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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세상의 통증 딛고 평화로 인간을 껴안다

한강은 매우 개성적인 숨결로 이채로운 말결을 파동처럼 빚어내는 작가다. 자신만의 스타일과 상상력, 주제의식으로 오로지 한강만이 빚어낼 수 있는 그윽하고 깊은 파동을 조율한다. 그녀가 다루는 인물들은 대체로 세상의 온갖 허물들을 모아 앓는 자, 상처 깊은 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상처의 심연으로 내려가서, 왜 현존재(인간)는 이토록 탈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왜 세상은 그토록 고통스럽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를 탐문한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는 맹수의 눈에 시달리는 악몽을 꾼 후 채식주의를 선언한다. 동물적인 공격성과 폭력성, 죽음을 몰고 오는 세계 파국의 공포와 불안 같은 것들 때문에 잠도 못 이루고 먹지도 못하다가 내린 결단이었다.

동물적 공격성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녀가 원하는 것은 식물적 평화였다. 그러나 남편은 물론 부모나 형제자매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 채 몸도 마음도 상하고 다치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그녀는 형부와의 예술적, 성적 일탈을 거쳐 정신병원에 갇혀 광기의 영역에 묻히고 만다.

물과 바람과 공기와 더불어 숨 쉬며 초록빛 나무가 되려 했던 그녀의 소망은,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계속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그녀의 둥근 가슴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충분히 일리 있는 몸의 항의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결구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조용히, 그녀는 숨을 들이마신다. 활활 타오르는 도로변의 나무들을, 무수한 짐승들처럼 몸을 일으켜 일렁이는 초록빛의 불꽃들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

한강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 대부분은 기아(棄兒)의식이나 그에 준하는 트라우마를 지닌 채 살아가지만 타인이나 세상을 향한 동물적 공격성이나 이렇다 할 적의를 보이지는 않는다. 그 대신 식물로 변신하는 과정을 통해 평화의 바람을 일으키기를, 아니 평화의 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평화로운 숨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동물적 공격성으로 점철된 현실이나 사람살이의 상황은 그런 소망을 지닌 사람들로 하여금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게, 혹은 질식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세상이 생태학적 진실에 따라 조금이라도 평화로운 식물성의 기미를 보여주었더라면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는 그토록 가혹한 악몽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그녀가 간절하게 숨을 쉬면서 세상을 쏘아보는 것은 그런 사정 때문이다.

이 연작에서 영혜는 세상의 변두리로 밀리다 못해 그 존재를 위한 최소한의 공간조차, 혹은 뿌리내릴 한 뼘의 자리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처지다. 그녀는 식물적 젖가슴으로 세상의 동물적 공격성에 대응했지만 턱없이 유약할 따름이었다.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광기의 영역으로 금줄 쳐놓은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는 운명 역시 그녀의 존재를 제한적이게 한다. 물론 그녀는 행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재하듯 존재하면서 성찰적 메시지를 제공하는 그늘의 존재다. 그늘 속에 음울하게 존재하는 그녀를 대하면서 독자들은 그녀에게 한없는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한강의 소설 어느 곳에나 통증이 있다. 격렬하다. 존재의 통각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깊은 심연으로부터 절실하다. 존재의 고통과 불안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나약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웅숭깊다. 긴장감 넘치는 숨결로 그녀는 질문한다. 우리 과연 숨 쉴 만한가. 우리 정녕 안녕한가. 우리 진정 진실한가. 세속과 세속적 이야기의 타락을 거슬러 진실한 숨결의 틈, 생명의 틈을 모색하려는 작가 한강은 오로지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럽고 그래서 가장 진실한 소설들을 독자들에게 선사해왔다. 맨부커상 수상을 축하한다.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47쪽 | 1만2000원

 

글 ·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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