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노사정이 9월 15일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대타협에 합의했다. 이번에 타결된 노동개혁은 청년고용 활성화를 강조하며 신규 채용 확대, 세대 간 상생고용 지원,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청년창업 지원 강화에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개혁은 세계적인 노동개혁 흐름에 발맞춘 것이다. <위클리 공감>은 우리나라 노동개혁의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네덜란드, 독일의 노동개혁을 2주에 걸쳐 소개한다.

네덜란드 중소 무역회사의 시장조사 파트에서 근무하는 반슬레이크 씨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만 일한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에이켄베르그 씨가 반슬레이크 씨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혹여 업무에 혼란이 빚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2년이 다 되도록 별다른 문제가 없다. 반슬레이크 씨는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자기계발을 하거나 레저 활동을 즐긴다. 사무실 대신 도서관이나 교외로 나서는 것이다. 에이켄베르그 씨는 쉬는 날의 대부분을 아이와 함께 보낸다.
네덜란드에는 이들처럼 일주일에 절반만 근무하는 근로자가 의외로 많다. 시간제 근로(파트타임)가 일반화돼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무실에서도 출근시간이 8시, 9시, 10시 등으로 제각각이다. 네덜란드는 시간제 근로 비율이 전체 고용의 37%에 이르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영향으로 연간 근로시간은 1380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그럼에도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60달러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연성이 크게 주어진 대신 본인에게 주어진 근무시간만큼은 집중적으로 업무에 몰두해 높은 성과를 보이는 것으로 평가된다.

연간 근로시간 세계 최저 수준
노동생산성 세계 최고 수준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폴 이스케 마스트리히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결과물을 내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어떤 일을 할지를 선택할 때도 장기적으로 보며, 일과 삶의 균형을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인력 운용업체인 랜드스타드 홀딩스의 경우 법률부서 변호사의 과반수가 시간제로 근무한다. 또 매주 수요일은 '아빠의 날'로 정해 오전에만 일하고 가정으로 돌아간다. 글로벌 금융기관인 ING의 계열사인 ING뱅크는 1만8000명의 근로자 중 3000여 명이 시간제로 일한다. 그중 87%가 여성인데, 상당수가 전일제(풀타임) 근무를 하다 육아를 위해 시간제로 전환한 경우다. 시간제라고 특정 직종이나 부서에 한정되지 않고, 근로자는 근무시간과 근무 장소에 대한 선택권을 갖는다. 주 3일(주 24시간) 또는 주 4일(주 32시간) 근무 형태가 일반적이다.
네덜란드 여성 취업자 중 시간제 종사 비율은 60%에 이른다. 1980년대 이후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자동화와 함께 서비스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여성 인력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이는 오전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집안일을 하면서 일·가정을 양립하려는 여성들의 요구와도 맞아떨어졌다. 정부에서도 맞벌이 부부에 대해 보육비를 소득과 연계해 지원하고 보육시설을 확대하는 식으로 육아 부담을 덜어줬다. 이미 오래전부터 휴직제도, 근무시간 규제(자발적 파트타임 근무 전환 후 복귀 시 풀타임 근무로 재전환), 육아제도 등이 자리를 잡은 상태다.
카텔레네 파쉬에 네덜란드노동조합총연맹(FNV) 부위원장은 "네덜란드에서도 정부의 긴축 프로그램으로 육아제도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에 악영향을 미친다"면서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임금과 동일한 근로 조건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 필요한데, 많은 국가들은 이에 관심이 없어 변화가 쉽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자발적 시간제 근로를 바탕으로 네덜란드는 지난해 말 기준 73.9%라는 높은 고용률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 및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가 활발한 덕이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시간제 일자리가 정착할 수 있게 된 가장 큰 배경은 전일제 근로자와의 차별을 없앴기 때문이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임금, 수당과 같은 근로 조건부터 교육·훈련, 휴가, 승진, 평가 등에서 시간에 비례해 전일제와 동등한 처우를 받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2013년 노사가 자발적으로 ‘위기 극복과 2020년 목표를 향하여’라는 사회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노동계는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경영계는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내용을 담은 1982년 ‘바세나르 협약(고용정책에 관한 일반 권고)’ 정신을 기반으로 진행됐다. 사진은 2013년 사회 협약을 진행한 네덜란드 노사 모습.
바세나르 협약
근로시간 주 38시간으로 줄여 일자리 창출
그리고 그 시작은 1982년 체결한 '바세나르 협약(고용정책에 관한 일반 권고)'이다. 1980년대 초반 네덜란드 경제는 두 차례 오일쇼크 속 세계 경기침체,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초과하는 공공 지출, 13%에 달하는 실업률, 파산 직전의 사회보장제도 등 4중고를 겪으며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을 심하게 앓았다. 특히 전문 기술학교 졸업생도 일자리를 얻지 못할 정도로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했다.
네덜란드 정치 중심지인 헤이그에서 북동쪽으로 15km를 달리면 나타나는 부촌 지역 바세나르. 호화로운 주택과 울창한 나무로 덮인 이곳은 전통적으로 왕족과 귀족들이 거주하면서 '베벌리힐스'로도 불린다. 지난 1982년 11월 빔 콕 FNV 위원장은 급증하는 실업자 문제를 풀겠다는 절박함을 안고 사용자 대표인 크리스 반 빈 경영인협회장(VNO-NCW)의 저택이 있는 바세나르로 달려갔다. 이 자리에서 노동조합은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경영계는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8시간으로 줄여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바세나르 협약을 체결했다.
임금 동결이라는 고통 감내는 수출 가격의 경쟁력을 회복시켰고 근로시간 단축과 직업훈련 등은 추가 고용 창출로 이어졌다. 정부는 세금을 낮춰 기업 부담을 줄여줬고, 보조금을 통해 기업의 생산과 고용 확대를 유도했다. 이는 1990년대 성장, 물가, 재정, 고용 등 모든 면에서 유럽연합(EU) 평균 이상의 성과로 나타나면서 '네덜란드의 기적(Dutch Miracle)'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1~95년 당시 EU의 평균 성장률과 고용 증가율은 각각 1.5%와 -0.6%에 그쳤는데 네덜란드는 2.1%, 0.7%에 달했다. 파쉬에 부위원장은 "바세나르 협약이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병을 치유한 원동력은 '컨센서스(합의) 경제'로 해석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지난 수십 년간 노사정이 대화와 타협으로 수차례 경제 위기를 극복하며 '폴더 모델(Polder Model)'이라는 대표적인 노사 모델을 구축했다. 폴더는 바다를 메워 만든 간척지라는 뜻으로 국토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 국민들이 수많은 자연재해와 집단 갈등 속에서도 단결해 간척지로 국토를 늘린 것처럼 노사정이 노동 유연성 확대와 일자리 나누기 등의 노동시장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음을 의미한다.
폴 이스케 교수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열려 있는 사회·문화라는 게 강점이고, 그래서 협상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비교적 인구가 적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구조적인 제약 요건을 네덜란드만의 문화로 극복한 셈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코트라) 암스테르담 무역관의 채경호 차장도 "세계 최초로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가 생겼던 네덜란드 국민들은 수많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민첩성과 유연성을 갖고 있으며 경제·산업 생태계를 보면 효율성과 공정성도 눈에 띈다"고 피력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마트에는 시간제 근로자들이 많이 근무한다. 네덜란드는 시간제 근로(파트타임)가 전체 고용의 37%를 차지할 만큼 일반화돼 있다.
바세나르 협약 정신 확대
노사의 자발적인 사회 협약 체결
이후 네덜란드는 1993년 신노선(New Course) 협약을 맺고 다시 한 번 근로시간 단축(주 38시간→36시간)과 임금 인상 억제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파트타임 업무에 대해서도 풀타임과 같은 대우를 보장했다. 1996년에는 해고 통지기간을 단축·간소화하면서도 기간제 근로는 최대 3년을 한도로 2차례 갱신할 수 있는 '유연안정성(Flexicurity) 협약'을 맺었다. 기업 경영의 유연화와 근로자의 고용 안정성을 동시에 모색한 것이다. '평생 고용은 없다', '노동시장의 활력이 필요하다' 등과 같은 인력 활용의 '유연성'에 대한 철학만큼이나 근로자를 보호하는 '안정성'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스케 교수는 "사람을 줄이는 것은 성장 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인식을 갖고 위기에서도 많은 회사들이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기업들이 훗날 더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노사 합의를 바탕으로 한 바세나르 협약 정신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유럽발 경제 위기 충격에 빠져 있던 2013년에는 노사가 자발적으로 '위기 극복과 2020년 목표를 향하여'라는 사회 협약을 체결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합의는 해고 관련 절차를 간소화해 효율성을 높이되 과도한 유연 근로 사용과 파견·하도급에 대한 편법적인 유연화는 막는다는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
협상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당시 노동계는 지나친 유연성의 부작용을 줄일 사회안전망 확충을 원했고, 사용자 측은 해고 절차를 간소화하려고 해 일종의 '패키지 딜'이 이뤄지게 됐다. 이러한 과정에 대해 파쉬에 부위원장은 쇠고기에 버터, 감자, 마늘 등을 섞어 푹 끓인 서양 음식 '스튜'를 만드는 과정에 비유했다. 그는 "간단한 비결은 결코 없지만 진정한 합의에 도달하려면 정부의 일방적인 조치가 아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모든 당사자의 의견을 고려해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합의에 따라 지난 7월부터 새로운 해고 시스템이 가동돼 경영상의 이유는 사회보장국(UWV)을 통해, 개인적인 사유라면 법원에서 판결을 내리도록 했다. 단 이들 내용 모두 각 기관의 동의가 전제되도록 했다. 다른 일자리로 이동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전직수당도 나이, 직무, 급여 수준, 근무기간 등을 종합해 계산하도록 명확히 했고, 1인당 최대 지원액을 7만5000유로로 정했다. 또 고용 계약 후 무기계약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3년에서 2년으로 줄이고, 실업급여 수급기간은 최대 38개월에서 24개월로 축소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 위기로 해고할 때 법원으로 가지 않아도 돼 해고기간을 단축하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노동재단의 한 관계자는 "기간제 근로자에 대해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다 휴가 명목으로 해고하는 식으로 유연화가 남용되는 것을 우려해 3년간 3차례 계약에서 2년간 3차례 계약으로 갱신 횟수를 제한하는 '쪼개기 계약 방지 법안'이 7월부터 시행됐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 같은 2013년 합의에 대한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실질적인 효과가 나오려면 최소 3년에서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의 경기침체 속에서도 지난 1분기 네덜란드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4.8% 늘었고 성장률도 2.5%로 비교적 탄탄했다. 2014년 기준 1인당 GDP는 5만2000달러로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네덜란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효율을 높여 또 다른 성장을 시작하고 있다.
인터뷰 | 제니 무렌 네덜란드 노동재단(FL) 사무총장
"위기 상황서 노사 합의, 새로운 노동시장 만들어내"

▷제니 무렌 · 네덜란드 노동재단 사무총장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난 제니 무렌 노동재단(FL) 사무총장은 노사 합의를 기반으로 꾸준히 개혁을 이어온 원동력으로 네덜란드의 '사회적 가치'를 꼽았다. 즉 사회적 대화의 기저에 새로운 노동시장을 만들어내려는 가치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지난 2013년 '위기 극복과 2020년 목표를 향하여'라는 사회 협약을 체결한 것에 대해서도 "실패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던 가운데 비밀스럽게 합의를 이뤄내 모두가 깜짝 놀랐다"면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사정 모두 단기간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함께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는 노사 협의기구인 FL과 노사·공익위원이 참여하는 사회경제협의회(SER)를 중심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1945년 창설된 FL은 노동조합연맹 및 사용자 단체들로 구성됐으며, 1950년 설립된 SER는 노사 공익이 중심이 돼 정부와 의회에 정책적 건의나 자문 기능을 하는 조직이다.
무렌 사무총장은 "노사정 간 동등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긴밀한 협조체제가 잘 갖춰져 있는 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면서 "노사 간 협약은 정책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노동개혁은 직무 트레이닝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며 "미래에 대한 전략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부분부터 시작하고, 가장 심한 갈등이 있을 만한 주제는 합의가 쉽지 않은 만큼 후순위로 미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네덜란드에서 노조 파업이 적은 건 노사정이 사회·경제정책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노조 파업 일수 통계를 보면 임금 근로자 1000명당 파업에 따른 근무 손실 일수(2000~04년)는 네덜란드의 경우 평균 10.7일로 유럽연합(EU) 평균 61.2일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8.5일에 비해 아주 적다.
무렌 사무총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떻게 나라를 재건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노조는 적은 돈을 요구하는 정신으로부터 FL이 탄생했다"면서 "이해관계가 다르고 마찰도 발생하지만 대화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파업이 드물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 상시 시간제 근로 외에 비정규직과 파견근로자가 증가하는 등 유연성이 과도하게 높아진 것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다. 그는 "고용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지도 맞닥뜨리고 있는 당면 과제"라며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 · 암스테르담=황정원 (서울경제신문 기자) 201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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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