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인류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스마트 젓가락, 우리만이 만들 수 있다. 애플이나 구글은 할 수 없다. 그들은 젓가락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 고려 속요 ‘동동(動動)’에분디나무로 깎은 나무젓가락이 등장한다. 이를 바탕으로 충북 청주시는 분디나무 젓가락을 새롭게 개발했다.
젓가락은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식사문화를 상징하는 도구다. 세 나라의 젓가락 기원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중국이 가장 먼저 젓가락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은나라 때 사용했던 청동젓가락이 시기적으로 가장 오래됐다.
우리의 경우 고려 속요 ‘동동(動動)’에 분디나무로 깎은 나무젓가락이 등장하지만, 젓가락 사용은 그 이전에 시작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대체로 일본이 동양 3국 중 가장 늦게 젓가락을 사용했다고 한다. 중국 위진남북조시대(3~6세기)의 사학자 ‘진수’가 쓴 <삼국지>의 ‘위지왜인전’에 따르면, 왜인(일본인)은 맨손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대목이 있다.
수저에 깃든 우리의 정신문화
한·중·일 세 나라가 젓가락 동일 문화권이지만 그 역할과 기능, 문화적 가치는 서로 다르다. 중국의 젓가락은 세 나라 중 가장 길고, 일본은 가장 짧다. 우리는 그 중간쯤 된다.
기능 면에서 중국과 일본의 젓가락은 식탁 위에 놓인 음식(반찬)을 먹는 이의 밥그릇에 옮기는 역할을 한다. 반면 우리의 젓가락은 음식을 먹는 이의 입에 직접 넣어주는 실질적 도구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숟가락을 동시에 사용한다. 중국과 일본의 음식문화에서 숟가락은 반드시 필요한 도구가 아니다.
젓가락과 숟가락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점에 우리의 정신문화가 깃들어 있다. 우리의 젓가락 문화는 ‘짝의 문화’다. 젓가락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집을 수 없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이를 “짝으로 되어 있는 패럴렐리즘, 즉 평행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 평가하며 “젓가락이 갖고 있는 짝의 문화를 한층 더 완성된 상태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우리의 수저문화”라고 했다.
또 우리의 수저문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젓가락은 길쭉해서 양(陽)이고, 숟가락은 움푹해서 음(陰)입니다. 예컨대 수저는 남녀이자 부부(夫婦)이고, 고체와 액체의 결혼이라 할 수 있지요. 수저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발신자와 그것을 받아먹는 수신자라는 측면에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젓가락 옆에 반드시 ‘숟가락’을 놓는다. 젓가락과 숟가락이 동시에 필요한 이유는 밥을 비롯해 국물, 건더기 반찬 등으로 구성돼 있는 우리 음식의 구조적 특성에 있다.
모든 사물에 음양(陰陽)이 있듯, 김치와 깍두기를 비롯한 우리 음식은 서양의 샐러드나 일본의 단무지와 달리 국물과 건더기로 돼 있다. ‘융합적 음식문화’라 할 수 있는데 이를 먹기 위한 도구인 ‘수저’도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양(陽)인 건더기는 젓가락이 맡고, 음(陰)인 국물은 숟가락이 담당한다.
이어령 전 장관은 3국의 젓가락 문화에 대해 이렇게 비교했다.
“일본은 젓가락을 ‘저(著)’라 쓰고 ‘하시’라고 읽습니다. 그 소리를 숫자로 표현하면 8과 4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8월 4일을 젓가락 기념일로 여깁니다. ‘하시’는 ‘다리(橋)’라는 음과 같은데 사람과 사람, 성과 속을 이어주는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중국인의 경우 젓가락을 가리키는 말이 많아요. 요즘 중국인들은 젓가락을 ‘저(著)’라고 하지 않고 ‘쾌자(?子)’라 합니다.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풍습이 중국 전역으로 퍼진 건 해양문화가 발달한 남송 무렵입니다. 강이나 바다에서 배가 멈추는 것은 뱃사람들에게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빠르다’와 음이 같은 ‘쾌’ 자를 쓴 거예요. 빠른 항해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딸을 시집보낼 때 젓가락을 챙겨주는 풍습이 있어요. 아이가 빨리 생기길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수저문화의 특징은 무엇일까. 이어령 전 장관의 말을 더 들어보자.
“먹는 도구의 이름이 인체와 연결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숟가락, 젓가락은 ‘손가락’의 연장입니다. 그런 면에서 젓가락은 몽둥이와 정반대 속성을 지녔어요. 몽둥이는 주먹의 연장이자 근육의 연장이지만, 젓가락은 손가락의 연장이자 신경의 연장입니다. 힘의 상징인 몽둥이는 주먹보다 크고 뭉툭하지만, 섬세함의 연장인 젓가락은 손가락보다 가늘고 뾰족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젓가락은 내 몸의 피와 신경이 통해 있는 아바타인 셈입니다. 우리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먹지만 서로 바꿔 쓰기도 합니다. 마른 음식을 숟가락으로 먹기도 하고, 국물 속 건더기를 젓가락으로 먹기도 해요. 젓가락과 숟가락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단짝입니다. 혼자서는 절대 안 돼요.”
IT강국의 미래전략 “스마트 젓가락을 만들자”
1000년 넘게 이어져온 젓가락·숟가락 문화. 아쉽게도 지금의 우리는 ‘짝의 문화’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젓가락 대신 포크를 더 편해 한다. 식생활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젓가락질이 서툰 청소년,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젓가락 대신 포크를 사용해도 될까. 이어령 전 장관은 “젓가락질은 감상주의적인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미래에 던지는 희망이고 전략”이라 강조했다.
“짝의 문화에서 기적의 순간이 창조되는 경우가 많아요. IT 분야만 해도 그래요.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폴 앨런도 짝의 문화에서 큰 성과를 낸 겁니다. 젓가락이 하드웨어라면, 젓가락질은 소프트웨어입니다. 인공지능이 내장된 ‘스마트 젓가락’을 상상해봅시다. 먹는 음식의 모든 정보를 스마트 젓가락이 축적합니다. 특정인 한 사람이 먹는 음식 데이터가 한데 모이겠지요. 이를 전 국민이 사용하는 스마트 젓가락으로 확대해봐요. 나트륨, 중금속, 혈당 등 끼니마다 국민이 먹는 음식 데이터가 빅데이터(Big Data)화할 겁니다. 그 활용도는 천문학적이지요. 인류가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스마트 젓가락이 나올 수 있어요. 이런 것은 우리만이 할 수 있습니다. 애플이나 구글은 할 수 없어요. 왜냐고요? 그들은 젓가락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백승구│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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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