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얼마 전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모내기 현장을 찾아 농민들과 새참을 들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참 오랜 만에 보는 살가운 풍경이다. 현직 대통령이 모내기 현장을 찾은 것은 12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그 사진 한 장이 오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추억의 힘은 강하다. 추억이라는 환등기를 통해 되살아나는 감각은 실제보다 더욱 강렬하다. 특히 사라진 것들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추억은 그 간절함으로 인해 날이 갈수록 생생해진다. 내게 그런 대상은 바로 못밥이다. 아, 이제는 사라진 그 맛있는 못밥!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어린 시절의 못밥 생각이 간절해진다. 1년 중 가장 청명한 계절이다. 그 푸르름과 밝음은 가히 황홀지경이다. 바로 이때가 모내기철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인 것이다.
모내기 풍습도 많이 변했다. 기계의 힘을 빌려 하는 요즘과 달리 예전엔 모든 것이 손으로 해야 하는 고된 노동이었고, 한편으로 축제와도 같은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모내기는 내 기억 속에서 환하게 빛나고, 못밥에 대한 추억은 내게 허기와 포만감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집 앞의 논에서 모내기가 있는 날이면 괜히 내 맘까지 들뜨고 바빴다. 바로 못밥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국민학교에선 모내기철이면 집안일을 거들라는 이유로 단축 수업을 했다. 그래서 오전 수업만 끝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나는 특별히 도울 집안일이 없었기 때문에 집 앞 이웃집 논에서 벌어지는 모내기 풍경을 구경했다. 그리고 이웃집 아주머니의 부름에 못이기는 듯 끼여 앉아 못밥을 얻어먹었다.
내 추억 속의 모내기는 눈부신 햇살 사이로 이웃 아낙네들이 음식을 가득 담은 점심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꼬불꼬불 논두렁을 따라 걸어오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한손으로는 바구니를 받쳐 잡고, 다른 한손에는 찰랑거리는 막걸리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
바구니 속에 가득 담겨 있던 음식들의 냄새가 고스란히 살아난다. 먼저 완두나 강낭콩이 듬성듬성 박혀 있는 흰쌀밥, 풋고추를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듬뿍 뿌린 자반고등어찜, 아침에 받은 두부로 만든 두부조림, 텃밭에서 기른 가지와 호박 볶음, 그리고 계란찜. 여기에 육개장이나 돼지고기 고추장찌개가 곁들여졌고, 풋고추와 상추쌈은 기본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상차림이다. 그런데도 꿀맛이었다.
무엇이었을까, 이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상차림을 꿀맛으로 만든 비결이란. 무엇보다 푸릇푸릇한 생기가 넘쳐 났다. 모든 음식에서 생명력이 느껴졌다. 특히 장작을 때서 지은 쌀밥에서 나는 냄새는 아직도 내 후각을 자극한다.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불 냄새’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못밥은 도시락이 아니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음식이었고, 그게 맛의 비밀이었다. 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위대함이란! 못밥은 내가 여태껏 살면서 경험한 가장 싱싱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못밥이 사라지고 있다. 예전과 같은 모내기 풍습도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를 자장면이나 탕수육으로 대신한다고 한다.
글·손일영(칼럼니스트)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