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매해 설날이면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떡국을 끓이곤 했다. 며칠 전부터 공들여 끓인 뽀얀 사골 국물에 어슷썬 가래떡을 넣고 고슬하게 볶은 소고기와 달걀지단, 김가루를 고명으로 올렸다. 맛있는 떡국은 아이들이 설날을 손꼽아 기다린 이유 중 하나였다.
우리가 언제부터 설에 떡국을 먹기 시작했는지, 떡국과 나이를 연관 지은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풍습이라는 추측이 있다. 조선 헌종 15년(1849년)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당시에는 떡국을 ‘백탕(白湯)’ 혹은 ‘병탕(餠湯)’이라고 불렀으며 정월 초하루에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헤아릴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 불렀다. ‘나이를 먹게 하는 떡’이라는 의미다.
새해에 떡국을 먹는 문화가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작됐다는 주장도 있다. 구한말 학자 육당 최남선 선생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1946)을 통해 새해 흰 떡을 먹으며 복을 기원하는 풍습이 상고시대 때부터 있었다고 주장했다. 고조선 신년 제의 문화에서 시작됐다는 설이다.
중국 문화가 유입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중국에서는 송나라(960~1279년) 때부터 설에 떡국을 먹었다. 남송(南宋) 시인 육유가 쓴 ‘세수서사시(歲首書事詩)’에 설날에 탕병을 먹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탕병은 오늘날 떡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탕병이 후대에 조선으로 전해져 떡국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설에 떡국을 먹는 문화가 거의 사라졌지만 남쪽 지역에서는 탕위안(汤圆)이라는 경단을 먹는 문화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도 새해에 떡국을 먹는다. 일본의 떡국은 ‘조니(雜煮)’다. 동일본에서는 닭고기나 채수, 어묵으로 육수를 낸 뒤 간장이나 소금으로 맑게 간을 한다. 여기에 구운 각진 떡(카쿠모찌)을 넣는다. 서일본에서는 미소 국물에 둥근 떡(마루모찌)을 넣어 만든다.
조니에 대한 기록은 떡국보다 오래됐다. 교토 요시다 신사의 신관으로 궁중 제사에 관여해 온 스즈카(鈴鹿) 가문이 기록한 ‘스즈카가기(鈴鹿家記)’에는 1364년 정월에 조니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에서는 조니를 고대 무가(武家)에서 시작된 전통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농경사회가 시작된 고대 제례의식에서 시작됐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떡국이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에서는 사골이나 맑은 곰탕을 국물로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떡국이다. 전라도에서는 닭장(간장에 졸인 닭)을 넣고 우린 국물로 떡국을 만든다. 경상도에서는 구운 떡을 넣어 떡국을 끓이거나 굴 떡국을 먹었다고 한다. 개성에서는 조랭이떡으로 떡국을 먹었다.
떡국은 새해를 여는 따스한 음식이었지만 그렇기에 암울한 시절에는 슬픈 추억이 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 2월 13일 ‘조선일보’에 실린 동시 ‘울려만 놨네’에는 떡국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와, 떡국 한 그릇 못 해줘 가슴 아파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겼다. 가난에 허덕인 그 시절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다.
『오늘은 설날. 떡국을 먹고, 꼬까옷을 입고, 세배를 가는 날!
그렇지만 우리는 조밥만 먹고, 다 떨어진 입던 옷을 그저 입었네.
아침에 꼬까옷 하고, 떡국 달라다 엄마를 눈이 붓게 울려만 놨네』
그때는 이런 풍경이 흔했다. 그래서 설날을 앞두고 어려운 이웃과 떡국을 나눠 먹자는 선전이 여기저기 붙기도 했다. 1928년 구세군에서 서울 서대문의 빈민 1500여 명에게 떡국을 제공했고, 1929년 설에도 홍제소년군이라는 단체가 거리의 고아들에게 떡국을 끓여 나눠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즘엔 설에 떡국을 챙기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설에 떡국을 먹는 것은 중요한 의식이다. 단지 나이를 한 살 더하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한 그릇의 떡국 안에는 해마다 가족과 마주 앉아 새해를 시작하는 따뜻한 시간들이 녹아 있다.
채상우
먹는 게 좋아 미식을 좇는 일간지 기자. ‘헤럴드경제’에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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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