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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식물성 단백질 문화의 정수 장(醬)

“장은 모든 맛의 으뜸이요,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없다.”

 

인류는 음식을 날로 먹다가 익혀 먹었고, 발효시켜 먹으면서 역사의 발전을 이룩해왔다. 이 중 발효음식은 가장 발전된 조리법이라 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발효음식은 햇빛과 바람, 물 등 자연과 곰팡이(세균), 시간의 오묘한 만남에서 탄생했다. 요즘 유행어인 ‘슬로푸드(Slow Food)’의 전형이 바로 발효음식이다. 발효음식은 장수식품, 슈퍼푸드의 첫 번째로 꼽힐 정도로 ‘웰빙푸드(Wellbeing Food)’이기도 하다.


서양의 대표적 발효음식인 치즈와 요구르트가 동물성 단백질인 우유로 만드는 데 반해, 한·중·일 동양 3국의 대표 발효음식인 ‘장(醬)’은 식물성 단백질인 콩으로 만든다. 특히 우리나라의 된장, 간장, 고추장은 누룩에 의한 발효 작용으로 탄생한 음식이다. 식물성 단백질인 콩의 각종 영양 성분이 소화하기 쉬운 형태로 변화돼 있는 천연 조미료이며, 한식(韓食) 맛의 원천이기도 하다.

“되는 집안은 장맛도 달다”
김치, 된장찌개와 된장국, 청국장, 고추장찌개, 각종 장아찌류, 게장, 젓갈(식해), 식혜….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밥상에 오르는 이들 음식은 모두 발효음식으로, 대부분이 된장, 간장, 고추장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장을 즐겨왔을까?


중국에서 ‘장’은 <주례(周禮)>에 처음 등장한다. ‘장(醬) 12동’이란 표현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장은 콩이 아니라 고기로 만든 장, 즉 해(?)란 이름의 육장(肉醬)을 말한다. 진(晉)나라 때의 <박물지(博物志)>에 “외국에 시(?)가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중국은 진(秦), 한(漢)대 이후 외국에서 콩장(?)을 들여왔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 콩장이 늦게 시작되었다는 기록과 함께, 콩의 원산지가 만주(옛 고구려 영토)라는 사실에서 우리 민족이 콩을 주원료로 하는 장 문화를 독창적으로 꽃피워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문왕 3년조를 보면 “왕이 김흠운(金欽運)의 작은딸을 부인으로 맞으며 납채(納采)를 수레로 보내는데 쌀, 술, 기름, 꿀, 포, 장(醬), 시(?), 해(?·젓갈)가 135수레였으며 벼가 150수레였다”라는 대목이 있다. 신라시대부터 재료에 따라 다른 이름의 발효음식이 일반화돼 있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장은 젓갈(?)이고 해는 ‘젓’이며, 장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시장(?醬·메주로 만든 장)이 첫째다”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도 콩을 발효해 만든 된장, 간장, 고추장을 먹고 있으며, 가자미식해로 대표되는 생선 삭힌 장을 즐겨 먹고 있다. 현대에는 ‘장’이라고 하면 당연히 된장, 간장, 고추장을 말한다.


“되는 집안은 장맛도 달다”라는 옛말이 있다. 장맛은 바로 곰팡이가 결정하는데 지방마다, 집안마다 다른 곰팡이가 메주에 번식하기 때문에 똑같은 재료와 방법으로 메주를 쑤어도 그 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장 담그기가 집안의 큰 행사였다.


장맛을 좋게 하기 위해 금기사항도 많았다. 장을 담그기 전에 고사를 올리기도 했고, 장을 담그는 동안에는 주부의 외출도 금지했다. 장독대에는 금줄을 쳤고, 잡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버선을 거꾸로 달아놓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홍만선이 엮은 책 <산림경제>는 장의 중요성을 이렇게 적고 있다.


“장은 모든 맛의 으뜸이요, 인가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없다. 촌야의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없을지라도 맛좋은 장이 여러 가지가 있으면 반찬 걱정이 없다. 간장은 우선 장 담그기에 유의하고,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게 함이 좋은 도리다.”

장


콩 단백질의 위대함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서구의 ‘빠른’ 식문화(패스트푸드) 유입으로 우리 전통의 맛을 등한시해왔다. 그 결과 비만, 고혈압, 당뇨 등 현대 성인병의 만연과 건강염려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 발효식품이 건강식품, 장수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의 된장과 간장, 고추장이 각광을 받고 있다. 장 음식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박건영 차의과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각종 논문에서 “콩으로 만드는 된장에는 콩의 지질이 발효하면서 유리된 리놀레산이 50% 이상 들어 있으며, 콩의 황색 색소인 폴리페놀 성분과 레시틴, 식이섬유소 등도 들어 있다”며 “이들 영양소가 암 예방과  항암효과, 간 기능 회복과 해독효과, 혈관질환 예방, 고혈압 예방, 항산화효과, 기억력과 학습력 증진, 배변효과 증진 등의 작용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메주에서 우려낸 간장은 서양의 와인처럼 오래 숙성할수록 독특한 맛을 낸다. 일명 ‘조선간장’이라고 하는 집간장을 우리는 짜기만 한 것으로 알고 있겠지만 특유의 향과 단맛, 감칠맛 등 설탕이나 인공조미료로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복잡 미묘한 풍미를 갖고 있다.


된장에서 시작하는 한식의 장 문화는 고추장으로 끝이 난다. 새빨간 빛깔과 매운맛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고추장이 우리 음식문화에 들어온 시기는 조선 후기다. ‘왜겨자’라고도 불린 고추는 이전까지 담백했던 우리의 식문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한식 중 발효음식의 또 다른 대표 음식인 김치를 붉게 물들였으며, 우리 음식에 매운맛과 화끈함을 선사했다. 고추의 매운맛인 캡사이신은 기름의 산패를 막아주고 유산균의 발육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런 고추가 된장과 어울려 고추장이 된 것이다.


고추장은 된장, 간장과 함께 우리 식문화의 삼총사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음식 한류(韓流)’의 대표 주자인 ‘장’ 삼총사는 세계 식탁문화를 바꿀 보물이 될 것이다. 민속문화학자 주강현 씨는 저서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사람들은 동물성 단백질을 과도하게 섭취, 비만의 고통에 시달리고 난 후 식물성 단백질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며 “우리의 장 문화는 식물성 단백질 문화의 정수(精髓)이며 콩 단백질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백승구│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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