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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경협에서 동반자로 한·중동 새 이정표

중동을 빼놓고는 한국 경제의 성장사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가난했던 시절 기술과 자본 없이 오직 사람의 힘으로만 땀 흘리며 일했던 열사(熱砂)의 땅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모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돈을 벌게 해주었다는 기억 차원이 아니다. 가진 것 없지만 열정 하나로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음을 최초로 경험한 곳이었다.

그 자신감이야말로 수주를 통해 벌어들인 돈 못지않게 한국 경제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중동 진출 42년, 사막 한가운데에서 길을 놓으며 고향을 그리워하던 한국 근로자들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대신 계약 주체로서 기술과 투자, 그리고 감리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 명실상부한 파트너로 자리 잡게 됐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4개국 순방은 파트너로서 중동 국가와의 기존 협력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의 확보와 더 폭넓은 사회기반시설, 건설 플랜트 진출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쿠웨이트에서는 철도, 항만, 신도시 인프라 구축 협력을 위한 합의를, 카타르에선 2022년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다양한 스포츠 인프라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대규모 토목 공사와 사회 인프라 건설은 한국의 흔적이 현지 곳곳에 남는 역사의 이정표가 된다. 1970년대 우리 손으로 지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관문인 킹 할리드 국제공항이나 주바일 항만은 한국 건설의 랜드마크로 여전히 찬사의 대상이다.

이번 순방은 기존의 건설 중심 경제관계를 넘어서는 새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리 원유의 주 도입선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자력 에너지 협력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데 눈길이 간다. 한국의 중소형 원전인 스마트 원전 수출의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향후 20억 달러 규모의 수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세계 최초의 중소형 원전 수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높은 안전성을 확보했고, 공기 냉각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물이 부족한 내륙 국가로의 진출도 용이할 것으로 보여 더욱 기대가 크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건설에 이어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자원은 중동에 주로 의존해왔지만, 이제는 우리도 원전 수출을 통해 에너지산업의 쌍방향 협력을 추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한국형 원전 수출

향후 20억 달러 수주 기대

보건·의료는 새로운 부가가치 및 상생관계 구축을 추진하는 유망한 협력 분야로 떠올랐다. 이른바 '의료 한류'다. 도로와 공항, 항만도 결국은 사람과 물자가 오고가는 교류의 틀이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협력은 어쩌면 인적 교류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이미 서울대병원 등 국내 5개 주요 병원이 UAE에서 의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번 순방을 계기로 이를 확대해 걸프 국가 내 의료 인프라 구축을 위한 협력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교육·훈련 확대, '병원 정보 시스템(HIS)'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출, 줄기세포 등의 연구개발 프로젝트들이 추진될 전망이다. 이렇게 생명을 살리고 건강을 증진하는 의료 분야는 현지 주민의 마음을 얻기 쉬워 향후 한국의 중동 외교에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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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식품산업은 중동과 의 또 다른 긴밀한 협력 분야가 될 전망이다.

 

눈길을 끄는 또 다른 협력 분야는 식음료 산업이다. 이른바 '할랄'산업 진출이다. UAE 정상과의 회담에서 이슬람권의 식음료 규정에 맞춘 수출체제를 구축해 2017년까지 약 12억 달러 분량의 먹을거리를 중동에 수출하기로 했다. 얼핏 보면 식품 수출은 전자, 자동차, 철강 등의 수출이나 건설 플랜트 진출에 비해 부가가치가 낮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향후 국가 식품클러스터 내 전용단지 조성으로 할랄식품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국내 외식 기업이 고급 할랄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이슬람권 진출을 확대하게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농업 및 유통, 서비스업 등과의 시너지가 일어나 우리 농업을 비롯한 산업계 전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교류와 협력의 절정은 사람에게 있다. 인적 교류는 곧 물자 교류와 기술 교류, 문화 협력을 포괄한다. 이번 순방을 통해 교육,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인적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향후 한·중동 관계가 단순히 물적 교역을 넘어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쿠웨이트국립대학은 올해부터 학부 과정의 한국 학생 장학금 쿼터를 늘려 더 많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현지 교육 기회를 지원할 것이다.

동시에 외교관·관용 여권 사증면제 협정도 발효돼 활발한 인적 교류의 물꼬를 튼 셈이다. 한국 국립외교원과 카타르 외교연수원 간에 업무협약(MOU)이 체결돼 외교관의 교차 연수 및 협력체제를 구축했고, 올해 3차를 맞는 국립외교원과 사우디 외교연구원 간 정례 협력회의에서도 더 깊이 있는 협력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국가 개조 프로젝트

형제 국가로 최적 파트너

이 모든 협력 사항은 이번 순방의 가시적 성과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런 가시적 성과를 넘어서는 부분에도 시선을 둬야 한다. 바로 중동 왕정국가와의 정상급 대면 외교의 효용이다. 올해 초 왕위를 계승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 역시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카타르의 타밈 국왕과의 대면 외교는 향후 대중동 외교의 자산이 된다.

특히 사우디에서 무크린 왕세제 및 유력 차세대 왕자군과 면담한 것은 매우 중요한 대면 외교의 출발점이다. 정기적으로 정부가 교체되는 민주공화정과는 달리 왕정국가는 꽤 오랜 기간 군주의 통치체제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얼마만큼 자주 대면하는가는 곧바로 양국 간 친밀성을 방증한다. 기존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 UAE와의 고위급 외교는 계속 진행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등과의 정상 외교도 지속함으로써 한국은 이들에게 신뢰할 만한 형제국가임을 틈틈이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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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중동 순방으로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중소형 원전인 스마트 원전 수출의 기반을 마련했다.

 

오랜 고유가 기조 덕에 편안하게 국가 운영을 해왔던 중동 산유 왕정국가들은 최근 아랍의 봄, 테러리즘의 발호, 금융 불안정성 등으로 인해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불안을 상쇄하고 안정적 기조를 유지하려면 새로운 국가 비전을 자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이른바 국가 개조 프로젝트의 동기다. 이를 위해 급속한 발전 및 사회체제의 안정적 운영 경험을 지닌 국가들과의 협력이 긴요하다.

한국은 중동 산유 왕정국가들의 이러한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파트너다. 이번 순방으로 석유와 건설로 대표되던 경제 협력을 넘어 서로의 불안을 해소해주고, 사람과 사람이 함께 갈 수 있는 또 한 발걸음을 뗀 셈이다.

 

·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201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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