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 타오르는 물 1991
사전지식 전혀 없이 그의 작품을 봤다 치자. 일단 누구나 반하게 되는 것은 화려한 색채 아닐까 싶다. 독특하고 고매했을 예술세계 이전에 천진하고 분방한 동심이, 묻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보인다. 다음은 선이다. 직선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작품에서나 곡선과 나선이 빙글빙글 돌고 있으니 이채롭고 재미있다. 이 역시 동심과 가깝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 어렵지 않게 투영한 동심은, 곧 자연이다.
당신이 곧 만날지도 모를 이 작가는 자연에서 얻은 창조적 영감을 평생 표현했다. 그 작업을 ‘식물적 회화법’이라 했다. 마치 식물이 자라나는 것처럼 천천히 자신이 사랑하는 모티브를 그려나가는 식이었다. 물감은 대부분 직접 만들었는데, 여행하는 곳들의 자연 재료를 모아 만든 것도 많았다. 예컨대 아프리카 사막에서 담아온 흙으로, 또는 프랑스 해변에서 주워온 작은 돌로 색을 만들어 썼다.

▶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훈데르트바서의 작품 세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자연주의 화가 훈데르트바서 생전 모습.(오른쪽)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1928~2000)는 구스타브 클림트, 에곤 쉴레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다. 화가이자 건축가였고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환경보호 운동에 참여해 미국 워싱턴 시장은 1980년 11월 ‘훈데르트바서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서 반유대인들로부터 참혹한 학대와 상처를 받은 그는 외가 친족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나치의 만행을 목격한 뒤로 평생을 평화주의자이자 자연주의자로 살았다. ‘피의 비가 내리는 집’(1961), ‘행복한 죽은 이들의 정원’(1953) 등은 그가 겪은 전쟁의 잔혹한 상처와 관련 있어 보인다.
그의 작업방식은 그림만큼이나 독특했다. 절대로 이젤을 사용하지 않았고, 캔버스나 포장지 등을 수평으로 눕혀서 작업했다. 수평은 자연이며, 수직은 부자연스럽고 인공적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의 작품 몇몇은 위와 아래가 따로 없는, 어느 방향에서 봐도 의미가 사는 것들이었다. 인간과 자연의 평화로운 공존, 작품과 자연의 편한 조화를 중시한 그는, 그림이 완성되면 정원에 나가 나무나 꽃을 옆에 놓고 작품이 자연 속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지 보곤 했다고 전해진다.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누구든 그를 ‘색채의 마법사’라 일컫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훈데르트바서는 전통적인 색의 조합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대담한 컬러들을 구사했다. 특유의 색감은 그가 직접 만든 색채에서 비롯됐다. 그는 특히 흐린 날과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자연과 사물들은 촉촉해진 세상에서 본래의 생명력을 한껏 발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선의 미학’도 그를 상징하는 말이다. 그에게 나선은 삶과 죽음의 영원한 순환을 뜻한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순환을 말하기도 한다.
그는 미술교육을 정식으로 받은 일이 없는 것처럼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건축가로 불렸다. 그러나 생전의 그는 자신을 건축가로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병든 건축물들을 재탄생시키는 ‘건축치료사’라고 스스로 칭했다. 그 결과물은 50개에 이르는 친환경 건축물로 전 세계 도시에 남았다. 환경운동가로도 활동해 작품 판매 수익기금으로 6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다.
자연은 늘 인간 예술활동의 소재가 되었다. 자연을 뿌리로 삼은 주제의식은 화가는 물론 예술인 대부분의 단골 메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훈데르트바서’라는 이름이 특별히 빛나는 것은 실천의 용기와 지속성 때문이다.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한 색채의 마술은 덤이다.
훈데르트바서 특별전 ‘그린 시티’는 3월 1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이상문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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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