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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수학자 로저 펜로즈, 인지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각 분야에서 저마다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반복과 순환, 변형, 무한한 공간, 3차원 환영의 파괴 등 독창적인 예술 세계로 사랑받는 에셔의 작품이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찾았다.

 

도마뱀을 거울방에 설치해 에셔의 작품에서 흔히 보는 대칭을 표현했다.

▶ 에셔의 작품에는 새, 물고기, 도마뱀 등이 자주 등장한다. 도마뱀을 거울방에 설치해 에셔의 작품에서 흔히 보는 대칭을 표현했다. ⓒC영상미디어

에셔전 전경 입구

▶ ‘그림의 마술사 : 에셔전’ 전경.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 벽면에 에셔의 사진과 일생을 기록해놓았다. ⓒC영상미디어

지난 2010년에 개봉한 영화 ‘인셉션’에는 무의식과 의식이 경계 없이 등장한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불분명한 경계가 주는 당혹감을 잘 표현해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했다. ‘인셉션’에서 봤던 ‘착시의 세계’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에셔(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1898~1972)’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에셔의 대표작 ‘올라가기와 내려가기’는 영화에 직접 인용되기도 했다. ‘올라가기와 내려가기’는 중세 수도원을 판화로 나타낸 작품이다. 끝없이 반복되고 순환하는 계단을 통해 수학자 펜로즈의 삼각형 이론을 표현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에셔는 건축장식 학교에서 그의 재능을 알아본 교수의 권유로 그래픽 아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학교를 떠나 그림 그리기와 목판 제작을 배우기 시작한 에셔는 초창기에는 풍경화를 위주로 그렸다. 에셔의 작품관이 확고히 굳어진 것은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여행하고 나서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무어인이 만든 아라베스크의 평면 분할 양식과 기하학적인 패턴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에셔는 새와 사자 같은 동물이 중첩된 문양을 시작으로 자신만의 패턴 반복과 공간의 환영을 표현한 작품을 쏟아냈다. 전시관에는 에셔의 작품 130여 점을 ‘시간과 공간’, ‘풍경과 정물’, ‘대칭과 균형’, ‘그래픽’ 등 4개 섹션으로 구분해놨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시간과 공간’ 섹션이 시작되며 에셔의 대표작이 전시돼 있다. 에셔 특유의 작품관이 담긴 3차원의 대상을 2차원 공간에 표현하면서 왜곡이 생긴 작품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뫼비우스의 띠 Ⅱ’, ‘폭포’ 등 공간을 비틀어 표현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에셔의 세밀한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도 볼 수 있다. ‘눈’은 손으로도 그리기 힘든 인체를 판화로 세밀하게 표현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예셔의 작품들

▶ 에셔의 대표작인 ‘올라가기와 내려가기’는 끝없이 반복 순환되는 계단이 특징이다.  ‘반사 공을 든 손’은 유리구슬에 비친 작가 자신을 표현했다. ‘껍질’은 에셔의 아내 위미커의 초상화를 사과껍질처럼 표현했다. ⓒ㈜와이제이커뮤니케이션

철저히 계산된 대칭과 균형, 3차원, 반복과 순환

‘풍경과 정물’ 섹션에서는 에셔가 초기에 주로 제작했던 풍경화를 볼 수 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본 풍경을 판화로 표현했다. 지중해 연안을 도보로 여행하며 바다와 인접한 작은 마을을 작품에 담았다.

‘대칭과 균형’ 섹션에서는 테셀레이션을 통해 만든 작품이 주를 이룬다. 테셀레이션은 4를 뜻하는 그리스어 ‘테세레스(tesseres)’에서 유래한 말로 정사각형을 이어붙이는 과정에서 생겨났으며, 동일한 모양을 이용해 평면이나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는 기법이다. ‘사각 한계’, ‘도마뱀’, ‘낮과 밤’ 등 같은 패턴의 반복, 패턴의 단순화로 공간을 가득 채운 작품을 통해 에셔가 몰두한 테셀레이션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그래픽’ 섹션에서는 에셔가 수작업으로 직접 만든 그래픽디자인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래픽을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컴퓨터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대에 활동한 에셔는 오로지 수학적 계산에 의존해 그래픽을 표현했다. ‘세 개의 구’, ‘풍향계’, ‘유대의 끈’ 등을 마주하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교한 에셔의 표현력에 감탄하고 만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에셔의 작품전이라는 점에서 이미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살아생전 평단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에셔가 예술가, 수학자, 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사랑받는 예술가가 된 이유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인간의 시지각과 착각, 진실에 대해 말하는 에셔의 작품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장소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관, 2관
일시 7월 17일~10월 15일(휴관 없음)
입장료 성인 1만 3000원, 청소년 9000원, 어린이 7000원
프로그램 도슨트 작품 해설 평일 11시, 15시, 18시(오디오 가이드 3000원)
문의 02-784-2117


장가현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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