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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자원봉사자 숨결, 박물관이 살아 있다

<박물관이 살아 있다>라는 영화처럼 박물관이 살아 숨 쉬려면 누가 필요할까. 바로 자원봉사자다. 이들은 도슨트(docent·안내원)와 함께 작품 해설을 담당하며, 관람자가 전시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길라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작품 해설 자원봉사자가 없다면 관람객들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전시물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볼 뿐 정보를 얻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많다. 물론 전시물이 의미 없는 돌덩이나 쇳덩이로 전락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겨울방학은 아이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기 좋은 시간. 아이와 함께 박물관에 가보는 건 어떨까. 아이들의 질문이 걱정된다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보자. 국립중앙박물관이 2005년 재개관하면서 선발한 전시 해설 자원봉사자들이 기꺼이 길라잡이 역할을 자처할 것이다. 외국어로 전시 해설을 진행하는 자원봉사자도 있다.

 

태조 이성계 어진 설명 중

 

중앙박물관 자원봉사자 297명

국립중앙박물관 자원봉사제도는 2002년 6월 시작됐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2005년 서울 용산구로 이전하면서 12개 분야에 자원봉사자 593명을 뽑아 박물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자원봉사자들이 학예사를 지원하던 일에서 더 나아가 해설까지 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인 2007년이다.

 

2009년에는 중고생들도 자원봉사자로 합류했다. 이들은 박물관 곳곳을 누비며 박물관을 빛내는 작업을 했다. 2010년 외국어 전시 해설 자원봉사자가 생기면서 외국인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는 해설도 곁들일 수 있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 강승희 주무관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수많은 기획전과 특별전을 제대로 해설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자원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5년 현재 중앙박물관 소속 자원봉사자는 297명이다. 활동은 전시 해설과 일반 봉사로 나뉜다. 이수미 교육과장은 “전시 해설 자원봉사자는 선사·고대관, 중·근세관, 서화관, 조각공예관, 아시아관, 기증관 등 9개 분야에서 작품 해설을 담당한다”면서 “역량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전시 해설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자원봉사자들은 물품 보관소나 도서관, 어린이박물관에서도 만날 수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평일 4~6시간, 주말 및 공휴일에는 4시간 정도 박물관에서 일하는데, 봉사라서 보수는 받지 않고 연령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만 80세 이하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자원봉사자는 역사나 유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전직 교사도 있다. 선사·고대관과 전체 전시관 전시 해설을 진행하는 윤종남(80) 씨는 올해가 자원봉사자 정년이다. 1935년생인 그는 2002년 중앙박물관 자원봉사자를 처음 뽑았을 때 선발돼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자원봉사자의 산증인인 그는 해설 진행을 위해 끊임없이 배웠다고 한다.


이처럼 자원봉사자가 되려면 윤 씨같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원봉사자 전시 해설 교육과정 일정표를 살펴보면 자원봉사자가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박물관 학예사들이 진행하는 강의를 수험생처럼 열심히 익혀야 박물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박물관 자원봉사자로 선발된 사람은 박물관에서 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교육과정은 공통 교육과 심화 교육으로 나뉘는데 매년 단계별로 실시된다. 상설전시와 특별전, 기획전의 경우 전시 내용과 유물의 역사를 꼼꼼히 확인하고 익혀야 한다. 교육은 박물관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1년에 2차례 현장 답사를 하고 집에서 온라인 교육을 받으며 유물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이렇게 3, 4년 동안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 웬만한 전문가 수준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준전문가가 됐다고 해서 자신의 생각을 관람객에게 강요하는 경우는 드물다. 문화인으로서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선 사람들이기에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다.

 

쉬지 않고 배우고 익히기 언제 어떻게 뽑을까

자원봉사자 선발은 비정기적이다. 한번 봉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좀처럼 봉사를 그만두지 않기 때문에 결원이 많이 생길 때만 이따금 선발한다. 물론 지원한다고 해서 다 합격하는 것도 아니다. 3차에 걸친 선발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이 국립중앙박물관 자원봉사자가 될 수 있다. 

자원봉사자 선발

미국은 박물관 자원봉사 활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다. 영국은 비교적 자원봉사가 활성화된 편이지만 프랑스나 독일 등 다른 국가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미국 박물관 자원봉사 활동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현재 미국 전역에 있는 박물관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는 수천 명에 달한다.

 

또한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원봉사에 관한 법률이 있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원봉사를 추진한다. 도슨트 자원봉사를 가장 먼저 시행한 곳도 미국 보스턴미술관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 강승희 주무관은 “미국인들은 어려서부터 봉사에 대한 교육을 가정, 학교, 사회에서 받아서 국민들의 봉사활동 참여도가 매우 높다”면서 “우리나라도 이 같은 교육이 확대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였다.


문의 : 02-2077-9311, 9307 www.museum.go.kr

 

“한국 역사와 문화 소개 뿌듯하죠”

방은덕 자원봉사자

방은덕 자원봉사자“남편 직장 일로 중국 상하이에서 5년 정도 살다왔어요. 예전부터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많았지요. 인터넷을 서핑하다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곤 노력한 끝에 유일한 중국어 전시 해설 자원봉사자가 됐죠. 이 일을 찾은 건 운명 같아요.”
워킹맘 방은덕(40) 씨는 2009년부터 중국어 전시 해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평일에는 직장에 매여 있기 때문에 그가 봉사하는 시간은 토요일 오전 1시간 정도다. 집에서 오가는 시간을 합치면 3시간 정도. 짧다면 짧지만 벌써 햇수로 6년째 이곳을 찾고 있다.
그는 아시아관과 같은 한 전시관에 머물지 않고 국립중앙박물관 전관을 돌아다니며 중국인들에게 우리 유물에 대해 설명한다. 다양한 영역을 섭렵하려면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한 전시관을 해설하는 분은 깊이 있게 하지만 저는 전반적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며 겸손해한다.
중국인들이 가장 관심 깊게 보는 유물은 금관. 중국에는 금관이 없기 때문에 한국의 금관 문화에 감탄한다. 중국인들이 자처하지는 않지만 방 씨가 나서서 관심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저는 중국인 관람객이 오면 꼭 발해 지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동북공정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하지요.”
그는 고려청자에 대한 해설에도 열심이다. 고려는 자기를 만들지 못했지만 이후 자기 만드는 기술을 송나라에서 도입해 독창적인 상감기법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한 중국인 관람객은 방 씨와 친구가 됐고, 이후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겨 한국으로 유학까지 왔다고 한다.
“박물관 자원봉사는 재능 기부입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할 수 있는 자신의 재능을 펼치는 것이죠. 한국을 세계에 알린다는 사명감도 있습니다. 제 아이들은 토요일은 엄마가 박물관 가는 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랑스러워합니다. 저 역시 이 일이 자랑스럽습니다.”


유물과 관람객 잇는 ‘이야기 다리’

배선숙 자원봉사자

“배움에 대한 갈망, 사회 구성원이 되고 싶다는 욕구. 이 모두가 채워졌어요. 박물관 자원봉사자가 되면서 관람객과 함께한 덕분이죠.”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 용산구에서 재개관한 2005년 이래 줄곧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배선숙(62) 씨는 자신의 역할을 다리에 비유했다. 관람객과 유물의 소통을 돕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사회 교사였던 그는 육아 탓에 줄곧 전업주부로 살았다. 하지만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제 나도 뭔가를 배워서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때 문을 두드린 곳이 사단법인 박물관대학이었다. 배 씨는 그곳을 졸업한 뒤 서울시 문화재 해설 봉사를 하면서 우리 궁궐에 대해 배워나갈 수 있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관 해설자로 나섰다. 이제는 관람객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훤히 꿰고 있을 정도로 전문가가 됐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 깊게 보는 유물은 인도의 간다라 불상과 중앙아시아의 ‘복희여와도(伏羲女渦圖)’예요. 아시아에서 유럽 헬레니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불상이 있다는 것 자체를 신기해해요. 복희와 여와가 한 몸에서 빠져나오는 이 그림은 단연 인기가 많습니다.”

배선숙 자원봉사자
   그는 일본어를 공부해 지난해부터 일본어 전시 해설도 맡고 있다. 관람객 중 상당수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제대로 설명하려면 일본어로 전달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일본인이 관심 깊게 보는 유물은 도자기. 일본인은 자기네 그릇과 닮았다는 이유에서 분청사기에 대해 애정을 보인다고 한다.
   “일본 학생들이 많이 와요. 그런데 한·일 관계가 민감해지면서 일본 학생 단체 관람이 뚝 끊겼어요.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지면 좋을 텐데 아쉽죠. 그러려면 저부터 우리 문화를 열심히 소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관람객들에게 식민지 시대를 차분히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글·허운주 (위클리 공감 기자) 201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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