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한계와 포기를 모르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은 위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달리는 패럴림픽 선수들의 도전사야말로 올림픽 정신을 오롯이 보여준다. 역경을 딛고 제2의 삶을 사는 스포츠 영웅들의 이야기.
수영의 기대주였던 여자 수영선수는 다리 한쪽을 잃고도 패럴림픽에 출전해 외다리로 물살을 가르며 금메달을 땄다. ‘인간 승리’의 주인공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나탈리 뒤 투아(32). 그는 2012년 런던패럴림픽 여자 수영 접영 100m S9급(지체장애 9등급) 결승에서1분09초30에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두드리며 외다리 사람으로서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
‘남아공 기대주’ 17세 때 교통사고로 다리 한쪽 잃어
사고 후 수영대회 출전… 마라톤수영으로 눈 돌려
뒤 투아가 한쪽 다리를 잃은 건 인생의 꿈을 막 피우기 시작하던 17세 때. 2001년 그는 새벽 훈련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로 가던 중차에 치여 왼쪽 다리 무릎 아랫부분을 절단했다. 남아공의 기대주는 무너지지 않았다. 2002년 그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영연방경기대회(Commonwealth Games)에 나가 처음으로 비장애인과 기량을 겨뤘다. 여자 자유형 800m 결승에 진출해 주목받은 그는 이 대회에서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외다리 수영 선수로 불리는 나탈리 뒤 투아. ⓒ신화사-뉴시스
뒤 투아의 인생 승리는 단순히 도전에만 있지 않다. 그는 ‘다리 없는 수영선수’라는 현실과 ‘자신이 해오던 종목’이라는 과거에 머물지 않았다. 사고 후 정상적인 발차기가 불가능하자 상체에 의존하는 마라톤수영으로 눈을 돌렸다. 이전에 하던 접영도 병행했다.
장애를 수영으로 극복하려는 그의 도전에 올림픽이 화답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때마침 10km 마라톤수영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이다. 뒤 투아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고 후 7년 만인 2008년 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그는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때 남아공 선수단의 기수로 선정됐고, 여자 10km 마라톤에서는 비장애인과 당당하게 겨뤄 참가선수 25명 중 16위에 오르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물론 감동만 선사한 게 아니다. 뒤 투아는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열린 베이징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2004년 아테네패럴림픽에 이어 2회 연속 5관왕을 차지했다. 그는 폐막식 때 ‘황연대 성취상’을받았다. 이 상은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장애인이된 황연대 전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부회장이 역경을 극복하고 전 세계의 장애인 복지를 위해 헌신해온공적을 기려 제정됐다.
지진으로 하반신 마비된 태권도선수… 휠체어 타고 양궁 도전
세계 최초로 올림픽·패럴림픽 동시 출전… "세상에 희망 쐈다"
태권도선수에서 양궁선수로 거듭난 이란의 자흐라 네마티(31)도 장애를 딛고 희망의 화살을 쏘아 올렸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네마티는 허리에 검은 띠를 두른 태권도 유단자였다. 올림픽에서 금빛 발차기를선보이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휠체어 탄 양궁선수 자흐라 네마티. ⓒAP-뉴시스
그의 꿈이 무너진 것은 2003년 12월 26일 이란 남동부 케르만주에 대지진이 몰아닥치면서다. 규모 6.7의 강진은 자동차를 타고 가던 네마티의 하반신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그런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태권도가 아니라 ‘활’이었다. 운동선수였던 데다 노력형이던 네마티는 활을 잡은 지 6개월 만에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섰고, 3위에 올라 이란의 장애인 양궁 국가대표가 됐다.
2012년 런던패럴림픽에 출전해 양궁 여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단체전에서는 동메달을 수확했다. 2015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장애인 양궁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어 올해 리우올림픽에 출전했다. 이란 국기를 들고 선수단 맨 앞에서 입장한 네마티는 올림픽 사상 최초로 휠체어에 탄 기수가 됐다.
올림픽 무대에 등장했지만 32강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관중석에서 뜨거운 갈채가 쏟아졌다. 선수에 대한 관중들의 답례였다. 네마티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리우패럴림픽에서 개인전 2연패에 도전할 예정이다.
올림픽 사상 최초의 장애인 선수로 기록된 미국 남자 체조 대표였던 조지 아이서도 불가능을 뛰어넘었다. 열차 사고로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아픔을 겪었던 그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에 출전해 평행봉과 뜀틀, 당시 정식 종목이던 줄 오르기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포함해 총 6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 살아가던 운동선수가 올림픽 사상 최초의 장애인 선수라는 기록을 세운 순간이었다.
미국 양궁선수 맷 스터츠만(29)은 선천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양팔이 없는 궁사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2012년 양궁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스터츠만은 자신의 누리집에 이런 글을 올렸다.

▶양팔 없는 궁사 맷 스터츠만. ⓒ신화사-뉴시스
"내가 처음 활과 화살을 본 것은 16세 때였다. 나는 완전한 인생을 살 것이다. ‘팔 없는 사람 중 최고’가 아닌 진짜 세계 최고가 될 것이다. 그게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2012년 런던패럴림픽에 미국 양궁 대표선수로 선발돼 양궁 개인전에 나간 그는 출전선수 중 유일하게 양팔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스터츠만의 활 쏘는 방식은 독특했는데, 일반 활과는 약간 다르게 생긴 활을 사용하고 목에 고리를 착용해 시위를 건 다음 오른발로 활을 밀어내 준비동작을 취했다. 이렇게 과녁을 겨냥한 뒤 입으로 고리에 걸린 시위를 밀어내 화살을 쐈다. 그럼에도양팔 없는 스터츠만은 런던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팔꿈치 아래 없는 탁구선수 나탈리아 파르티카. ⓒAP-뉴시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동반 출전한 폴란드의 여자 탁구선수 나탈리아 파르티카(27)도 장애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오른 팔꿈치 아래가 없는 그는 폴란드 여자 탁구팀을 이끌었고, 패럴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결승에서홈팀 선수를 응원하던 중국인들도 파르티카의 우승에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하반신 지체장애인 사격선수 이윤리. ⓒ뉴시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평범한 공무원에서 하반신 마비 지체장애인이 된 대한민국 여자 사격선수 이윤리(41)도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2006년 그는 사격에 입문한 뒤 2년 만에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한 데 이어 2008년 베이징장애인올림픽 사격 여자 50m 소총 3자세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제 그의 목표는 패럴림픽 출전 5회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 씨는 "리우패럴림픽은 과정일 뿐"이라며 "사랑하는 가족에게 금메달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글· 김건희(위클리 공감 기자) 201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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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