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은이를 만난 것이 꼭 20년 전이다. 아, 그러니까 얼굴을 대한 것이 아니라 이름을 접했다는 뜻이다. 소나무에서 펴낸 <서양 문명의 역사>(E. M. 번즈 외 지음)를 보는데 번역이 참 방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옮긴이를 보니 우석대학교 사학과 교수 박상익.
이후 그 이름이 들어간 책은 믿고 읽었다. 번역 솜씨도 빼어났고, 책 고르는 안목도 만만치 않아 항상 기꺼웠다. 그러면서도 아쉬웠다. 그의 손을 거친 책이 많이 읽히지 않는 듯해서였다.
이 책은 다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칼레의 시민’,‘천연두로 몰락한 아스텍 문명’ 등 책의 기둥인 94개 역사적 장면은 흥미롭고도 뜻깊다. 흔히 세계사에 언급되는 굵직한 사건, 영웅의 행적이 아니라 ‘나를 깨우는’ 시간여행이 될 만한 장면을 포착해낸 점이 우선 눈에 띈다. 진화론을 제창한 찰스 다윈과 당대 영국 총리 글래드스턴의 만남이나 러시아 왕조의 멸망을 부른 무능한 국방장관 수흠리노프 이야기 등은 어지간한 서양사 책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여기에 ‘박제된 사실(史實)’이 아니라 짧은 글 속에 생각거리를 담아낸 솜씨가 더해져 이 책은 단순한 역사 에피소드 모음을 벗어난다. 자전거의 발명을 둘러싼 이야기가 좋은 예이다.
19세기 초 독일 귀족 카를 폰 드라이스는 영지 시찰을 위해 말이 아닌 사람이 움직이는 ‘탈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1817년 ‘빠른 발’을 뜻하는 라틴어 ‘벨로시페드’란 이름의 두 바퀴 탈것을 인류 최초로 제작했다. 자전거의 시조다.
그런데 벨로시페드엔 페달도, 체인도, 브레이크도 없었다. 두 바퀴를 이은 축에 얹은 안장에 앉아 발로 땅바닥을 차서 전진하는 방식이었다. 특허는 받았지만 대중은 시큰둥했다. 브레이크가 없어 내리막길에선 넘어져 다치기 쉽고, 구동장치가 없어 오르막에선 어깨에 메고 올라가야 했으니 당연했다.
한데 드라이스는 다른 기술자들이 페달 추진식 탈것을 개발하려 하자 이를 비난했다. ‘발차기 추진방식’이 두 바퀴 탈것의 핵심이며 최상의 방법이라 고집했다. 1867년 파리 출신 대장장이 피에르 미쇼가 ‘페달식 벨로시페드’를 만들 때까지 60년 동안 말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사실을 소개하며 “우리도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채 변화를 거부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라고 맺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학은 지도자와 엘리트를 위한 학문의 핵심이었다. 중국 송나라 때 사마광이 편찬한 <자치통감(資治通鑑)>이 대표적이다. 황제의 통치 자료로 삼기 위해 중국 역대 왕조의 사실을 정리한 이 역사책의 제목엔 ‘거울 감(鑑)’이 들어 있을 정도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지만 개인도 다를 바 없다. 지은이를 따라 역사를 ‘똑똑’ 노크해가며 교훈과 흥미를 찾아볼 일이다.
글·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201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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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