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970년대 당시 대통령 경호용 비밀시설로 건설된 여의도 지하 벙커가 미술관으로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지하에 위치한 지하 벙커는 색다른 역사성 때문에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과 같은 색다름이 ‘SeMA 벙커’의 묘한 매력이다.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여의도 지하벙커’가 미술관으로 돌아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0월 19일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지하에 위치한 여의도 지하벙커를 ‘SeMA 벙커’라는 이름의 미술관으로 정식 오픈했다. SeMA는 서울시립미술관(Seoul Museum of Art)의 영문 약칭이다. 전시장과 역사 갤러리로 구성된 SeMA 벙커는 향후 서울시립미술관과 연계한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운영해 여의도의 문화예술을 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의도 지하벙커 공개는 서울의 ‘유휴 지하 공간(SeMA 벙커, 경희궁 방공호, 신설동 유령역)’ 개방과 함께 이뤄졌다.
서울시 1년간 리모델링 공사
서울시 주관 아래 지난 1년간의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SeMA 벙커는 전시장 및 역사 갤러리 외에도 사무실과 기타 운영에 필요한 제반 시설들을 고루 갖췄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날 “망각 속의 역사적 장소를 개방해 시민들에게 공유 공간으로 전환했다”며 “동시대의 사회문화적 흐름을 고려하고 역사적·물리적 특성을 살린 전문적이고 혁신적인 전시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겠다”고 밝혔다.
SeMA 벙커는 상대적으로 문화예술 인프라가 부족한 여의도에 특화된 복합문화예술 공간을 지향함으로써 향후 서울시립미술관의 각종 프로그램과 연계한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운영, 여의도를 찾는 이들의 문화예술 향유를 선도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 ‘교차점’. 여의도를 출입하는 불특정 다수의 운동에 의해 나온 결과물에 집중한 사진들과 여의도라는 어떠한 좌표로부터 우리에게 인식된 소리들 사이에 교차점을 구성하고, 그곳으로부터 열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
는 작품이다. ⓒC영상미디어

▶ 1 ‘여의도 예비군복’. 향토예비군대원 복장 규정을 참고로 해서 예비군복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2 발굴 당시 화장실과 세면대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3 역사갤러리로 이동하는 관람객 ⓒC영상미디어
SeMA 벙커는 2005년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건립공사 도중 발견됐으며, 관련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추측이 어려우나 1970년대 당시 대통령 경호용 비밀 시설로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2015년에 서울시가 시민체험 행사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하면서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로 결정됐다. 이에 ‘여의도 지하벙커’는 개관과 동시에 서울시립미술관이 운영과 관리를 맡으면서 ‘SeMA 벙커’라는 정식 명칭을 갖게 됐다.
지난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는 SeMA 벙커는 연면적 871㎡ 규모의 공간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기 위해 작은 타일 형태의 바닥은 그대로 두고 낮은 층고 보완을 위해 천장을 노출 형태로 마감했다. 또한 전시 공간 확보를 위한 내벽을 덧대고 엘리베이터 및 항온·항습 시설 등을 구비했다.
개관 기획전, 여의도 과거와 현재 조망
SeMA 벙커는 개관 기획전으로 여의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한국의 근현대화 과정에 주목하는 전시 ‘여의도 모더니티’(10월 19일~11월 26일, 양아치 기획)를 선보인다. 네 팀으로 구성된 열한 명의 참여 작가(강예린, 진종헌, 신경섭, 김남수, 이나현, 유빈댄스, 송명규, 윤율리, 이유미, 조인철, 박정근)가 여의도에 대한 수직과 수평, 과거와 현재의 시선들이 교차하는 장면을 구성하며 새로운 방식의 힘을 탐구한다.
‘SeMA 벙커’ 전시 작품들은 여의도라는 공간과 과거 역사성에 주목했다. 윤율리, 이유미 작가가 손잡은 ‘할로미늄 여의도 베이스먼트’는 흰색 예비군복을 즉석에서 만들어 판매하면서 군사 산업의 모더니티를 들여다본다.
박정근·조인철 작가의 ‘교차점’은 남자의 턱과 손, 입 등 신체 일부를 촬영한 사진들을 보리건빵 포대와 야전침대 사이에 늘어놓고 음악을 깔아놓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몸짓과 손짓은 수십 년간 여의도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정치인임을 떠올리게 한다.
신경섭·강예린 작가는 ‘왜 우리는 벙커가 공원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가’에서 비행장 활주로에서 5·16광장으로, 다시 공원으로 변모해온 여의도공원을 사진 이미지로 드러낸다.
전시장 안쪽에 위치한 역사갤러리는 2015년 시민체험 행사 때 발견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해 아카이브 사진 및 영상자료전과 함께 공개된 바 있는데, 역사적 공간에 대한 원형 보존을 요구하는 시민들과 서울시의회의 의견을 수렴해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 작품 ‘엑소트로피아’를 관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C영상미디어
서울시립미술관은 SeMA 벙커 아카이브 프로젝트 영상을 기획해 역사갤러리 내에 추가 설치할 예정이며, 작가 윤지원(10월 19일~11월 26일)과 권혜원(12월 개최 예정)이 차례로 신작을 선보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울시립미술관은 향후 이 공간을 단순한 기록보관소가 아닌 지속적인 상상과 생산의 장소로 전환해나갈 계획이다.
백기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은 “끝없이 과거를 미래화, 현재화하는 것이 미술관의 일”이라며 “벙커가 위치한 공간의 의미를 잘 이해해서 새로운 문화·예술적 의미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SeMA 벙커 주요 전시 작품
■ 개관 기획전 ‘여의도 모더니티’

ⓒC영상미디어
- Park 시리즈 사진 작품 6점(신경섭)
비행장 활주로에서 5·16광장으로 그리고 다시 공원으로 공간의 기능이 전이된 현재 여의도공원의 모습을 사진 이미지로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 새롭게 변모된 공간의 지향점과 남겨진 현재 공간을 소비하는 주체들의 일상 모습을 통해 여의도공원이 과거 광장이었을 때와 기능적으로 차별화된 모습을 탐구한다.

ⓒC영상미디어
- 여의도 예비군복, 복합설치 작품(윤율리, 할로미늄)
여의도가 구현·은폐하는 군사-산업의 모더니티를 독창적인 취향으로 재해석해 군복을 만든다. ‘여의도 예비군복’은 국방부령 제229호가 정한 ‘향토예비군대원 및 방위 소집된 자의 복장 규정’을 지침 삼아 디자인됐다. 고객의 치수에 맞춰 정확한 피팅 과정을 거쳐 제안되는 이번 제품은 재킷, 바지, 모자, 벨트 네 가지 세트로 구성된다.

ⓒC영상미디어
■ 역사갤러리 특별전 ‘나, 박정희, 벙커’, 윤지원 영상
박정희 대통령 정권 시절인 1970년대 후반, 여의도광장에서 열리던 국군의 날 행사를 위해 청와대 경호실의 주도 아래 만들어진 방공호였다. 이 작품은 20여 년의 시간에 걸쳐 박정희라는 인물을 연기해온 배우 이창환과 그가 연기하는 박정희의 모습을 통해 한 사람의 얼굴에 오랫동안 다른 하나의 얼굴이 포개어졌을 때, 그 겹쳐진 이미지가 어떤 잠재력을 지니는가에 주목한다. 관객은 2017년을 살아가는 배우 이창환이라는 한국인과 1979년 이전의 박정희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정현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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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