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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지독히도 더운 여름을 보내야 했기에 마침내 찾아온 가을은 더 반갑기만 하다. 파란 하늘, 살랑 부는 바람…. 이런 가을을 온몸으로 느끼려면 걷기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중 으뜸은 아름다운 자연, 멋진 풍차가 있는 선자령길이다.

선자령길은 신재생에너지전시관에서 출발해 원점으로 회귀하는 12km 코스다. 이 구간을 걷는 동안 숲길, 오솔길, 시멘트포장길, 동해전망대, 거대한 풍차가 있는 고원의 초원, 선자령비, 계곡 옆 숲길 등을 지난다. 길과 숲에 피어난 야생화와 휘발하는 파란 하늘이 있어 더 아름답다.

 

 선자령길

▶선자령길을 혼자 걷는 여행자의 모습이 유유자적 한가롭기만 하다.

 

횡계 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선자령길 출발 지점인 신재생에너지전시관까지는 6~7km 정도 된다. 신재생에너지전시관 앞에서 출발 준비를 하고 걷기 시작한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를 건넌다. 안내판과 이정표가 보인다. ‘등산로 입구 0.1km’라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가면 ‘대관령 국사 성황당 입구’라고 새겨진 비석이 보인다. 비석을 지나면 ‘선자령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야생화가 여행자를 반기는 길
동해가 보이는 전망대, 풍차가 있는 풀밭

여행자를 반기는 건 야생화 쑥부쟁이다. 쑥부쟁이 옆에 물봉선이 피었다.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숨어서 피어난 꽃의 자태가 곱다.

침엽수 사이로 난 길은 크리스마스트리 같다. 그 위로 높은 가을 하늘이 열렸다. 하얀 구름 몇 점 떠있어 하늘이 더 파랗다. 휘발하는 가을 하늘을 따라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산구절초와 미역취가 오솔길 양쪽 옆에서 피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부드러운 흙길이 시멘트길과 만나는 곳 부근에 쑥부쟁이가 만발해 바람에 흔들린다. 가을 햇빛 아래 옹기종기 앉아 재잘대는 아이들 같다.

 

 선자령길 나무

▶선자령길에서 만나는 숲길은 길게 뻗은 나무들 덕분에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시멘트길에서 숲길로 접어든다. 숲속에 피어난 야생화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새로 보는 꽃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처음 보는 꽃도 있다. 흰진범, 촛대승마, 흰투구꽃…. 생김새만큼이나 예쁜 이름이다.

꽃의 높이에서 보이는 세상은 어떨까. 꽃의 눈높이에맞춰 길을 바라본다. 꽃을 두고 가야 하지만 그모양과 이름이 자꾸 떠오른다. 그렇게 걷는 동안 속으로 꽃의 이름을 새겨본다.

동해가 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 데크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 푸른 숲이 바다를 향해 번진다. 숲이 끝나는 곳에 사람 사는 마을이 있고, 그 앞에 바다가 망망하게 펼쳐진다. 가슴 뻥 뚫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사이 숲을 지나온 상쾌한 바람이 땀을 말려주고 있는 줄도 몰랐다.

파도처럼 넘실대는 산줄기에 걸어온 길이 묻혔다. 능경봉이 가깝게 보인다. 물 한 모금 마시며 명랑한 햇빛을 즐기고 있는데 중년 부부가 전망 데크에 도착했다. 자리를 펴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낸다. 함께 먹자는 말을 간신히 사양하고 다시 길을 걷는다.

 

 선자령길 야생화

선자령길 야생화

선자령길 야생화

▶선자령길은 야생화의 천국이다. 길을 걷는 내내 꼬리조팝 나무, 용담, 흰투구꽃 등을 비롯한 온갖 야생화들을 만날 수 있다.

 

부부가 함께 맞이하는 선자령길의 가을 하루가 있어 이 길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길은 사람을 품고 그 품에 든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 길의 이야기는 더 풍요로워진다.

숲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바쁘지 않은 걸음을 아예 멈추게 한 건 술패랭이꽃이다. 도도해서 오히려 고혹적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풍차가 힐끗 보인다. 선자령길의 또 다른 풍경, 풀밭에 세워진 거대한 풍차가 있는 곳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원의 풀밭에 우뚝 선 거대한 풍차 아래 사람들이 기대 앉았다. 바람에 풀밭이 넘실댄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풀밭 언덕을 넘어오는 사람이 보인다. 풍차의 거대한 날개가 ‘훙훙’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이 모든 풍경을 한눈에 넣고 바라보는 동안 시간은 멈춘 것 같았고 소리도 멈춰버린 시간 속으로 빨려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각시취가 피어난 길을 지나 ‘백두대간 선자령’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비석 앞에 도착했다.

 

가을이 피워낸 길 위의 작은 생명들
삼삼오오 간식 나눠 먹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

고원의 풀밭 여기저기에 서 있는 거대한 풍차가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쉰다. 이곳에서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 쉬는 것이다. 이 풍경 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돌아가지않아도 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횡계에서 사온 구운 계란과 음료수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삼삼오오 모여 간식을 나눠 먹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무리 지어 피어난 각시취 꽃밭 위로 잠자리가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쑥부쟁이를 뒤로하고 걷는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임도가 나온다. 대관령 방향으로 걷는다. 길은 하늘목장 방향과 구 대관령휴게소 주차장 방향으로 갈라진다. 구 대관령휴게소 주차장 방향으로 간다. 돌아가는 숲길에도 어김없이 야생화는 피었다.

가을이 피워낸 선자령길의 작은 생명들 때문에 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진다. 길 옆 계곡 건너 피어난 잔대와 개망초가 나뭇가지 사이로 간신히 비치는 햇빛을 밭아 반짝인다.

 

 선자령 고원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몇 점, 숲길 가엔 쑥부쟁이, 술패랭이꽃…. 선자령 고원에 오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후 4시가 지나고 있는 선자령길 계곡 숲길은 어둑어둑하다. 하늘을 가린 숲을 벗어나 파란 하늘 아래 길을 걷다가 꼬리조팝나무를 만났다.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면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친 곳이 나온다. 안내판에 ‘희귀식물 제비동자꽃 자생지’라고 적혔다.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는 길, 대관령휴게소에 도착했다. 대관령휴게소에서 도로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를 지나면 출발했던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이다.

대관령휴게소 매점에 앉아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횡계 버스터미널로 돌아가기 위해 오전에 타고 왔던 택시 기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을 하늘이 높고 파랗다.

 

글·사진 장태동(여행작가)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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