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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일의 감각. 조수용 (레퍼런스바이비)

내 친척 동생은 아들 하나에 딸 둘을 키우는 다자녀 엄마다. 육아에 전념하느라 다 늘어진 티셔츠를 걸치고 지내지만 왕년에는 화려한 무용복을 입고 춤을 췄다. 무대에서 우아하게 무용하던 사람이 집에서 아이들과 우악스럽게 씨름하려니 얼마나 속이 쓰리겠는가. 다행히도 막내가 어린이집에 갈 때가 돼 노인 대상으로 율동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됐다. 트로트에 맞춰 숟가락처럼 생긴 도구로 몸 여기저기를 두드리면 된다나 뭐라나. 박현빈의 ‘앗! 뜨거’부터 김연자의 ‘아모르파티’까지 그 숟가락만 있으면 안 되는 노래가 없단다. “아니, 며칠 전에 첫 수업을 했는데 너무 재미있어 가지고 깔깔 웃고 난리 났잖아.” 나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동생을 쳐다봤다. 사람이, 일을 하면서, 웃을 수 있다고?
일이 재미없어진 지 오래다. 아니, 처음부터 재미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재미만 없으면 다행이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기는커녕 어려워지기만 한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밀어붙이기는 하는데 제대로 하고 있다는 확신이 아무래도 서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말도 안 되고, 진부하고, 쓸모없고, 따분한 데다가 어설픈 것 같은데, 푸념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여기까지만 하련다. 상황이 이러하니 일하면서 웃음이 날 리 만무하다. 인생의 대부분을 일하며 보내는데 이다지도 웃을 일이 없다면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게 분명했다. 지금이라도 펜을 놓고 숟가락을 잡아야 하는 거 아닐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일과 관련된 책을 찾아보던 중 조수용의 ‘일의 감각’을 읽게 됐다.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리더이자 래퍼인 타블로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를 졸업한 천재 아티스트다. 그런데 시장에만 가면 꼭 이런 소리를 듣는단다. “탤런트 강혜정 남편 아니야?” 타블로가 천재이건 말건, 음악에 관심 없는 사람의 눈에는 그저 강혜정의 남편일 뿐인 것이다. 조수용이라는 사람도 나에게는 그랬다. 여기저기에서 얼굴은 많이 봤는데 뭐 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고, 가수 박지윤 남편 아니야? 알고 보니 그는 내가 매일 사용하는 ‘네이버 초록색 검색창’을 디자인했고, 친구와 약속이 있을 때면 만나는 장소인 ‘광화문 D타워’의 총 디렉팅을 맡았으며, 왠지 특색 있게 느껴져 인스타그램에서 팔로하고 있던 서점 ‘스틸북스’를 론칭한 걸로도 모자라, 국민 대부분이 쓰는 ‘카카오톡’을 만든 카카오의 공동대표이사로 일하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삶 깊숙이 침투해 있는 그가 나는 몹시 궁금해졌다.
될성부른 나무였던 그는 대학 시절 컴퓨터그래픽을 독학한 뒤 ‘아트디렉터’라는 직함이 쓰인 명함을 만들었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으며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떡잎을 알아본 프리챌 대표는 그를 창업 멤버로 채용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네이버의 디자인팀장이 됐다. 보통의 디자이너는 누군가 정해 놓은 방향에 맞춰 결과물을 내놓는 데 그치지만 그는 ‘오너십’을 발휘했다. 오너의 고민을 제 일처럼 떠안는 것은 물론 일이 돌아가는 상황이 자신의 상식에 어긋날 때는 오너를 설득해 해결책을 찾았다. 심지어 어떠한 일에 자신이 필요 없다고 느껴질 때는 오너가 돈을 낭비하지 않도록 그 사실을 솔직히 알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일하는 사람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남의 일을 자기 일로 만들어버리는 몰입은 그가 디자이너에서 기획자를 거쳐 마케터로 영역을 넓히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밤잠을 설치며 일에 몰두했음에도 그저 감각이 좋은 사람으로 비치는 상황이 억울하단다. 그의 투정을 읽은 나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일하며 새워온 밤이 수두룩하건만 감각이 좋다는 칭찬 따위는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하루가 다르게 지쳐가는데 그는 날로 성장하지 않는가. 도대체 우리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관심 없거나 힘든 일도 일단 해본 뒤 스스로 물어보는 겁니다. ‘그럼에도 재밌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그게 뭐였을까?’ 이처럼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 일은 더 이상 ‘재미있는 일’, ‘힘든 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내가 해야 할 모든 일이 ‘좋아하는 것을 찾을 기회’가 됩니다. (중략)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 정해지면,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그 주변을 계속 맴돌며, 좋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좋아해 보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감각의 시작입니다.”
그러고 보니 동생은 남편과 사느니 못 사느니 하던 때도 있었지만 그의 단점보다 장점을 높이 사 아이 셋을 낳았다.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며 눈물을 뚝뚝 흘린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보고 있으면 예쁘다며 육아를 해냈다. 율동 수업 시급이 짜서 아쉽기는 하지만 나에게 밥을 살 수 있는 정도는 되니 그걸로 족하다고 말했다. 동생이 일을 하며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매사에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왔기 때문일 것이다. 언니가 돼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내가 좋아하는 국어사전에서 ‘감각’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느낄 감(感), 깨달을 각(覺). 감각은 있고 없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렷다. 내 안에서 잠자고 있을 일의 감각을 깨우기 위해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탁탁 키보드 치는 소리가 똑똑 감각의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처럼 들려왔다.

이주윤
여러 작가의 문장을 따라 쓰다 보니 글쓰기를 업으로 삼게 됐다. ‘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문해력’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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