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강원 홍천군 동면의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하얀집. 동그란 눈매를 가진 남매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가 일을 끝내고 귀가하는 시간에 맞춰 방문한 이들 조손가족의 집에는 담장이 없었다. 흰색 외벽, 반짝이는 알루미늄 문틀이 한눈에 보아도 새집이다. 방 하나와 방보다 작은 거실, 주방으로 이뤄진 이 작은 집은 유경(15), 성진(10) 남매와 이들의 외할머니 김길자(72) 씨의 보금자리다.
이 보금자리는 지역사회의 관심과 온정으로 만들어졌다. 5년 전 홍천군으로 이사를 온 이들은 지난해 살던 곳에서 보증금도 월세로 다 날려 빈손으로 나왔다. 이들을 딱하게 여긴 이웃 주민이 안 쓰는 방 한 칸을 내주어 반 년가량 살았다.
동면사무소가 이들을 조손가정으로 지원하려 해도 아이들 엄마와 이혼한 아빠가 유경에게 10만원씩 두 차례 용돈을 보낸 것이 걸림돌이 됐다. 동면사무소는 이들의 딱한 사정을 홍천군청의 복지사각지대 관리팀에 전달했다. 홍천군청에서 집주인이 농사철에만 사용하는 빈 농가를 찾아내 장기 임대해 준다는 약속을 받았고, 이 집을 지역봉사단체인 홍천로터리클럽이 1,500만원을 들여 리모델링해 줘 4월 초 이사했다.

김 할머니는 “많은 분들의 관심 덕분에 이렇게 좋은 곳에서 마음놓고 살게 되어 정말 고맙다”고 했다. “난방도 잘 되고 물도 잘 나오고,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어요.”
홍천로터리클럽의 조병일 회장은 “조손가정 리모델링은 원래 자기 집인 경우에만 가능한데, 다행히 집주인이 6년간 장기 임대를 해 주겠다고 약속해 줘서 리모델링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지하수를 파고 건물 내부 벽을 뒤덮은 곰팡이를 긁어내 벽지를 바르고 조명등을 설치하는 것까지 클럽 회원들이 수고했다.
조부모 건강 이상·양육비 부담이 가장 큰 어려움
이웃들의 따뜻한 정을 듬뿍 받아서인지 남매 모두 밝게 자라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인 유경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같은 외교관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새집에 이사 오니 공부할 방이 있어서 제일 좋아요.” 동생과 함께 써야 하지만 널찍하고 산이 보이는 창문도 있었다.
성진이는 외교관이나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했다. 남매는 학원 다닐 형편이 안 되는 걸 알기에 더욱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아이들이 일찍 철이 든 게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손녀는 ‘할머니, 제가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만 힘들어도 참아주세요’라고 해요. 손자도 제가 다리라도 아프다 하면 ‘할머니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요’ 하고요.”
김 할머니는 두 달 전부터 인근 어린이집에서 월·수·금요일 도우미로 일하며 월 20만원을 받고 있다. 노령연금까지 합해도 고정적인 월수입은 30만원이 채 안 된다.
동면사무소의 주민생활지원담당 신제빈 씨는 “김 할머니댁이 조손가정 지원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긴급지원 가구로 선정해 도움을 드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때때로 물품 지원을 하고 아이들을 방학 중 아동급식 지원 대상으로 선정해 농협에서 반찬 배달을 해 준다고 한다.
김 할머니네와 같이 65세 이상 조부모와 만 18세 이하 자녀로 구성된 조손가구는 친부모의 이혼과 재혼, 경제적 이유 등으로 최근 급증 추세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등에 따르면 1995년 3만 5,194가구이던 조손가구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11만 9,294가구로 급증했고 2012년에도 13만2,515가구로 늘었다.
한부모가구도 증가 추세다. 1995년 99만5천가구였던 한부모 가구는 사별과 이혼, 미혼모(부) 증가로 2012년 167만7천 가구(전체 가구의 9.3퍼센트)로 늘었다.
조부모의 건강 이상, 손자녀 양육에 따르는 경제난이 가장 큰 어려움인 조손가정 못지않게 한부모가정의 사정도 어렵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한부모가 된 뒤 경제적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한 경우는 62.7퍼센트로 10명 중 6명 꼴이다.
양육비로 인한 어려움을 겪는 한부모가정을 위해 내년 3월 양육비 이행 지원기관이 출범한다.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한부모를 대상으로 최장 9개월까지 양육비를 지원하며 비양육부(모)가 부양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일 경우 그 부모가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하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지난 3월 28일 국회를 통과,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된다.
경제적 지원과 함께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위한 정서적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와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은 전국의 30개 지역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조부모 양육 스트레스를 줄이고 손자녀의 발달 증진과 올바른 생활습관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조손가족통합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한부모가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녀들에게 폭넓은 교류의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들도 있다.
김 할머니도 “손녀딸 공부를 도와주고, 좋은 인생 선배가 되어줄 선생님이 있어주면 정말 좋겠다”고 희망했다. “너무 힘들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아이들 생각해서 견뎠어요. 아이들도 서로 얼마나 우애가 좋은지 몰라요.”
김밥 장사를 하며 4남매를 키우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 손자녀들을 돌보는 할머니와 부모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이들은 이렇게 서로 기대 가족의 힘으로 위로받고 살고 있었다. 아이들의 인사를 뒤로 하고 나온 하얀집 창밖으로 따뜻하게 저녁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글과 사진·박경아 기자 201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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