었던
마늘과 벼농사로 벌어들이는 돈을 합친 것보다 고사리로 인한 연간 수입이 더 많을
정도다. 돈 안 되는 과수를 과감히 뽑아내고 부업의 대상 정도로 하찮게 여기던 고사리를
재배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창선 주민들에게 부를 안겨준 것이다.
창선면 가인리의 고사리 농가는 1년 중 요즘이 가장 바쁜 때다. 고사리는 4월부터
6월까지가 제철이기 때문이다. 고사리는 땅속줄기에서 두 달 동안 시차를 두고 20개
이상의 순이 터져 나온다. 바로 이 무렵, 풀섶을 헤집고 막 고개를 내민 고사리여야만
부드럽고 특유의 향도 가장 진하다. 20㎝ 정도 자란 고사리는 한나절만 지나도 자루가
질겨져 맛이 없어지고, 아기 주먹처럼 둥글게 감긴 잎이 피어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주민들은 여러 밭을 옮겨가며 고사리를 수확하느라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낸다. 비가 와도 고사리 밭에 나가야 할 정도다. 두 달 동안에는 4일에
한 번꼴인 17~20차례 고사리 수확이 계속된다. 이렇게 수확한 생고사리는 특별 제작한
가마솥에 삶아 햇볕에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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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생산량 120톤, 44억 원 소득 예상
남해 창선에서는 현재 403가구가
고사리를 재배한다. 무려 220ha(1㏊=3,000평)에 이른다. 지난해 생산한 고사리는
모두 97톤. ㎏당 3만5,000~4만 원에 판매해 무려 35억 원을 벌어들였다. 농가당 평균
약 900만 원의 소득을 올린 셈이다. 남해의 특산품인 마늘(15억 원)과 벼농사(15억
원), 두 작물의 소득을 합친 것보다 높은 소득을 올린 것이다. 창선고사리작목반을
만든 식포·언포·고두마을 주민 60가구 중에는 3,000만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 농가도 있다.
이렇듯 창선 주민들이 고사리로 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창선면사무소와 창선농협의
수매를 통한 가격 안정 정책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사리의
30~40%는 창선면의 주선으로 창선농협이 수매한다. 면사무소와 농협 그리고 주민들이
마음을 합친 이런 노력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던 고사리 가격이 안정됐다. 고사리
수매는 중국산이 밀려오면서 국내 고사리값이 폭락하자 가격 안정을 위해 1997년부터
시작한 것이다. 첫해 1톤에 불과했던 고사리 수매 물량이 2003년에는 31톤(10억9,200만
원), 2004년에는 32톤(12억2,500만 원)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35~40톤까지 물량을
늘릴 계획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에서 잘 팔리기 때문이다. 창선면과 창선농협이 수매한
고사리는 농협 하나로마트를 통해 전국 각지로 팔려나간다. 또 개인이나 대형 상인들의
손을 거쳐 서울 경동시장·가락시장 등 전국의 재래시장과 굴지의 백화점 등에도
납품된다.
고사리가 창선에서 효자 상품이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전국 최고를
자부하는 품질이다. 이런 품질은 고사리 재배 최적 환경에 주민들의 노력이 곁들여진
합작품이다. 여기에 창선면사무소와 창선농협의 농업기술 지원, 그리고 두 기관의
도움으로 확실한 판매망을 확보한 것도 큰 몫을 차지한다.
올해 창선 고사리 수매 가격은 유명세를 타고 ㎏당 평균 4만 원 선으로 조금 오른
편이다. 창선 바깥의 상인들은 수매가보다 ㎏당 1,000~2,000원 더 후한 값을 쳐 준다.
시중에서 팔리는 가격은 5만5,000원 선이다. 최근 시장에서 ㎏당 중국산은 1만2,000~1만5,000원,
북한산은 8,000~9,000원에 거래되는 것과 비교하면 3∼7배 높은 가격이다.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창선면 식포마을 정해옥 이장은 “창선
고사리는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다”면서 “올해는 작황이 좋아 고사리 생산량만
100~120톤 정도로, 약 44억 원의 소득을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같은
마을 정씨 할아버지는 “양지바른 산기슭에서 봄바람을 쐬며 고사리를 꺾는
재미에 5년째 삯일을 한다”며 “고사리가 창선 주민들에게 수익은 물론 즐거움까지
안겨 주고 있다”고 자랑했다.
창선에서는 면사무소와 농협, 주민들이 합심해 창선 고사리의 품질을 더 향상시키기
위해 요즘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고사리의 신선도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가구마다 저온창고(3~5평) 건립을 권장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농협에서 저온창고
건립비 일부를 농가에 직접 지원, 지난해까지 고사리 작목반원 6명이 저온창고를
지었다. 창선농협도 올해 농협중앙회로부터 1억6,000만 원을 지원받아 100평 규모의
저온창고를 건립했다.
여기에 고사리 재배 면적을 늘리기 위해 지난해 고사리 뿌리 6톤을 공급했다.
올 가을에는 약 10톤을 보급해 내년 고사리 수확량을 더욱 증대할 계획이다.
백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