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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상대 사인은 훔치고 내 사인은 감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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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51·삼성)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의 사인 내는 동작은 물 흐르는 듯하다. “리듬이 일정하기 때문에 무슨 사인인지 간파하기 어렵다.” 류 감독과 83학번 동기생이자 오랫동안 작전코치를 지낸 백인호 KIA 수비코치의 평이다.

류 감독은 2011년 삼성 사령탑에 오르기 이전, 10년 동안이나 작전코치로 활약했다. 작전코치는 3루 베이스 옆에서 더그아웃의 감독이 낸 사인을 받아 그라운드의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류 감독의 사인 동작은 다이내믹하면서도 섬세하다. 오른손으로 가슴을 어루만진 데 이어 검지로 턱과 모자챙을 잇달아 터치한 뒤 왼손 검지를 왼뺨에 갖다 대면 ‘치고 달리기’ 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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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인천 문학구장과 서울 목동구장 등에서 벌어지는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야구는 ‘사인의 전쟁’으로 요약된다. 특히 한국·일본·대만 등 우승후보 세 나라 간의 대결에서는 결정적인 순간, 한두 차례만 사인이 노출되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한국과 함께 예선 B조에 속한 대만은 요즘 들어 한층 섬세해진 다크호스다. 한국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출전권이 걸렸던 2003년 삿포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연장 10회 접전 끝에 4-5로 패했고, 2006년 도하아시아경기대회 때는 2-4로 무릎을 꿇었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현대 야구에서는 온갖 첨단장비를 동원해 상대팀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기 때문에 작전이나 습관 등이 노출될 수 있다”면서 “일본뿐 아니라 대만 역시 세밀한 야구에 능한 만큼 사인을 낼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주자가 2루에 있을 땐 투수도 사인 낸다

메이저리그 전문가 폴 딕슨은 자신의 저서 <야구의 감춰진 언어>에서 한 경기에서 양팀이 주고받는 사인이 1천개가 넘는다고 했다.

삼성-LG의 경기 1회초 삼성의 공격. 초구에 LG 포수 최경철이 마운드의 류제국에게 커브 사인을 낸다. 삼성 벤치의 류중일 감독은 김재걸 작전코치를 통해 선두타자 나바로에게 히팅(Hitting) 사인을 보낸다. LG 유지현 수비코치는 수신호를 통해 외야의 이병규(7번)·박용택·이진영에게 수비 위치를 알려준다.

3대충 계산해 봐도 공 한 개를 두고 양팀에서 낸 사인이 3~4개나 된다. 여기에 위기 상황에서 등장하는 ‘위장 사인’을 더해 9회말까지 계산하면 한 경기에서 양팀이 주고받는 모든 수신호(사인)는 정말 1천개에 육박한다.

사인의 3요소는 키(Key)·손·순서다. 손등=번트, 팔뚝=치고 달리기, 어깨=도루라 하자. 모자챙을 키로 하고 오른손으로 세번째 터치하는 부분이 ‘진짜 사인’이라고 치자. 작전코치가 오른손 검지로 모자챙을 만진 뒤 어깨·손등·팔뚝을 차례로 터치했다면 치고 달리기 사인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사인을 내는 과정에서 오른손이 다시 키로 가면 이전의 사인은 모두 취소된다. 일반적으로 ‘키=취소’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모든 동작이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이뤄졌다면 이는 ‘위장 사인’이다. 그런가 하면 사인 후 감독이나 코치가 두 주먹을 마주치는 것은 사‘ 인의 종료’를 뜻한다.

주자가 투수의 등뒤, 즉 2루에 있을 때는 투수도 사인을 낸다.

포수가 먼저 사인을 내면 2루 주자가 사인을 훔쳐서 타자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른손 투수가 허리를 구부린 채 검지와 중지를 왼 어깨에 갖다 댄다. ‘포수의 사인 중 두번째 공을 던지겠다’는 의미다. 포수는 가랑이 사이로 손가락 2개, 4개, 3개를 차례차례로 편다. 2개는 커브, 3개는 슬라이더, 4개는 체인지업이다. 투수는 체인지업을 던진다. 공격 사인은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자주 바꾸다 보면 적군을 속이려다 되레 아군이 속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모 프로야구단 A코치는 “우리 팀 선수가 사인을 잘못 보는 경우와 상대에게 간파당하는 경우를 비율로 따지면 8 대 2쯤 된다”고 귀띔했다.

이 코치는 이어 “선수가 타자박스를 벗어나 헬멧을 만질 때는 ‘사인을 잘 모르겠으니 다시 한 번 내주세요’라는 의미”라며 “9회말 투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1점차로 뒤지고 있을 때 나오는 사인은 다름 아닌 ‘홈런 사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글·최경호 기자 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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