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민과 만났다. 8월 14일 전세기 편으로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한 교황은 18일까지 4박 5일의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해 제266대 교황에 취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아시아지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항 환영행사에는 주한 교황청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등 천주교 관계자들과 함께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새터민, 이주노동자, 장애인, 시복대상자 후손, 외국인 선교사 등 평신도 32명도 함께했다. 결혼을 앞두고 세례를 받으려는 예비신자들과 중·고교생, 가톨릭노동청년, 어르신 대표들도 공항에서 교황을 직접 만나는 영예를 누렸다.

공항 도착 직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며 미소를 머금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박근혜 대통령이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우리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가 전해지고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하자 이같이 화답했다.
역대 교황으로는 요한 바오로 2세(1984, 1989년)에 이어 세번째로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에 오게 돼 기쁘다”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한국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교황은 영접 나온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과 인사하면서 일일이 손을 맞잡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용서와 관용, 협력 통해 불의 극복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항 영접이 끝난 뒤 국산 소형차 ‘쏘울’을 타고 곧바로 주한교황청대사관으로 이동했으며 대사관에서는 직원들과 함께 개인미사 시간을 가졌다. 이어 오후에는 청와대를 방문해 공식환영식을 가진 뒤 박 대통령과 면담하고 정부 주요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했다. 청와대 공식행사는 90분 동안 이어졌다. 교황은 청와대 연설에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게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면서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 협력을 통해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정의는 상호 존중과 이해와 화해의 토대를 건설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유익한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 가겠다는 의지를 요구한다”며 “우리 모두 평화 건설에 헌신하며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평화를 이루려는 결의를 다지게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한국 내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치 분열과 경제 불평등은 소통과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모국어인 스페인어나 교황청 미사 공식언어인 라틴어 대신 영어를 사용했다. 청와대에 초청된 주한 외국대사들에 대한 배려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앞서 환영 연설을 통해 “교황께서 ‘생필품이 필요한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식탁에 여분의 자리를 남겨두자’고 말했듯이 대한민국의 식탁에도 여분의 자리를 남겨둬 가난한 이웃과 늘 함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오랜 세월 동안 큰 상처를 줬다. 아직도 휴전선 너머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채 평생 그리움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산가족이 한국에만 7만여 명이 있다”며 “이번 교황의 방한이 오랜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한반도에 희망의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헬기 대신 KTX 일반열차로 대전 이동
면담 후 박 대통령은 교황에게 화목문(花木紋 : 꽃과 나무 무늬) 자수 보자기(이정숙 씨 작품)를 액자에 넣어 선물했다. 가로·세로 각각 32센티미터로 모든 인류를 애정으로 감싼다는 교황의 큰 뜻과 일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교황은 대희년(大禧年 : 예수 탄생 2천돌)인 서기 2000년을 기념해 바티칸 도서관이 교황에게 헌정한 ‘로마 대지도’ 동판화를 박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가로 190센티미터, 세로 174센티미터로 전 세계에서 300장만 한정 제작된 희귀 작품이다.
시복식 미사에는 교황 수행단 성직자 8명과 각국 주교단 60여 명,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 주교단 30여 명 등 주교들만 100여 명이 참석했다. 또 사제 1,900여 명과 가톨릭 신자 17만 명 등도 함께했다.
특히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때는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과 유족들을 직접 만나 위로했다. 입국 후 청와대로 이동할 때 방탄차 대신 소형차를 이용했던 교황은 이날도 헬기가 아닌 KTX를 타고 대전으로 이동했다. 그것도 교황만을 위해 마련된 ‘특별열차’가 아니라 서울~대전 KTX 4019호에 승차, 승객 500여명과 함께 대전으로 이동했다.
교황은 16일 서소문 순교성지를 참배한 데 이어 광화문에서 열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이 시복미사를 주례했다. 17일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18일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한 뒤 오후에 출국한다.
글·최경호 기자 201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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