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한반도에 평화의 꽃이 만개했다. 분단이 시작된 판문점은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며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을 약속했다. 두 정상은 종전 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을 적극 추진해나가고 남북 교류와 접촉을 늘려가기로 했다. 비무장지대는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고 군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합의했다. 그리고 결실의 계절 가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다.
오전 9시 28분, 문재인 대통령은 북쪽으로 향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쪽으로 다가왔다. 서로를 향해 조심스레 내디딘 발걸음. 두 정상은 만났다. 남북 정상이 서로의 손을 마주 잡은 건 꼭 11년 만이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남측에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을 건넸다. 이에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넘어온 뒤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면서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양 정상은 남쪽 땅과 북쪽 땅을 오갔다. 군사분계선은 한낱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김정은 위원장은 군사분계선을 넘은 북한 최초의 지도자가 됐다. 두 정상은 북측 판문각, 남측 자유의 집을 각각 바라보고 기념촬영을 했다. 화동들이 꽃다발로 김 위원장의 방문을 환영했다. 대성동 마을에 사는 남녀 어린이였다. 전통의장대를 지나 두 정상은 국군의장대를 사열했다. 2000년·2007년 두 차례 정상회담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당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육해공군 의장대를 사열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우리 측 수행원을 소개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정경두 합참의장, 주영훈 청와대 경호처장,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순이었다. 김 위원장도 북측 수행원들을 소개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철·최휘·리수용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리명수 총참모장, 박영식 인민무력상, 리용호 외무상,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남북의 통일·국방·외교 라인의 주요 인사가 총출동한 셈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인 한반도 비핵화·평화정착 의지가 수행원 소개 순서에도 반영됐다.
회담이 열리는 평화의 집에 들어선 두 정상. 김 위원장은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라는 문구를 방명록에 남겼다. 로비 전면에는 민정기 화백의 ‘북한산’이 걸려 있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는 북측 지도자를 서울의 명산으로 초대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었다. 두 정상은 본격적인 회담에 앞서 ‘북한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9시 48분, 양 정상은 김중만 작가의 ‘훈민정음’ 작품을 배경으로 사전 환담을 나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오는데 도로변에 많은 주민이 환송을 해주었다”면서 “그만큼 오늘 우리 만남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어 “오늘 판문점을 시작으로 평양과 서울, 제주도, 백두산으로 만남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불과 200미터를 오면서 왜 이리 멀어 보였을까, 또 왜 이리 어려웠을까 생각했다”며 “이 기회를 소중히 해서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분단선이 높지도 않은데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다 보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라는 말도 덧붙였다. 앞으로 남북 교류가 빈번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두 정상은 회담장 앞에 걸린 ‘장백폭포’와 ‘성산일출봉’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북측과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이 모두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면서 “이런 것이 6·15, 10·4 합의서에 담겨 있는데 10년 세월 동안 그다지 실천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우리가 11년간 못한 것을 100여 일 만에 줄기차게 달려왔다”면서 “굳은 의지로 함께 손잡고 가면 지금보다야 못해질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두 정상은 속도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에는 정권 중간이나 말에 늦게 합의가 이뤄져 정권이 바뀌면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임기가 이제 1년 지났다면서 지금의 빠른 속도를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 역시 “김여정 부부장의 부서에서 ‘만리마 속도전’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남과 북의 통일의 속도로 삼자”고 말했다.
남북 정상은 예정보다 15분 앞당긴 10시 15분 본격적인 회담에 돌입했다. 한반도의 미래를 논의할 평화의 집 회담장은 ‘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을 콘셉트로 꾸며졌다. 남북 정상이 마주한 둥근 탁자는 두 개의 다리가 하나의 상판을 받쳤다. 테이블 중앙 지점의 폭은 2018㎜로 제작돼 정상회담이 열리는 2018년을 상징했다. 두 지도자가 앉은 의자는 한국 전통가구의 짜임새에서 볼 수 있는 연결 의미를 담아 디자인됐으며 등받이 최상부에는 한반도 지도 문양이 새겨졌다.
정상회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두발언으로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수시로 만나서 걸리는 문제를 풀어나가고 마음 합쳐 의지를 갖고 나가면 우리가 잃어버린 11년이 아깝지 않게 좋게 나아가지 않겠나”라며 “오늘 이 자리에서 평화 번영, 북남관계의 새로운 역사가 쓰이는 그런 순간에, 이런 출발점에 서서 신호탄을 쏜다는 그런 마음을 갖고 여기 왔다”고 말했다. “수시로 만나자”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은 가을 정상회담을 염두에 뒀음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판문점, 분단 아닌 평화의 상징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사상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순간, 이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의 상징이 됐다”며 “오늘 대화도 그렇게 통 크게 나누고 또 합의에 이르러서 우리 온 민족과 평화를 바라는 세계 모든 사람에게 큰 선물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 정상의 만남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첫 만남이란 게 무색할 정도였다. 서로를 배려하고 가벼운 농담도 나누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면서 “대통령께서 편한 마음으로 평양냉면, 멀리서 온(멀다고 말하면 안 되겠구나), 좀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후 회담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11시 55분, 100분간의 오전 회담이 종료됐다. 두 정상은 각각 오찬을 갖고 오후 4시 30분 다시 만났다. 오후 일정은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공동 기념식수로 시작했다. 장소는 자유의 집 북문에서 북동쪽으로 50m 떨어진 잔디밭이었다.
이곳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떼를 몰고 고향으로 향했던 길목이기도 하다. ‘평화와 번영’의 소나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생으로 두 정상이 준비해온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동강 물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강 물을 줬다. 식수에 쓰인 삽자루는 북한의 숲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침엽수로, 삽날은 남한의 철로 만들었다. 소나무 앞에는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문구와 두 정상의 서명이 새겨졌다. 이 문구는 문 대통령이 직접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 기념식수를 마친 두 정상은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눴다. ‘도보다리’는 정전협정 직후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임무 수행을 위해 짧은 거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습지 위에 만들어진 다리다. 산책은 회담에 더 가까웠다. 오후 4시 42분, 다리를 건넌 두 정상은 군사분계선 표식 인근 벤치에 앉아 30분간 단독 대화를 나눴다. 당연히 통역도 필요 없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진솔한 이야기가 오가는 두 정상의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 사실상 ‘도보다리’가 ‘평화, 새로운 시작’의 현장이 된 셈이다.
오후 5시 40분, 판문점은 ‘한반도 평화시대’의 출구로 거듭났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하고 공동 발표했다.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관계의 전면적·획기적 발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상호 불가침 합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 등의 내용이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 공동의 목표임을 확인했다”며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해나가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이어 “김 위원장과 함께 남북 모두의 평화와 공동의 번영과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우리의 힘으로 이루기 위해 담대한 발걸음을 시작했다”고 천명했다.
김 위원장은 “온 겨레가 전쟁 없는 평화로운 땅에서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새 시대를 열어나갈 확고한 의지를 같이하고 이를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합의했다”면서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이 평화의 상징이 된다면 하나의 핏줄, 하나의 언어, 하나의 역사, 하나의 문화를 가진 북과 남은 본래대로 하나가 되어 민족 만대에 끝없는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회담이 잘됐다고 해 정말 기뻤다

▶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 양측 정상과 만찬 참석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오후 6시 30분, 남북의 만찬이 시작됐다. 만찬은 양측 정상의 부부 동반으로 이뤄졌다. 김정숙 여사는 하늘색 코트를 입고 평화의 집 앞에 나와 차에서 내리는 분홍색 정장 차림의 리설주 여사를 맞이했다. 두 퍼스트레이디는 손을 잡고 평화의 집으로 들어갔다. 리설주 여사는 “회담이 잘됐다고 해 정말 기뻤다”고 말해 김 위원장의 회담 만족도를 가늠케 했다.
만찬에는 남북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특히 과거 남북 교류의 산증인들이 참석해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북한 김영철 부위원장은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과 악수하며 “도대체 지난 10년 동안 어디 가 계셨습니까?”라고 반색했고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김성혜 북한 중앙위원회 실장을 보고 “얼굴이 아주 좋아지셨습니다”라며 웃음을 주고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만찬 환영사를 통해 “오늘 우리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고 귀중한 합의를 이뤘다”면서 “한반도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한 새로운 출발을 맞이했다”고 했다. 이어 “김 위원장과 나는 진심을 다해 대화했다”며 “마음이 통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나는 오늘 합의한 대로 수시로 때와 장소를 가림 없이, 그리고 격식 없이 문 대통령과 만나 우리가 갈 길을 모색할 것”이라며 “판문점 분리선 구역의 비좁은 길을 온 겨레가 활보하며 쉽게 오갈 수 있는 대통로로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환영만찬 식탁 위에 오른 메뉴에도 남북의 조화가 돋보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 가거도의 민어와 해삼초를 이용한 ‘민어해삼편수’,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김해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 쌀로 지은 밥,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올라간 충남 서산목장의 한우를 이용해 만든 ‘숯불구이’, 윤이상 작곡가의 고향 남해 통영바다의 ‘문어로 만든 냉채’ 등이 오른 것이다. 또 백두대간의 송이버섯과 제주의 한라봉을 사용한 차와 다과가 남북 화합의 의미를 더했다.
환영만찬이 끝난 후 평화의 집 앞마당에서 양 정상은 3D 영상을 감상했다. 평화의 집 전면을 스크린으로 활용한 영상의 주제는 ‘하나의 봄’이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손을 꼭 잡고 회담 당일 만나 찍은 사진들로 만들어진 영상을 시청했다.
오후 9시 25분, 남북 정상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김 위원장은 차량에 탑승했다. 장장 열두시간을 꽉 채우고서야 모든 일정이 마무리됐다. 앞으로 남북이 함께 풀어나가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남북 정상은 새로운 시작 앞에 섰다. 그리고 가을 평양에서의 만남을 기약했다.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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