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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6연패 쾌거

제9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단이 6연패를 달성해 총 7차례 우승 기록을 세웠다. 현지시간으로 3월 26일 저녁 프랑스 보르도 엑스포파크에서 열린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폐회식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단이 금메달 열네개, 은메달 8개, 동메달 2개로 우승을 차지했다. 대만은 금 5개, 은 4개, 동 1개로 2위에 올랐고 3위는 중국에 돌아갔다.

이번 대회는 3월 23일부터 4일 동안 전 세계 35개국 50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펼쳐졌다. 총 48개 종목 가운데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은 39개 직종에 출전했다. 대회 초반에는 8시간의 시차와 24시간의 여정 등으로 컨디션 난조를 보였으나, 선수들은 이내 긴장을 가라앉히고 집중력을 발휘해 과제를 완성했다.

우리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 처음 도입된 분야에서도 강세를 보였다. 컴퓨터정보통신, 용접, 미용, 안경 제작 분야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것. 또한 목공예 직종은 지난 4회부터 이번 9회 대회까지 연달아 금메달을 따내면서 명실공히 세계 최고임을 입증했다.

한국 선수단장을 맡은 박승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은 "이번 대회는 주최국을 비롯한 참가국의 견제 등 모든 여건이 어려웠지만,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우승이라는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고소감을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곱 번째 종합우승을 달성한 대한민국 대표선수단의 쾌거를 온 국민과 함께 축하하며, 지금의 열정과 꿈을 살려 능력 중심 사회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고 축하했다.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 지난 3월 23일(현지시간)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린 제9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대회에서 종합우승한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9차례 출전해 7차례 우승한 ‘기술 강국’
수상자에게는 이십년간 기능장려금 지원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는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해’인 1981년 시작됐다. 이후 회원국 간 기능 교류를 통해 장애인의 기능 수준을 향상시키고 기능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4년마다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천구백팔십일년 일본 대회 참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9차례 출전해 7차례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귀금속공예

귀금속공예 금메달리스트 김정범 씨

"세밀한 수작업에 재미…
최선 다하면 꿈은 이루어진다"

올해 한국복지대학 귀금속보석공예과에 입학한 김정범(21) 씨는 이번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귀금속 분야에서 국내 선수단 중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대회가 끝나자마자 학교에 입학해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다"며 웃는 그는 이번 대회의 최연소 한국 국가대표이기도 하다.

김 씨가 도전한 귀금속공예는 무엇보다 세밀한 수작업이 요구되는 직종이다. 수행 과제는 지급된 재료인 은만 사용해 실제 크기의 브로치를 만드는 것. 과제 시작 전과 후의 은 무게를 측정해 제출한 최종 작품에서 약 5%의 손실만을 허용한다.

김 씨는 "공차 범위 0.2mm를 넘으면 감점되기 때문에 깔끔한 마무리 작업과 면 처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설명했다.

김 씨가 이처럼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귀금속공예를 처음 접한 건 언제일까. 지체장애 1급인 김 씨는 "손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우연히 귀금속 세공사를 알게 됐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 손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알아보게 됐고 주얼리디자인경영학과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죠. 그 학교에 기능대회를 준비하는 야간 기능반이 있었는데, 선생님의 추천으로 기능반에 들어가면서부터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열심히 노력했어요."

어렵지는 않았냐고 묻자 "단단한 판재가 휘고, 자르고, 땜질하는 과정을 거쳐 예쁜 모양으로 탄생하는 것을 보는 게 재밌기만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재미를 붙이며 날로 실력이 느는 김씨를 학교 선생님도 가만두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지방 장애인기능대회에 출전해보라는 선생님의 권유로 경험 삼아 출전했다가 1등을 했어요. 그후 몇 달 동안 정신없이 빠져들어 연습한 결과 이천십삼년도 전국대회에서 2등을 하게 됐고요. 그렇게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며 이번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국가대표로도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귀금속 공예 올림픽

 

국내 대회에서는 줄곧 실력을 인정받아온 김 씨였지만 세계무대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더 넓은 세상에서무수한 실력자들이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주러 나올 터. 사실 김씨는 금메달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다.

"이틀 동안 나눠서 대회를 치렀어요. 첫날에는 깔끔하게 만들려다 보니 속도가 좀 느렸고, 이튿날엔 속도를 올리려다 후반에 작은 실수가 생겼어요. 그래서 전혀 금메달을 예상하지 못했는데 1등으로 호명돼서 믿기지 않았죠. 눈물이 날 정도로 정말 기뻤어요."

김 씨는 곁에서 자신을 코치해준 지도위원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였을 거라고 거듭 말했다. 김 씨에게 이번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출전과 수상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그처럼 혹은 그보다 더 어려운 신체적 조건을 가진 이들에게‘불가능은 없다’라는 명제를 몸소 보여주었다는 것. 그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전했다.

"이번 국제대회의 우승을 귀금속공예가로서의 시작점으로 삼으려고 해요. 또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다른 장애인 분들께도 지금 하고 계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전하고 싶어요. 노력은 노력한 자를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조훈상

안경 제작 금메달리스트 조훈상 씨

"렌즈 깎는 기술 반복 연습…
치열한 몰입이 좋은 결과"

처음 도입된 직종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선수도 있다. 안경 제작 직종에서 우승한 조훈상(24) 씨가 그주인공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경광학과에 재학 중인 조 씨는 2015년 학과 교수의 추천으로 기능올림픽에 도전하게 됐다.

"처음에는 이런 대회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게다가 안경 제작은 처음 도입되는 종목인 만큼 어떻게 이걸로 기능대회를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왔죠. 또 타이틀 자체가 ‘장애인기능올림픽’이기 때문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저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라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 기회를 흘려보낸다면 언젠가 후회할 것 같았고, 잘만 하면 저한테도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국가대표 선발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조 씨는 자신이 아직 현업 종사자가 아닌 만큼 우승은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종목 출전자들은 적어도 해당 분야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가진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저는 실무 경험도 없을뿐더러 현장에서 난해한 과제가 출제되면 대처 능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하지만 이런 불안감이 조 씨로 하여금 남들보다 더 많은 연습과 노력을 하게 만들었다. 조씨는 "렌즈 깎는 기술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기초부터반복적으로 연습했다"며 "선발전을 통과한 후에도 기본이 부족하다고 느껴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열두시간을 실습실에서 작업했다"고 말한다.

첫 기능올림픽대회 준비 과정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이만큼 치열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몰입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힘든 순간도 많았다.

"집은 서울이지만 3개월 동안의 훈련은 (합숙소가 있는) 대전에서 했어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외로움을 견디는 게 가장 힘들었죠. 또 몇 시간을 집중해서 만들었지만 나중에 다시 보면 엉망이라고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화가 나고 자괴감이 들어서 ‘멘탈’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죠."

과정은 더디고 고통스러웠지만 결과는 달았다.

 

안경 조립

 

"금메달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몸은 시상대로 향했지만 머리는 하얘졌어요. 어떻게 시상식을 마쳤는지도 모를 만큼 얼떨떨한 상태였는데, 시상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지도위원 선생님과 교수님의 얼굴을 보자 비로소 ‘아, 금메달을 받았구나’ 싶더라고요. 그날은 기쁘고 설레서 잠도 2시간 정도밖에 못 잤어요(웃음)."

처음엔 자신의 장애가 드러날까 출전 자체를 고민했던 조 씨. 하지만 지금은 얻은 게 훨씬 많다고 느낀다.

"저 자신도 제가 갖고 있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계기가 됐어요. 장애가 있는 만큼 일반인들보다 크게 뒤처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본그들의 실력은 전혀 부족함이 없었죠. 사람에게 부족한 능력이 있다면 그만큼 뛰어난 부분도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장애가 불편할 수는 있지만 불가능하진 않다는 것도요."

 

이재철씨

목공예 금메달리스트 이재철 씨

"4년 기다린 결실, 자만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겠다"

이번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서 우리나라가 메달을 수상한 직종은 총 스물네개. 이 중 목공예는지난 4회부터 이번 9회까지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아 눈길을 끈다.

올해는 최고령 참가자인 이재철(51) 씨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부산 강서구 대저동에 살며 김해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이 씨는 무려 20년 가까이 목공예를 업으로 삼아온 베테랑이다.

"예전에 가구 제작 직종에서 금메달을 딴 친한 동생이 제게도 도전해보라며 제안을 했어요. 2013년부터 지방대회에 출전하며 전국대회, 국가대표로 차근차근 올라왔죠. 4년을 기다렸는데 이번에 그 결실을 보게 돼정말 기쁩니다."

목공예는 목공용 공구를 사용해 아름답고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한 목공예 작품을 제작하는 직종이다. 경기 당일 제공되는 과제의 모델을 토대로 영감을 불어넣은 작품을 완성하면 된다.

"지도교사 선생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저역시 오랫동안 목공예를 해왔지만 이론적으로는 부족한 부분도 많았으니까요. 장애인고용공단 직원 분들 역시 선수들의 잠자리부터 먹고 자고 아픈 부분들까지 꼼꼼하게 챙겨준 덕분에 아무 어려움 없이 연습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하지만 막상 타지에 도착하자 전에 없던 긴장감이몰려왔다. 특히 이웃나라 중국 선수들은 베테랑인 이씨보다 훨씬 오래된 경력자라는 말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이 씨는 "너무 긴장을 많이 했는데, 연습한 만큼만 하자는 각오로 차분히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그 마음을 심사위원들도 알았던 걸까. 결국 금메달은 이 씨에게로돌아갔다.

"이번 기회로 뛰어난 목공예 기술자들이 정말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도 자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장애인들이 도전하길 바라고,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양동화씨

기계캐드 금메달리스트 양동화 씨

"도전은 힘들었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 이번에 실감했어요"

양동화(32) 씨에게 인생은 그리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던 일에서 도망치는 심정으로 출전을 결심했다"며 이번 대회에 도전한 계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막상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나니 제대로 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매일 새벽 잠이 들기 전까지 연습 생각만 했어요. 주말은 물론 공휴일까지 연습에 매진했죠. 그래서 연습량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회 당일 생각지도 않은 과제가 주어지는 바람에 크게 당황하고말았죠."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하다. 게다가 옆 팀의 대만 선수마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고. 하지만 충분한 연습량 덕분인지 손은 정답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최종 작품으로 일렉트로닉 액추에이터를 만들었어요. 일종의 전기 실린더죠. 기계캐드 직종은 주관 평가보다 객관 평가 점수를 더 중요시하는데, 저는 객관 평가에서 최대한 감점요인이 없도록 완벽하게 작업하려 노력했어요. 그래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요."

결국 양 씨는 최고 점수를 받으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매순간 힘들었지만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악착같이 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되네요. 특히 일산직업능력개발원 기계설계 담당 이춘수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이번 대회는 한때 어둠 속에 있던 양 씨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더군요. 또 하나, 많은 장애인들이 이런 대회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라요. 이번 종합우승을 계기로 많은 장애인 분들께서 대회의 존재와 개최 시기, 개최 목적과 상금 규모 등을 알게 됐으면 해요."

 

· 김가영 (위클리 공감 기자)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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