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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혀끝으로 느끼는 전국일주 여행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한 말, ‘금강산도 식후경’. 이는 이제 고전이 됐다. ‘맛있는 음식’을 여행 목적 제1순위로 두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다. 자칭, 타칭 미식가들이 말하는 전국 곳곳 맛 여행지를 소개한다. 


고향 영주 ‘전통묵밥’,
진한 여름의 맛

묵밥

ⓒ조선DB

여행의 관성은 참 무섭다. 한 번 맛들이면 끊기 힘들다. 휴가철마다 겪는 복병도 있다. 빤한 데만 떠오른다는 거다. 항상 ‘새로운 곳’을 외치지만, 결국은 갔던 데 또 가고, 먹은 걸 또 먹곤 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몇 해 전 여름, 묘한 경험을 했다. 나는 경북 영주에서 나고 자랐다. 때문에 여름휴가로 영주를 찾을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디 신선한 곳 없을까’ 하고 찾던 중, 내 눈을 사로잡은 사진을 봤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풍경 같았다. 고즈넉한 집들을 가로지르는 잔잔한 강줄기. 그 위에 가지런히 놓인 외나무다리. 알고 보니 이는 영주의 ‘무섬마을’이었다. 20년을 살면서도 몰랐다니.

그해 여름휴가에는 무섬마을을 찾았다. 원래 이름은 ‘물섬마을’인데 발음 편의상 무섬마을이 됐다고 한다. 마을을 품은 산과 물줄기의 절경, 그 안에 들어선 고택, 그리고 마을의 자랑인 외나무다리까지. 세 번 감탄했다. 특히 그곳의 외나무다리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당시만 해도 관광지화가 되지 않아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매점과 식당이 단 한 곳밖에 없어 우리 일행은 식사를 다른 곳에서 해결해야 했다.

영주에는 맛집이 참 많다. 특히 시내에 위치한 쫄면 전문점 ‘중앙분식’은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꼽힌다. 양념 맛이 매우면서도 깔끔해 중독성이 있다. 매운 걸 못 먹는 사람은 간장쫄면을 먹으면 된다.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메뉴다. 일반 쫄면보다 굵은 듯한 면발이 탱글탱글 찰지다. 한우도 유명하다. 소백산맥의 맑은 물과 충분한 일조량, 큰 일교차 속에서 자라 부드러운 육질을 자랑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추천하고 싶은 음식은 ‘전통묵밥’이다. 많은 사람이 영주에 오면 부석사, 소수서원을 찾는다. 이곳에 들르기 위해서는 꼭 지나쳐야 하는 곳이 있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을 탄생시킨 ‘청다리’가 있는 순흥면이다. 여기에 가면 영주의 전통 음식, 반가 음식 중 하나였던 메밀묵을 만드는 집이 있다. 메밀 음식은 조선시대 반가에서도 사용했었다고 한다. 반가에서 주로 먹던 메밀묵을 주재료로 발전된 음식으로는 묵밥과 영주에만 있다는 묵, 돼지고기, 김치 등을 넣은 태평초가 있다. 

순흥전통묵집에는 메뉴가 딱 하나다. 묵밥뿐이다. 40년 동안 가마솥에 직접 쑨 100% 메밀묵을 사용한다. 숭덩숭덩 썬 메밀묵에 김치, 구운 김, 깨, 간장 등의 고명이 얹어 있다. 무심하게 ‘툭’ 한 그릇 나오지만, 그 맛은 여느 미슐랭 레스토랑 저리 가라다. 그날 이후, 여름이 오면 묵밥 한 그릇이 떠오른다.

박준미 | 하나투어 근무

 


보성에서 ‘더울 땐 녹차 아이스크림,
찬바람 불면 전어’

전어

ⓒ조선DB

전남 보성 하면 마치 자동 완성이라도 되듯 ‘녹차 밭’이 떠오른다. 보성을 표현하는 색깔이 있다면 단연 푸른색이다. 이는 비단 녹차 밭 때문만은 아니다. 흔히 보성을 ‘3경 3보향(三景 三寶鄕)’의 고장으로 부른다. 이 중 3경은 보성의 산, 강(호수), 바다의 경치를 지칭하는 말로, 모두 푸른색이다.

실제로 보성 활성산을 중심으로 산자락 곳곳을 이어주는 계단형 녹차 밭은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보성 차밭은 1939년 활성산 일대에 30만㎡의 대한다원이 문을 연 이후 면적이 점차 확대돼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여기엔 녹차 밭 말고도 대나무숲길, 삼나무숲길, 편백나무 산책로 등 다양한 숲길이 있다. 숲길을 걸은 후엔 이곳 특미인 녹차자장면, 녹차냉면, 녹차비빔밥 등을 맛보면 좋다.

보성엔 녹차만 있는 게 아니다. 날이 조금 서늘해지면 보성 전어를 추천한다. 보성의 어민들은 득량만에서 주로 전어를 잡고, 조그만 어항이 있는 율포해수욕장에서는 매해 전어축제를 연다. 그 맛은? 사람들이 보성 하면 ‘녹차 밭’과 더불어 ‘전어’를 떠올릴까 봐 두려울 정도랄까. 그만큼 나만 알고 싶은 맛이다.

노혜영 | 월간 호텔&레스토랑 기자

 


한여름부터 기다리는 겨울,
거제 외포리 대구탕

대구탕

ⓒ조선DB

미식가들은 겨울이면 거제 외포리로 간다. 이유는 단 하나. ‘대구’ 때문이다.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라는 말은 이미 ‘맛을 좀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대구 산란기인데, 이때 잡히는 대구 맛이 가장 기가 막힌다. 실제로 전국 대구 물량의 30% 이상이 거제 외포리에서 난다고 한다. 특히 대구회는 거제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다. 생대구회보다는 살짝 말린 걸 추천한다. 수분이 증발되면 대구 살이 좀 더 차지고 감칠맛을 내서다. 여기에 소주 한 잔 곁들이면 ‘술 도둑’이 따로 없다.

대구회도 일품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겨울철 대구 음식으로는 ‘대구탕’이 으뜸이다. 대구 대가리, 모자반, 무 등으로 우려낸 맑고 뽀얀 국물이 인상적이다. 이후 생강, 다진 마늘 등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낸다. 그 새하얀 국물이 어찌 그리 깊은 맛을 내는지, 먹을 때마다 감탄한다. 간은 소금으로 한다. 때문에 뒷맛은 깔끔하다. 겨울,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기 때문에 흉내 내기 힘든 외포리 대구탕. 한여름부터 겨울이 기다려진다.

최용훈 | 한식당 경영

 

통영 멍게비빔밥의
알싸한 추억

멍게 비빔밥

ⓒ조선DB

한국에서 ‘한 달 살아보기’가 유행한다고 한다. 나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2000년대 초, 경남 통영에서 어떤 사정으로 잠깐 살아보기를 한 적이 있다. 명목은 ‘집필’이었지만, 사실 펜보다 젓가락을 더 많이 잡았던 기억이 있다. 통영은 경상도의 전주라고 불릴 만큼 먹을거리가 풍부한 곳이다. 당시 서호동에 거주했었는데, 오다가다 마주친 외지 여행객에게서 들은 ‘통영 맛 여행 철칙’이 인상적이었다. “첫째, 통영이 원조인 음식을 먹어라. 둘째, 서호시장과 중앙시장의 좌판에서 제철 해산물을 먹어라. 셋째, 통영이 아니면 못 먹는 음식을 먹어라”였다. 마침 거주지가 서호시장과 가까웠던지라 머지않아 그가 알려준 철칙을 이행할 수 있었다. 그날 내가 선택한 음식은 멍게비빔밥. 멍게비빔밥은 통영이 원조다. 게다가 서호시장에서 먹었으니 한 번에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 셈이었다.

시킨 음식이 나왔다. 바로 비비는 건 멍게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젓가락으로 고이 집어 멍게만 우물우물 씹어 삼켜봤다. 입 안 전체에 바다 향기 훅 퍼뜨리더니, 알싸한 끝 맛을 남기고 새침하게 퇴장했다. 돌이켜보건대 그때 멍게의 끝 맛이 유독 알싸했던 건, 집필 중인 원고의 마감일이 임박해서였기 때문도 한몫한 것 같다.

지금 나는 특유의 방랑벽으로 캐나다에서 ‘살아보기’를 하는 중이다. 이곳에서는 생 멍게를 보기가 힘들다. 어쩌다 이곳 바다 냄새를 맡을 때면 그때의 아련한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주니 차 | 푸드 칼럼니스트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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