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center[/SET_IMAGE]
아궁이와 부뚜막·가마솥·찬장 그리고 땔감 등…. 한국의 전통 부엌을 상징하는 대표적 구성물이다. 그러나 지금 이런 모습의 부엌은 시골 오지에서도 찾기 힘든 풍경이 되었다. 이제 부엌은 음식만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 ‘주방’으로 이름마저 바뀌면서 편리한 시스템 주방 시설에 최첨단 주방용품으로 가득 찬 가족들의 ‘열린 광장’이 되었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서 부엌은 음식을 조리하고 저장하며 난방을 하는 공간을 말한다. 부엌은 지역에 따라 다른 명칭이 사용됐다. 궁중에서는 수라간, 양반들은 반빗간, 경상도나 전라도에서는 정짓간 또는 정지, 충청도에서는 부세라는 말도 쓰였다.
전통 부엌은 식사 준비와 난방이라는 이중의 기능을 했다. 아궁이는 식사 준비를 위한 화력을 제공했고, 구들을 데우는 화구(火口) 역할을 했다. 전통 가옥에서 부엌은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했다. 햇볕이 적당하게 들어오는 곳이었고, 통풍이 잘 되면서도 여성들이 왕래하기 편한 곳에 두었다.
해방 후 부엌의 풍경이 바뀐 것은 휴전 직후부터 전국에 건설된 재건주택·복구주택·외인주택의 영향 때문이었다. 서울에서는 청량리 일대와 행촌동 언덕에 군대 막사와 같은 단조로운 모습의 2층 연립주택이 건설됐다. 12평의 작은 주택으로, 서양식 주택을 응용해 부엌과 화장실을 1층에 두고 2층에는 거실과 방을 두었다.
개량주택의 부엌은 입식이었지만 주부들의 불편은 컸다. 많은 식구의 음식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좁았고, 장마철 비가 올 때마다 물이 찼다. 겨울이면 얼어 터지는 상하수도관 때문에 주부들은 부엌의 인프라를 수리할 줄 아는 ‘준 기술자’가 돼야 했다.
무연탄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1960년대 초반, 부엌은 또 한 번의 대변신을 한다. 부엌의 아궁이 구조가 연료인 연탄에 맞춰 바뀐 것이다. 연탄 아궁이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부뚜막식과 함실(레일)식이 그것이다. 부뚜막식은 아궁이와 취사를 겸하는 것이고, 함실식은 연탄 화덕을 아궁이 속에 깊숙이 밀어 넣어 난방을 위주로 하는 방법이다. 취사를 위해서는 화덕을 꺼내야 했다. 이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쪽이 방을 더 따뜻하게 하는가를 둘러싸고 주부들 사이에 일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B]1960년대 절충식 입식 부엌 등장[/B]
무연탄이 보급되면서 주부들은 매일 연탄가스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부엌에서 일하는 주부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성 일산화탄소 중독자가 되었고, 당시 진통제의 대명사 ‘명랑’과 ‘뇌신’은 주부들의 상비약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1960년대 중반 서울의 곳곳에는 이른바 신흥주택단지가 들어섰다. 부엌은 절충식 입식 부엌을 설치했다. 조리대를 높여 주부들이 음식을 만드는 동안 서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수도가 부엌으로 들어온 것이 신흥주택의 자랑이었다. 주부들은 실내에서 수도를 사용하는 편리함을 맛보기 시작했다.
1970년대 공동주택(아파트)이 건설되면서 부엌은 주방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부엌은 구식, 주방은 현대식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주방(부엌)은 드디어 열린 공간이 됐다. 주방은 가족들의 식당을 겸하게 되었고, 가족 구성원 누구나 이곳을 늘 들락거리는 가정 내 ‘광장’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중산층 가정이 식모(가정부)를 두기 어려운 경제적 상황이 빚어지면서 주방 개량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국내에서 싱크대를 공장에서 대량 제작해 판매한 것도 이때부터다. 초기에는 스테인리스 상판을 만드는 회사들이 거북표·오리표·백조표 등의 상표를 부착해 개수대·조리대 및 그릇 수납장을 한 벌로 만들어 팔았다. 이 부엌 설비 시스템은 부엌일과 부엌의 환경을 크게 바꾸었다. 부엌은 실험실처럼 각종 그릇과 요리 기구, 양념들이 분류돼 정리됐다. 깔끔하고 위생적이며 과학적인 부엌으로 탈바꿈했다.
[B]가전기기가 주방으로 통합[/B]
그러나 서양식 싱크대는 한국인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주발·솥 그리고 큰 그릇과 주전자를 사용하는 한국 주부들에게 초기의 싱크대는 비좁고 답답하고 불편한 것이었다. 부엌은 그래서 이중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사용 빈도에 상관없이 큰 그릇과 조리 기구는 외부에 두고 사용했다. 그래도 서민 가정의 주부들에게 멋진 싱크대가 달린 입식 부엌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농어촌 주택의 부엌은 1980년대 이후가 돼서야 변하기 시작했다. 부엌을 고치는 것을 두고 농촌에서는 ‘아궁이를 들어냈다’고 표현했다. ‘재래식 부엌을 고쳐 입식 부엌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물항아리를 없앴다’는 말도 유행했다. 부엌에 수도를 끌어쓰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SET_IMAGE]4,original,center[/SET_IMAGE]
농촌에서의 부엌 개량이 완성 단계에 이를 무렵 도시에서는 ‘시스템 주방’이라는 또 하나의 부엌혁명이 시작됐다. 부엌은 단순 조리 공간이 아닌 과학과 예술이 만나 기능과 함께 ‘미’를 추구하는 공간이 됐다. 최근에는 냉장고와 식기세척기 등 부엌의 가전제품을 완전히 내장형(빌트인)으로 구성할 수 있는 시스템 주방이 인기를 끌고 있다. 색상과 재질도 다양하고 평수에 따라 변형이 가능하며, 기능적 해결을 통해 작은 자투리 공간까지 유용하게 쓸 수 있게 디자인됐다. 가스레인지·정수기·오븐·식기세척기 등에 한정돼온 내장형 가전이 최근에는 커피메이커·와인셀러·음식물쓰레기처리기·공기청정기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심지어 컴퓨터·오디오·TV모니터·비디오폰 등도 점차 주방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추세다.
부엌으로 가전기기가 모여들면서 기능 융합과 홈 네트워크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냉장고와 정수기가 통합된 데 이어 냉장고·김치냉장고·와인셀러가 합쳐지고 있다. 또 식기세척기와 살균기·건조기 등도 점차 복합화하는 추세다. 이들 기기를 외부에서 유·무선전화로 작동하는 부엌 홈 네트워크도 진화하고 있다. 광복 60년, 대한민국의 부엌은 땔감 연기 자욱한 정짓간에서 정보기술(IT)이 집약된 최첨단 주방으로 변모하고 있다. [RIGHT]임천우 객원기자[/RIGHT]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