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식량보다 과학기술 연구소가 절실

정부가 과학기술 진흥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지 올해로 50년을 맞이했다. 1956년 미국과의 한·미원자력협정 체결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출발점이었다. 한·미원자력협정의 후속조치로 문교부(현 교육부)에 원자력과가 설치됐고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 인력 237명이 국비 유학생으로 해외에 파견됐다.

'과학기술 입국'을 천명한 제3공화국이 출범하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됐다. 1966년 2월 10일 서울 홍릉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가 들어섰고, 같은 해 9월 24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창립되었으니, 올해로 벌써 반백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진흥정책 50년의 흐름을 중요한 일 위주로 간략히 돌아보면 다음과 같다.

1959년 원자력연구소 건립,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설립 및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창립, 1967년 과학기술진흥법 제정 및 과학기술처 설립, 1971년 한국과학원(KAIS) 설립, 1976년 한·미과학기술협력협정 체결, 1977년 한국과학재단(현 한국연구재단) 설립, 1988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설치, 1990년 국립중앙과학관 개관, 1991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발족, 1992년 과학위성 우리별 1호 발사, 1994년 세계 최초 부호 분할 다중 접속(CDMA) 상용 시제품 개발 및 포항 방사광 가속기 준공, 1996년 고등과학원 설립, 2008년 한국 최초의 우주인 탄생, 2013년 첫 우주 발사체 나로호 발사 성공, 2015년 중소형 원자로 스마트(SMART) 수출 협약 체결 등이다.

정말 바쁘게 달려왔지만 하나하나가 1960년대 과학기술 진흥정책의 뿌리에서 시작돼 지난 50년 동안 자라온 눈부신 성과들이다. 지금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을 선도하는 30여 개 정부 출연 연구원 대부분이 KIST라는 뿌리에서 자라난 줄기들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에겐 식량이나 생필품보다 과학기술연구소가 절실하다"며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며, 그런 노력의 결과가 KIST 설립으로 이어졌다.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정부 정책의 뿌리들은 지난 50년 동안 우리나라 산업의 각 분야로 뻗어나갔다. 척박한 환경에서 과학기술의 토대를 닦은 과학자들의 연구 열정과 산업 전사들의 노력이 만나 우리나라의 경제 부흥을 앞당겼다.

과학기술진흥법이 제정된 때도 1967년 1월이었다.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종합적인 기본정책과 계획을 수립하고 그 시행을 위한 체제 확립과 재정 조치 강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법이다.

이 법에 따라 정부는 과학기술의 연구개발(R&D)을 위해 연구기관의 시설, 연구 과제, 연구원 양성, 연구체제 개선 및 기타 R&D에 관계되는 사항의 업무를 조정·관리하고, 업무 수행의 기준이 될 계획과 지침을 수립했다. 이 법은 몇 차례 개정을 거치며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 진흥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설립 후 50년간 과학기술 발전 주도
'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되기를

과학기술 진흥정책의 시대별 특성을 살펴보자. 1960년대는 KIST와 민간 과학단체인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설립되면서 과학기술의 기반을 닦은 시기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기형 박사를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에 임명했다. 김 장관은 미국 대통령 경제고문으로부터 "미국에서도 반대가 심해 세우지 못하는 과학기술처를 한국에서 먼저 세워 부럽다"는 인사를 받았다는 회고담을 남기기도 했다. 1970년대는 선진국의 연구를 모방해 산업화로 연결하는 시기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

▶ 박정희 대통령이 1976년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우리 기술로 개발한 무기를 둘러보고 있다.

 

1980년대 접어들어 R&D 예산이 국민총생산(GNP)의 2%에 머물렀지만 다른 나라 기술을 모방하던 연구 풍토의 틀을 깨고 기초과학 연구 진흥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분야에 선제적인 투자를 시도했다. 1990년대에는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우주, 원자력, 해양 분야에서 기술의 자립화에 도전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연구기관이나 연구 인력이 줄어들었지만 2000년대 들어 과학기술부를 부총리 부처로 승격하고 R&D 투자를 늘리며 과학기술을 위기 극복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최근 수출에 성공한 중소형 원자로의 생산과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건설도 이 시기 뿌린 정책의 씨앗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계재난대응로봇대회

▶ 지난해 세계재난대응로봇대회에서 우리 기술로 만든 로봇 휴보가 우승했다.

 

'혁신의 순간들'(박영아 지음, 2015)이라는 책에서 전직 장관이 말한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조언을 들어보자. 서정욱 제20대 과학기술부 장관은 "통치자가 바뀌어도 과학기술 정책이 연속적으로 유지돼야 한다"고 했으며, 오명 초대 과학기술부총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소와 조직이 무의미하게 통폐합되는 건 보여주기식 개편일 뿐 아니라 연구의 지속성을 떨어뜨린다"며 전시 행정을 비판했다. 과학기술에 관한 정부 정책은 연속성과 지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최고 전문가들의 말씀이다.

하지만 지난 50년 동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시대의 특성에 따라 이런저런 굴곡이 많았다. 과학기술 진흥정책의 씨앗을 뿌린 지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했지만 과학기술 진흥에 필요한 사업비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1992년 과학기술진흥법에 따라 설치된 과학기술진흥기금은 과학기술 기반 조성, 인력 양성, 과학문화 창달이라는 3개 분야의 진흥을 위해 사용돼왔다. 하지만 과학기술 50년인데도 그에 걸맞게 충분한 예산이 지원되지 않아 과학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사업이 뒷걸음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예산 책정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책의 씨앗이 제대로 열매를 맺으려면 물을 주고 거름을 뿌릴 수 있는 충분한 예산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또한 창의성과 상상력을 불태우는 과학기술인의 열정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바이오칩

▶ 미래를 이끌 첨단 기술인 바이오칩을 연구하는 모습.

 

출범 이후 한동안 KIST의 별칭은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였다. 꿈꾸는 과학자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꿈을 정부 정책으로 뒷받침한다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는 밝다. 과학기술 진흥 50년을 맞아 다시 '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가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 회장)
사진 · 동아DB 2016. 02. 08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