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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옻칠, 새로움을 칠한다… 창조한다

항균, 방습, 방충 효능이 뛰어난 옻칠은 약 7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천연 도료다. 사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옻칠의 흔적은 기원전 3~4세기경에 나타난다. 기원전 1세기경 유적에서 옻칠이 된 그릇이 출토됐을 만큼 옻칠은 역사가 오래됐다.

옻칠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된 고려시대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습기나 곰팡이에 약한 목재가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목재에 옻칠을 한 덕분이다. 이처럼 옻칠은 독특한 광택과 더불어 높은 내구성(고강도, 고내열성, 강력한 방수력, 내산성, 내알카리성, 내화학약품성, 절연성, 방부성 등)을 지닌다. 진한 황산, 진한 염산, 심지어 왕수(질산과 염산의 혼합산)에도 강한 내성을 갖고 있을 정도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삼국에서는 옻칠을 목공 도장용으로 소중하게 여겼다. 우리나라 옻칠은 중국, 일본의 옻칠과 달리 옻칠을 바탕칠로 한 나전칠기 종류에 주로 사용했다. 한국의 전통적인 나전옻칠 기법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로 나전기법, 누금기법, 망수, 후수, 상감기법 등이 있다. 그런데도 옻칠은 영어로 'Lacquer' 또는 'Japan, Japanning'이라고 불릴 만큼 일본의 전통문화로 알려져 있다.

손대현 장인

▷BMW는 ‘BMW 750 Li 코리안 아트 에디션’으로 자동차 내장재에 나전 장식을 시도했다. 이 작업에 참여한 손대현 장인은 신소재에 옻칠과 나전을 접목하는 창조적인 작업을 진행했다.

자동차 내장재 나전 장식
삼성전자 102인치 TV에도 활용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국내에서도 옻칠의 우수성을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옻칠을 포함한 전통문화의 계승·발전방법은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정교화'를 꼽는다. 정교화란 전통 기술이 갖는 의미의 깊이와 폭을 더욱 심화해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 전통문화의 가치를 표현할 때 '진정한 미래는 오랜 옛 지혜 속에 있다'라는 말이 회자되는데 그 의미를 새겨볼 만하다. 전통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은 이 시대의 과제다.

이런 점에서 2011년 'BMW 750 Li 시리즈 코리안 아트 에디션(Korean Art Edition)'이라는 이름으로 BMW의 자동차 내장재에 (옻칠을 활용한) 나전장식이 시도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삼성전자에서 102인치 텔레비전을 개발했을 때 강화압출알루미늄 소재에 옻칠로 중동 부호들의 이니셜을 새겨 수출한 바 있는데, 이를 소개하는 기사 제목 '현재라는 시간과의 콜라보레이션'은 전통과 현대의 관계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옻칠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정책 개발과 사업 발굴·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특허청과 디자인문화진흥원이 손을 잡고 '2018년까지 산업 전반에 활용할 수 있는 첨단 특허를 발굴한다'는 취지로 우리의 전통 옻칠을 첨단 산업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특허 기술로 변모시키는 사업을 시작했다. 옻칠의 천연 항균 특성을 병원용 의복, 가습기에 활용하고 옻칠의 항습성과 충격에 강한 특징을 요트, 자동차의 도장재료로 사용할 계획이다.

정교화는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행정적, 제도적 정교화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옻칠의 대중화, 현대화 작업이 성공을 거두면 칠보나 상감 등 다른 전통 공예기술도 첨단 특허 기술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특허청의 방침은 환영할 만하다. 이와 더불어 인적 인증제도와 재료, 소재, 제조 과정, 품질에 대한 정교한 인증제도도 정비돼야 한다. 정교화의 노력 없이는 이 시대에 근근이 이어져오던 명맥마저 끊어질 가능성이 크다.

옻칠 핸드폰케이스

▷옻칠공예를 활용해 만든 휴대폰 케이스.

 

옻칠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보편화'다. 옻칠이 문헌, 도록,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박제(剝製)화된 조상들의 지혜가 아니라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 널리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허청과 디자인문화진흥원은 경도를 높이고 옻칠을 대량으로 생산해 잉크젯 기법으로 쉽게 칠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로 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첨단 융·복합 콘텐츠 기술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전통 옻칠의 규격화·다양화 및 대량생산 공정 개발' 과제를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지원한 바 있다.

이 지원사업은 '천연 옻칠의 품질, 규격을 표준화하고, 규격화된 전통 옻칠과 개량 옻칠을 대량생산 및 제품화해 누구나 쉽게 목재, 섬유, 금속, 종이, 시멘트 등 다양한 재료와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됐다. 그 결과 상온경화형 옻칠, 열경화형 옻칠, 옻칠동유, 오일 스테인 옻칠 등 개량 옻칠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공정을 개발했다. 또한 채색 옻칠, 디지털 프린터용 옻칠잉크와 같은 괄목할 만한 성과도 얻었다.

옻칠 보편화는 옻칠의 높은 가격 때문에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옻칠을 대량생산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다가간다는 것을 목표로 지원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순종 어차

▷현대자동차가 2007년 복원한 순종 황제와 순종 효 황후의 어차에도 옻칠이 사용됐다. 차체는 목재로 그 위에 옻칠을 더해 진한 밤색을 띤다.

전자파 흡수해 휴대폰 케이스에도 활용
옻칠 분야 관련 연구 시급

관심을 갖고 둘러보면 옻칠에 대한 재창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자동차가 2001년 복원한 순종 황제와 순정 효 황후의 어차 두 대에도 옻칠이 사용됐다. 차체는 목재로, 그 위에 옻칠을 더해 진한 밤색을 띠게 한 것이다. 일본은 옻칠을 자동차 외장재로 사용해 내구성을 강화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옻칠은 약용, 식용에서 더 나아가 최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효능이 입증되고 있다. 옻칠이 전자파를 흡수해 최소 30%에서 최대 70%까지 줄이므로 이를 차단하기 위한 옻칠 휴대폰 케이스가 경남 통영을 중심으로 상품화되기도 했다. 옻에서 나오는 특이한 성분이 전자파를 차단해 자동차와 스텔스기에 사용되고, 수분과 습도에 강한 특성을 활용해 해저 광케이블의 마감 재료로도 활용되며, 최근에는 항암제의 재료로도 주목받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일본과 중국에서 최근에 옻칠의 주성분을 분석하는 연구 등 관련 연구가 진행되는 점과 대조적이다. 일본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전통문화와 첨단기술을 결합시켜 '일본다움'을 강조하는 새로운 문화전략으로 '네오 재패니스크(Neo Japanesque : 신일본 양식)'를 내세워왔다. 이제 우리는 이 전략을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 정성환 (전북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 전 전주전통공예 온브랜드 사업단 부단장) 201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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