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대한민국을 절망에 빠뜨렸던 세월호 사고 1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늘로 떠난 수백 명의 영혼들이 살던 동네와 그들이 다니던 학교는 이제 안정을 되찾았을까. 세월호 1년을 열흘 앞둔 4월 6일, 기자는 안산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세월호 사고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났던 단원고였다. 사고 직후 학교 담벼락을 둘러쌌던, 떠나간 영혼들을 위로하는 수많은 노란 리본과 꽃, 그리고 편지들은 모두 깔끔하게 치워진 상태였다. 교문 위에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노란색 플래카드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시끌벅적하게 운동을 하고 있었고, 그 사이로 간간이 아이들의 활기찬 웃음소리도 들렸다.

▷단원고 고 양온유 양 가족의 기부로만들어진 단원고 옆 옥상공원 나무에떠난 아이들을 위한 유가족들의메시지가 매달려 있다.
'이웃'이 '이웃'을 위로한
아주 특별한 공연
단원고 인접 지역은 한 집 건너 한 집에서 아이를 잃었기 때문에 사고의 당사자가 아닌 이웃들 역시 엄청난 충격에 숨죽이고 살아왔다. 이 주민은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며 "이웃 주민들이 모여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조차 마음이 불편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움직임은 안산 곳곳에서 계속돼왔다. 침체된 지역의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4월 4일 '힐링센터 0416 쉼과 힘(이하 쉼과 힘)', 안산시, 안산희망재단,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안산시자원봉사센터, 경기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공동 주최해 안산 시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세월호 사고 1주기 기억 공연'을 열었다. 공연을 주관한 곳은 단원고 옆 건물에 위치한 '쉼과 힘'이다. 쉼과 힘은 지난해 10월, 세월호 아픔을 겪고 있는 주민들에게 쉼터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유가족들과 지역주민들이 힘들 때 찾는 지역민의 '아지트'로 통한다.
안산 단원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승화된 기억-응원'이라는 제목의 이번 공연은 안산시 지역주민 110명이 직접 공연에 참여해 이웃들을 위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공연은 가족 오케스트라와 58명의 어르신 합창단, 힐링 댄스 등으로 꾸며졌는데, 특히 단원고 후배 8명이 '내 꿈에 날개를 달고서'라는 뮤지컬 공연을 펼쳐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사고 354일째 되는 날, 시민들의 정성으로 열린 '응원 콘서트'는 안산 시민 700여 명의 눈물 어린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공연에 참여했던 안산 시민 정 모 씨는 "세월호와 관련해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공연을 통해 위로와 응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밝혔다. 공연을 관람한 시민 역시 "세월호와 관련해 눈물과 호소만 필요한 줄 알았는데, 이런 방법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 "특히 무대에 오른 어르신들의 밝은 모습에서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덧붙였다.
공연을 총괄 기획한 쉼과 힘의 황인득 센터장은 "재난 지역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건강한 나눔과 응원의 축제는 큰 도움이 된다"면서 "안산에서도 다양한 나눔과 표현이 시도돼야 한다"고 밝혔다.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안산 주민들의 노력처럼 지역 경제 역시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해 4월 20일 정부는 안산, 진도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재정, 금융, 세제 지원에 나섰다. 국민의 다양한 지원과 성원이 있었지만 안산시의 지역 경제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1년을 맞이하는 지금 그런 분위기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4월 4일 안산시에서 열린 ‘승화된 기억-응원’ 공연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내 꿈에 날개를 달고서’라는 뮤지컬을 공연하고 있다.
안산 지역 경제도 기지개
작지만 변화의 조짐
장바구니 경기를 체감할 수 있는 안산의 전통시장과 상가 밀집지역에서 세월호 사고를 겪으며 경기의 급락을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느낀 상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한 상가 주인은 "아직 경기가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힘들다"면서도 "세월호 사고 직후에는 술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는 많지는 않지만 손님이 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단원구 상가 밀집지역 내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 역시 "지난해 가을부터 아파트나 상가 매매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 전체적인 거래량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라고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세월호 피해자가 몰려 있는 단원고 근처 상가는 이 같은 분위기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단원고 인근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던 근처 전통시장은 사람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 좌판을 폈던 상인들이 떠나 자리를 지키는 곳이 얼마 되지 않았다. 이곳 상인들은 "여기가 한때는 좌판을 펼 자리가 없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던 곳인데, 지금은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단원고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인기가 많던 30평형(99㎡)대 빌라들이 3000만~5000만 원씩 떨어졌는데도 매매가 거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들과는 체감 경기에 차이가 있었다.
안산시는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각계 인사들로 구성된 '지역 경제 활성화 추진협의회'를 구성했고, 앞으로도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더불어 침체된 지역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지역 속으로 찾아가는 문화예술 축제도 펼칠 예정이다. 정부도 세월호 사고 이후 침체된 안산을 되살리기 위한 대책과 지원에 나서고 있다. 4월 3일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지원 및 희생자 추모위원회' 제1차 회의를 열고 피해자 지원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정부는 이날 회의를 통해 세월호 희생자가 속한 가구를 대상으로 생계 지원 차원에서 4인가족 기준 월 110만5600원을 최대 6개월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이 밖에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심리 상담과 치료를 위한 병원비 지원과 고용유지 비용도 지원하는 등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다각도의 지원이 이뤄질 계획이다.
힐링센터 0416 쉼과 힘 임남희 사무국장
"서로에게 든든한 힘으로 안전한 세상 만들 겁니다"

"괜찮냐고요? 저희 정말 괜찮아요."
월 4일 안산시 단원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승화된 기억-응원' 공연을 무사히 끝내고 가장 크게 박수를 친 사람은 바로 '힐링센터 0416 쉼과 힘'의 임남희 사무국장이었다. 110명의 일반인들이 무사히 무대에서 공연을 치르기까지 수없이 가슴을 졸여왔던 그다. 청소년부터 85세 어르신까지 모두들 최선을 다해 공연을 마쳤고, 시민들은 행복해했다.
"저희 센터는 서로가 서로를 위하자는 취지로 생긴 치유의 장이에요. 세월호 사고 관련자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와서 치유를 하고,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되자는 게 저희 센터의 목표입니다."
임 국장은 현재 안산 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바로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안산은 앞으로 매년 4월만 되면 모든 언론과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가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저 안산에 살아요'라고 말하면 '거기 괜찮아요라고 물어보세요. 그러면 저는 '저희 괜찮아요. 아무 일 없어요. 잘 먹고 잘 살고 있죠'라고 말해요. 그런데 외부 사람들 눈에는 저희가 잘 살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 거죠. 그래서 우리 지역을 '생명과 안전의 성지'로 가치를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외부 사람들이 찾아오면 너무 밝게는 아니더라도 품위 있게 '이 지역은 이런 곳이고, 우리 아이들이 여기에서 놀았다'고 설명해주자는 것이죠. 이렇게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면서, 앞으로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겁니다. 그래서 안전의식에 관한 한 상징적인 마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센터는 유가족과 지역주민들의 의사소통 창구 역할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런 센터의 노력으로 상처 입은 주민들이 하나둘 마음의 빗장을 풀고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다. 얼마 전 센터에서 유가족들과 지역주민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깊은 대화가 오갔다.
"유가족들은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볼까 걱정된다'며 조심하고, 지역주민들은 '우리가 웃으면 (유가족들의) 기분이 어떨까, 또 우리가 표정 없이 바라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조심스럽다'며 유가족을 배려하고 계시더라고요. 서로를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센터는 그동안 다소 소외됐던 생존 학생들까지도 세심하게 챙기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존 학생들에 대한 프로그램은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이제 정상적인 삶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니 살아남은 아이들이 대학을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답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한다는 건 굉장히 좋은 징후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더 이상 생존 아이들에게 관여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센터 옥상에는 단원고 고 양온유 양 가족의 기부로 만들어진 '온유의 뜰'이라는 테라스가 있다. 그리고 그 뜰에 있는 나무에는 유가족들이 하늘로 떠난 아이들에게 직접 쓴 메시지도 매달려 있다.
"여기 테라스에서 보면 단원고가 정면으로 보여요. 학교에서 가깝기 때문에 단원고 아이들이 이곳을 아지트처럼 생각하죠. 떠난 아이들과 남아 있는 아이들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 테라스처럼, 저희 마을도 그런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의사자 故 박지영 씨 어머니 이 모 씨
"씩씩하고 장한 내 딸 지영아 미안하다, 사랑한다"
▷어머니 이 씨의 핸드폰에 간직돼 있는 고 박지영 씨.
"아직도 딸아이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 제가 숨 쉬며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죄스럽고 미안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그립고 보고 싶네요."
인사말도 채 잇지 못한 채 수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렸다. 세월호 의사자인 고 박지영 씨의 어머니 이 모 씨. 딸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그 빈자리가 너무 크고 아프다고 했다.
세월호 승무원으로 근무했던 고 박지영 씨는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끝까지 배에 남아 있었고,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학생들에게 주며 "너희들 다 구하고 나는 마지막으로 나갈게"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물두 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살신성인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준 고 박 씨는 지난해 5월 의사자로 인정됐다.
"우리 지영이는 씩씩하고 당차면서 책임감도 강했어요. 무슨 일을 하든 적극적이고 깔끔하게 하는 편이라 야무지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죠. 늘 자신보다 엄마를 더 챙기는 딸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1년 동안 세월호에서 근무를 해왔던 박 씨는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 덕분에 승객들로부터 칭찬도 많이 받았다. 사고가 있던 날도 이 씨에게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동생처럼 무척 예쁘다"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항상 밝게 일하던 딸이 이날만큼은 엄마에게 전에 없던 투정을 부렸다고 한다.
"딸에게 문자로 '출항했니라고 물었더니 '엄마, 안개가 너무 많아서 출항을 못 했으면 좋겠어'라는 답을 보내왔어요. 그래서 '조심해서 다녀와'라고 답했던 게 딸과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그날 오전, 갑자기 지인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너희 딸이 근무하는 배의 이름이 뭐냐는 것이었다. 진도 부근에서 배가 침몰 중이라며 빨리 확인해보라는 내용이었다. 세월호처럼 큰 배가 침몰할 리 없다고 생각했던 이 씨는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TV를 틀었다. 이 씨는 "뉴스에서 세월호라는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며 "그 순간부터 모든 시간이 지옥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이 흐르고 딸은 단원고 학생을 구하다가 탈출을 못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 씨는 "우리 지영이는 그런 행동을 하고도 남을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혼자만 살고자 했다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텐데, 워낙 책임감이 강한 아이라 또 그런 일이 생겨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1년이 다가오는 가운데 이 씨는 또다시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짐을 느끼고 있다.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세월호 인양을 통해서 사건의 진상규명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부분은 엄마로서 꼭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이 씨는 마음이 안정되고 밖에 나가서 무언가 할 용기가 생긴다면 그때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기 목숨보다 남을 살리고자 노력했던 딸의 뜻을 이어받고, 이 씨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지영이도 자기를 희생해가면서 장한 일을 했잖아요. 제가 딸을 다시 만났을 때 '엄마, 정말 잘했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늘에 있는 지영이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내 딸 지영아, 장하고 고생했다. 미안하고 사랑한다."
글 · 김민주 (위클리 공감 기자) 201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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