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찬 바람이 가슴을 휘젓는 가을엔 발걸음부터 늦추자. 모던보이가 거닐던 거리에선 시간을 거스르는 여행이 시작된다. 19세기 후반 바닷길을 열며 근대문화를 흡수한 우리 땅엔 교회와 성당, 은행, 백화점, 다방이 들어서며 웃옷을 갈아입었다. 그곳은 세월의 먼지를 그대로 쌓거나 또 다른 세월의 옷을 갈아입은 채 시간을 붙잡고 있다. 여행객이 보아야 할 것은 개화기의 찬란함, 그리고 외세 수탈의 뼈아픈 역사다.
르네상스 건물의 화려함과 달동네의 소담함을 동시에 목포

▶유달산 자락에는 일제 때 지어진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옛 일본영사관이었던 목포근대 역사관은 1900년에 세워진 목포 최초의 서구식 건물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목포는 1897년 목포항이 개항하면서 근대도시로 발전했다. 온금동에서 유달산을 거쳐 일본인 골목, 도심 오거리까지 대부분의 길목들이 100년 세월을 담아낸다. 시가지가 형성되기 전 뱃사람들이 살았다는 온금동 유달산의 가파른 경사길엔 푸른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이 달동네의 소담스러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반면 유달동 일대 일본인 거리엔 반듯한 골목과 가옥들 사이로 1900년 세워진 목포 최초의 서구식 건물 목포근대역사관(옛 일본영사관)이 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설계된 건물은 방마다 설치된 벽난로 하나가 당시 집 한 채 값을 호가할 정도로 화려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교복을 입고 3·1운동을 재현해보거나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듣고 있자면 화려한 일본인들의 세상과는 딴판이었던 조선인의 애한을 느낄 수 있다.
오거리는 1970~80년대 이름을 날렸던 시인들이 예술을 논한 묵다방, 민물다방 등이 즐비했던 곳이다. 2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오는 갑자옥 모자점 등이 남아 있으며 옛 화신백화점, 호남은행 목포지점 등 문화재로 지정된 근대 유적들을 만날 수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 ‘야인시대’의 촬영지로 화제가 된 일본식 이훈동정원도 옛 풍취를 전한다.
문의 목포문화관광 tour.mokpo.go.kr / 061-270-8430
도시 전체가 근현대사 야외 박물관 군산

▶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는 1930년대 야마구치 술도매상, 형제고무신방 등이 재현돼 있다. 동아DB
도보여행을 즐기기에 제격인 군산. 일제는 호남지역에서 수탈한 곡물을 군산항을 통해 실어갔다. 군산항에서는 3000톤급 기선을 댔다는 부잔교(뜬다리)와 수탈의 실상을 묘사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이 된 째보선창을 볼 수 있다. ‘쌀을 쌓아놓는 동네’라는 뜻의 장미동(藏米洞) 곡물창고는 지역 예술인을 위한 장미갤러리로 탈바꿈했다. 갤러리 옆에는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수탈한 쌀을 보관하던 창고를 개·보수한 후 개관한 77석 규모의 장미공연장이 있다. 1922년 건립된 조선은행은 근대건축관으로, 일본인 무역회사 미즈상사는 미즈커피로 바뀌어 관광객을 맞는다. 군산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옛 군산세관은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과 함께 국내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지금의 군산세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근대역사박물관에서는 야마구치 술도매상, 형제고무신방, 홍풍행 잡화점 등 당시 군산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1920년대 일본인이 운영하던 화과자점인 이성당은 군산 최고의 명물이다. 여기서 10분 남짓 걸어가면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의 촬영지가 된 일본식 가옥과 국내에 현존하는 일본식 사찰도 구경할 수 있다.
문의 군산시 문화관광 tour.gunsan.go.kr / 063-454-3304
근대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곳 대구

▶ 개화기 일본 유지들이 살았던 진골목. 대구 근대문화 골목투어 2코스에서 만날 수 있다.ⓒ연합
근대문화여행을 즐길 수 있는 5개 대구 골목투어 코스 가운데 두 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는 2코스가 가장 인기가 높다. 투어의 시작인 청라언덕에는 드라마 ‘각시탈’, ‘사랑비’ 등의 배경이 된 선교사들의 아름다운 주택들이 자리한다. 3·1운동계단에는 1900년대 초 대구의 모습과 3·1운동 당시의 사진들이 역사를 생생히 전달한다. 100년이 넘은 계산성당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유명 인사들이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저항시인 이상화 선생과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 선생의 생가를 지나면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귀화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이 만든 뽕나무 골목이 조성돼 있다. 한방차를 시음할 수 있는 약령시한의약박물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인 영남대로, 개화기 유지들의 마을 진골목 등이 이어지며 발끝에 역사를 소환한다.
문의 대구 중구 골목투어 jung.daegu.kr / 053-661-2623
개항 130년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인천

▶최고(最古) 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인 답동성당은 인천 최초의 성당이다. ⓒ연합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개항한 인천항(1883년) 주변 유적들에선 유난히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오갔던 연유로 전철을 이용해 여행하기에 좋다. 여행은 인천 최초의 천주교 성당인 답동성당에서 시작된다. 인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인 내리교회와 최초의 성공회 성당인 내동성당도 자리한다. 자유공원은 탑골공원보다도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맥아더 장군 동상이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 조계지와 청국 조계지의 경계를 이루던 계단을 내려서면 제물포구락부가 나온다. 외국인들의 사교장이었던 이곳은 개항기 모습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제1은행, 제18은행, 제58은행이 모여 있는 테마박물관거리도 지척이다. 개항 당시 부둣가 창고를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인천아트플랫폼과 인천의 대표 관광지인 차이나타운도 놓치기 아깝다.
문의 인천시 문화관광 icjg.go.kr/tour / 032-760-6440
일본인 가옥 80여 채가 모여 있는 곳 포항 구룡포

▶ 500m의 거리에 80여 채의 가옥이 이어진 포항 일본 가옥거리는 근대문화역사거리로 탈바꿈했다. ⓒ동아DB
1880년대 물고기 떼를 쫓아 포항 구룡포까지 건너온 일본인들은 집을 지었고 음식점, 제과점, 술집, 백화점, 여관 등이 들어선 거리는 날로 번창했다. 약 500m의 거리에 80여 채의 가옥이 최대 부흥기 시절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구룡포 공원 계단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서민의 생활상이 잘 드러난다고 해서 대한민국 경관대상을 받기도 했다. 건물마다 옛날 사진과 함께 설명이 붙어 있어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1920년대 구룡포 어업조합장을 지내면서 큰 부를 쌓았던 일본인의 2층 살림집은 근대역사관으로 탈바꿈했다. 80년 전 인기 요릿집이던 ‘후루사토야(일심정)’ 일본 가옥은 내부 형태를 그대로 보존한 채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일본의 다양한 차를 맛볼 수 있다. 일본인들이 공부하던 심상소학교(초등학교)와 1900년대 모습을 그대로 본뜬 우체통도 있다.
문의 포항문화관광 phtour.ipohang.org / 054-276-9605
글· 조영실(위클리 공감 기자) 2016.10.31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