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얼결에 비닐하우스인가 싶었다. 전형적인 농촌 풍광 한가운데서 햇살 한껏 받으며 예사롭지 않은 위용을 뽐내는 박물관 외부는 온통 은빛. 그 속엔 시간의 신비가 감돈다. 경기 연천군 전곡읍 평화로 전곡선사박물관. 국내 최대 선사박물관인 이곳은 '은빛 타임머신'을 타고 한반도의 선사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이색 공간이다.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 인류의 진화 과정을 체험학습하는 어린이집 원생들.
전곡선사박물관은 1978년 동아시아 최초로 구석기시대 유럽과 아프리카의 아슐리안(Acheulean) 석기 형태를 띤 주먹도끼가 발견돼 세계 고고학계에 충격을 던지며 인류문화사를 새로 쓰게 만든 전곡리 선사유적지(사적 제268호)와 연계한 곳. 2011년 4월 25일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총 사업비 482억 원을 들여 7만2599㎡ 부지에 건축 면적 5000㎡(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건립했다. 2005년 국제 설계 공모를 시작해 이듬해 4월 48개국 346개 팀의 출품작에 대한 꼼꼼한 심사 과정을 통해 아이디어의 창의성이 뛰어나고 건립 부지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주변 환경 속으로 스며들도록 설계한 '선사유적지를 통하는 문(프랑스 X-TU사)'이 최우수작으로 결정됐다.
지상 2층 지하 1층
특유의 외관과 건축미 돋보여
그 결과 관람객들로부터 전설 속 동물인 이무기(뿔이 없는 용)나 지렁이를 닮았다는 말을 곧잘 듣는 특유의 외관과 건축미를 특징으로 하게 됐다. 양쪽 언덕을 자연스럽게 잇는 곡면형 외형을 갖춘 현대적 디자인 감각으로 원시 생명체의 이미지를 표현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1층에 자리한 상설전시실. 어둑한 실내조명 아래서 '야생'과 '문명'의 경계가 되살아난다. 국경 따윈 존재하지도 않던 선사시대 특징을 드러내듯 별다른 구획 없는 오픈 전시 형태. 동굴 이미지를 극대화한 전시실엔 사자와 호랑이가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 도사리고 있다. 매머드 아래턱뼈로 울타리를 치고 입구는 매머드 어금니로 아치를 만들어 장식한, 얼기설기 만든 막집에서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는 원시 인류의 모습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양자(兩者)를 잇는 도구들을 서로 연관시켜 관람객으로 하여금 환경에 적응해온 인류 역사를 쉽게 이해하게끔 돕는다. 선사유적지가 위치한 자연 환경, 유적 발굴 역사, 동굴벽화 재현 등도 한껏 흥미를 돋운다.
특히 전시실 중앙에 마련된 '인류 진화의 위대한 행진' 전시에선 실물 크기의 인류 모형을 명확한 학술적 토대에서 극사실적으로 제작한 작품들을 전시해 눈길을 끈다. 컴퓨터 및 해부학 관련 자료를 과학적으로 이용해 완성한 정밀한 골격, 살아 있는 듯한 근육과 눈동자, 얼굴 표정,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심는 세밀한 재현 과정 등을 영상자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박물관이 살아 있다'는 말? 절반쯤 속는 셈 쳐도 손해 볼 것 같지는 않다.
총 14개체의 전 세계 화석인류가 타원을 그리며 진화 순서대로 전시돼 있는데, 이 중 기자가 아는 건 베이징원인과 네안데르탈인 둘뿐이다. 당최 700만 년 전 인류라는 '투마이'는 뭐고, 1만 년 전의 '만달인'은 또 뭐란 말인가! 선사시대가 이렇듯 '재발견'될 줄 알았다면, 학창 시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등은 굳이 달달 외우지 않았을 터다. 시험문제 대비용으로 단순 암기했던 세대로서 갑자기 이방인이 된 기분이랄까. 역시 교과서와 체험의 학습 차이는 크다.
'네안데르탈인의 매장(埋葬)'을 소재로 한 전시물을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느라 여념 없는 심소은(파주시 와석초교 6학년) 양은 "현장 체험학습으로 전곡선사박물관에 처음 왔는데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다. 특히 영상자료가 인상적"이라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마치 이무기나 지렁이를 연상케 하는 전곡선사박물관 외부 전경(왼쪽). 1978년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 발견된 아슐리안 주먹도끼의 모형(오른쪽).
한반도 구석기인 만나는 곳
박물관은 살아 있다?
관람객들로 붐비는 상설전시실과 달리 고고학체험실은 잠정적으로 문을 닫은 상태. 전곡선사박물관 김명우 책임연구원은 "4월 25일 개관 4주년을 맞아 특별기획전인 '인류의 기원을 찾아 고고씽-오토마타(Automata)로 배우는 어린이를 위한 진화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고 귀띔한다. 오토마타라는 체험놀이를 통해 어린이들이 우주의 탄생, 인류의 출현, 문명의 발전 과정을 배움으로써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기회를 갖게 하는 전시다. 오토마타란 오토마톤(Automaton : 자동인형)의 복수형으로 손이나 다른 동력의 움직임에 따라 캠과 크랭크의 작동 원리, 중력과 시소의 동작 원리 등 기계적 연결 원리로 로봇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체험형 박물관을 표방한다.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면서 관람하는 게 특징으로 실내는 물론 야외에도 체험동(움집)을 마련해 사냥 체험과 석기 만들기, 막집 짓기, 가상 발굴 체험 등 다양한 고고학 체험을 할 수 있다.
박물관을 나와 산책로를 따라 인접한 전곡리 선사유적지로 자박자박 걷는다. 서울에선 이미 후드득 떨어져 자취를 감춘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진 오솔길이 곱디곱다. 체험학습 나온 어린이집 원생들에겐 구석기 시대상을 보여주는 야외 조형물이 곳곳에 널린 선사유적지가 삼삼오오 짝지어 뛰어노는 데 안성맞춤인 '호기심 천국'이다.

▷전곡선사박물관 상설전시실을 둘러보며 마냥 신기해하는 아이들.
세계 구석기 체험마을
구석기 바비큐로 즐거운 시간
선사유적지에선 5월 1~5일 세계 최대 구석기 축제인 연천구석기축제가 열린다. 1993년부터 구석기문화를 대중에게 알려온 이 축제는 이듬해부터 어린이날을 전후로 축제일을 지정해 가족 축제로 개최돼왔다. 올해로 23회를 맞는 연천구석기축제는 흥미 넘치는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로 상춘객들을 수십만 년 전 구석기 원시시대로의 특별한 여정으로 이끈다. 축제는 환영마당, 연천마당, 공연마당, 체험마당 등으로 구성되며 가족, 연인, 이웃과 구석기 문화를 직접 보고 느끼며 놀면서 배우는 체험 프로그램 비중을 확대한 게 특징. 특히 체험마당은 세계 구석기 체험마을, 구석기 바비큐, 구석기 놀이동산, 구석기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구성된다.
세계 구석기 체험마을은 오스트리아, 리투아니아, 일본, 말레이시아, 대만 등 5개국에서 10개의 선사 체험 및 문화, 박물관 관련 기관이 참가해 선사문화 체험, 각국의 원시·고대 민속 체험, 고고학 체험, 선사 체험 시연 등을 선보인다.
세계 구석기 체험마을과 함께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인 구석기 바비큐는 주먹도끼를 직접 제작한 뒤 고기를 잘라 원시적으로 구워먹는 화식(火食) 체험. 500여 명이 동시 참가하는 대형 화덕이 설치된다.
축제장에선 선사유적지를 활보하며 구석기시대를 살아가는 전곡리의 호모에렉투스 '전곡리안'도 만날 수 있는데, 이들은 축제장 곳곳에서 석기를 만들고, 현대인과 사진을 찍고, 집을 짓고, 음식을 먹는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공연마당으로는 개막 공연과 7080 미니음악회, 연천군 난장한마당, 구석기 요리 선발대회, 전곡리안 선발대회 등 다양한 참여형 공연이 준비된다. 어린이날에는 버블쇼, 매직쇼 등 어린이를 위한 특별공연도 펼쳐진다. 연천마당에선 연천 농특산물 판매, 농경생활 체험, 지역문화 전시 등 연천군의 다양한 삶의 현장을 엿볼 수 있다.
연천구석기축제는 2005년부터 7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축제로 선정되면서 체험과 교육, 스토리 있는 놀이가 어우러진 축제의 장(場)으로 도약했다. 지난해엔 경기도 10대 축제로도 선정됐고, 같은 해 10월 열린 제22회 축제 땐 35만여 명이 다녀가 100억 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냈다.
연천군 선사관리사업소 정세미 학예연구사는 "이번 축제는 봄 관광주간을 맞아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형으로 준비하는 데 주력했다"며 "축제기간엔 선사유적지를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만큼 많은 관람객이 봄날의 축제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중앙 최북단이자 한반도 중심에 위치한 연천군. 전곡선사박물관과 전곡리 선사유적지 외에도 봄 향기 가득한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덤이다. 비 오면 풍년 든다는 절기 곡우(穀雨)를 하루 지난 4월 21일, 연천 땅에선 물씬한 봄기운이 천지에 진동한다. 마음도 어느덧 따스한 햇살마냥 포실해진다.
글 · 김진수 (위클리 공감 기자) 201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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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