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학창 시절 보이지 않게 팀에 공헌했던 ‘수비수’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신뢰하는 대통령 될 것”

송정규
경남중·고등학교 25회 동기회 회장
(전 한국도선사협회 회장)
“눈이 굉장히 크고 부리부리했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1971년 부산 경남고를 졸업했다. 피란민이 모여 살던 부산 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문 대통령은 부산 지역 최고 명문인 경남중과 경남고에 다녔다. 송정규 경남중·고등학교 25회 동기회 회장은 문 대통령과 고교 2, 3학년을 함께 지냈다. 학창 시절의 문 대통령에 대해 송 회장은 “보는 사람에 따라 첫인상이 다른데 미남이라기보다는 호감이 가는 얼굴이었다”고 기억했다.특히 크고 맑은 눈과 짙은 눈썹이 기억에 남아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다양한 학생과 두루 친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송 회장 역시 “재인이가 공부만 하는 성격은 아니었고, 불량한 학생부터 엘리트까지 가깝게 지냈다”고 전했다. 또 “원만한 성격이어서 친구들과 말다툼을 하거나 주먹다짐을 하는 일은 없었다”며 “두루두루 잘 지내는 성격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학창 시절 장래 희망은 ‘선장’
보통 정치인은 학창 시절 반장 등 간부를 맡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송 회장은 학창 시절 당시 문 대통령이 반장 등 간부직을 맡았던 적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남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죠. 뒤에서 조용히 있는 성격이었어요. 솔직히 재인이가 대선에 나온다고 했을 때 굉장히 놀랐어요. 친구들과 놀기 좋아하고 쉬는 시간에 축구나 야구를 하고 그랬어요.”
학창 시절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성격을 알 수 있다. 송 회장은 “축구를 할 때 공격이 아닌 수비를 잘했는데 보이지 않게 팀에 기여하는 타입이었다”며 “꽉 막힌 학생처럼 공부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극히 평범하고 재미난 학생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학창 시절 장래 희망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저에게 한국해양대학에 진학해 배를 타는 선장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후에 한국해기사협회 고문을 맡았는데 평소에도 바다에 관심이 많았어요. 재인이 동생은 현재 선장을 하고 있죠.”
학창 시절 지극히 평범했다고 기억되는 대통령의 대권 출마에 동문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대통령 출마 소식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묻자 송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 길을 가는구나 싶었어요. 명예회복을 하려 한다고 생각했죠. 그 힘든 과정을 용케 잘 버티는 것을 보니 장하기도 했고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시작은 좋지만 끝은 대부분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송 회장은 문 대통령이 “역사에 길이 남는 훌륭한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며 “편견 없이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고 진보·보수 양쪽을 아우르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초심을 잃지 않고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신뢰를 받을 수 있길 바란다”는 희망을 전했다.
송 회장은 동문으로서 문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에 좋은 점수를 주었다. 특히 문 대통령의 가식 없고 솔직한 성격을 강조했다. 부산에서 변호사 하던 시절에 자주 만났다면서 대통령 비서실장 할 때 부산에 내려온 문 대통령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바쁠 것 같아서 일부러 전화를 안 한다”고 말했더니 문 대통령이 “나한테 전화하는 사람 없어. 나 아주 한가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송 회장이 소송을 부탁한 적도 있는데, 문 대통령이 “시간과 돈이 많이 드니까 어지간하면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일화도 전했다.

▶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모교인 부산 경남고 정문에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연합
무슨 얘기든 끝까지 ‘경청’하는 대통령
“보통 사람이 편하게 사는 세상 만들 것”

우기현
경희대 법학과 79학번
(법과대학 민주동문회 회장)
문재인 대통령은 경희대 법학과 72학번이다. 문 대통령이 대학에 입학한 1972년은 유신헌법이 선포된 해다. 문 대통령은 1975년 4월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이 사형을 당한 뒤 사법살인에 항의하는 대규모 학내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됐다. 결국 강제 징집돼 특전사령부 제1공수여단에 배치됐으며,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1978년 2월 만기 제대했다.
복학생 문재인을 대학에서 처음 만난 우기현 씨는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나 역시 민주화 운동을 했는데, 우리 학번이 경험하지 못한 힘든 시절을 보낸 선배여서 보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됐어요. 후배들을 다독이는 복학생이었죠.”
문 대통령은 제대 후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법시험 2차 합격 통지서를 받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대학 후배였던 우 씨는 “법학과는 사법시험을 목표로 하는데 (선배의 사법시험 합격을) 당연히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다”며 “다만 일부 운동권 학생들은 사법시험을 출세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우 씨는 사회에 나가서도 문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어나갔다.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하실 때 한 번 만났어요. 동문들과 식사를 함께 했는데,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어떻게 부르냐고 물어봤죠. 그냥 ‘대통령님’으로 부른다고 하더군요.”
나의 꿈을 실현시켜줄 후보라 생각해 캠프 참여
우 씨는 2012년 대선 때부터 캠프에서 문 대통령을 도왔다. 대선 캠프에 참여한 이유가 궁금했다. 우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세상을 실현시켜주실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대답을 듣고 보니 우 씨가 생각하는 세상이 궁금해졌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편하게 사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우 씨의 바람은 비단 동문만이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희망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그런 나라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우 씨가 믿게 된 데에는 대통령의 경청하는 태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인연을 이어오면서 문 대통령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경험이 있었다.
“2016년 동문들이 경남 양산의 자택에 놀러간 적이 있어요. 선배님이 내가 대선 후보가 되느냐 아니냐는 나중 얘기고 지금은 보통 사람으로 대해 달라고 했어요. 양산 자택은 그렇게 크지 않아요. 집에 있는 의자를 다 가져다놓고 동문들이 모여 앉아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했는데 무슨 얘기든 끝까지 경청해주셨죠.”
동문으로서 문 대통령이 어떻게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랄까? 우 씨는 “국민이 편한 나라를 만든 대통령으로 기록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또 “정파를 초월한 통합의 지도자가 되어 국민을 즐겁게 하는 뉴스가 많이 나오는 나라를 만들어주길 바란다”는 희망을 전했다.
‘문재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말, 말, 말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가난을 마다하지 않고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어간 문재인을 기억한다. 그들의 기억을 들어본다.
가난
문 대통령의 부모는 6·25 한국전쟁 시 북한에서 내려와 경상남도 거제에 정착했다. 문 대통령은 1953년 1월 24일 경상남도 거제군 명진리의 허름한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다.
“1·4 후퇴 때 미군 LST(전차상륙함)를 타고 3일 만에 장승포항으로 피난을 오신 거죠. 한밤중에 숟가락 하나 못 챙기고.”(중·고등학교 친구 엄수훈)
“(대통령 어머님이) 구호품, 군화, 이런 걸 수선해서 내다 파시기도 하고 연탄 배달도 하셨어요.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자식 교육열만큼은 엄청나셨어요.”(초등학교 친구 서재현)
인권 변호사
문 대통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부산 지역 시국 사건과 노동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전국 최초로 노동법률상담소를 만들었습니다. 노동법률은 전국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었죠.”(당시 변호사 사무소 사무장 송병곤)
“실망시키지 않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 싸워주겠다, 그게 참 안도가 됐고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간첩단 사건 피해자 신귀영)
정치인으로 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문 대통령의 정치 인생이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문 대통령은 19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18대 대선에도 출마했다.
“본인이 결심을 하고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이제 내려올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이건 하나의 소명이다’라고 생각했어요.”(중·고등학교 친구 황호선)
이정현 | 위클리 공감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