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서울 동작구에 사는 주부 윤모(58) 씨는 20대인 외동딸을 어린아이 대하듯 한다. 딸이 출근할 때면 두 팔로 힘껏 껴안아주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엉덩이를 토닥거린다. 딸은 “엄마, 그만해”라며 연신 손사래를 치지만 그럴 때마다 윤 씨는 딸의 볼에 입을 맞춘다.
고등학교 교사 이모(48·성남시 분당구) 씨는 대학 새내기인 딸과 하루에 대여섯 차례 이상 카카오톡 문자를 주고받는다. 부부 교사인 남편과 고등학교 2학년생인 작은딸(17)이 시‘ 샘’하자 아예 ‘가족방’을 만들었다. 이 씨는 “작은아이의 성적이 신통치 않아 대학 진학을 놓고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는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고 귀띔했다.
경기 용인에 사는 박모(44) 씨는 주 2회로 술자리를 제한하고 있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데다 업무상 저녁식사 자리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일주일에 3일은 일찍 퇴근해서 두 딸과 놀아준다.
우리 사회에 ‘가족애 열풍’이 불고 있다. 2001년 9·11사태 직후 미국에서 그랬던 것과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힘들 때일수록 가족끼리 서로 보듬어주고 어루만져줘야 상처를 빨리 치유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상담심리학)는 “엄청난 비극 앞에서 대중이 ‘내 아이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집단 대리외상증후군을 보이고 있다”며 “그로 인해 내 가족을 되돌아보고 소중히 여기는 현상, 즉 ‘외상후 성장과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명애(57) 씨는 11년 전인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로 대학 진학을 앞둔 딸을 잃었다. 영남대 가정학과에 합격한 딸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중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1080호 열차 다섯번째 칸에서 변을 당했다. 이 사고로 황 씨의 딸을 비롯한 192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황 씨는 사고 직후 대구 효목동에서 대명동으로 이사했다. 위로의 말조차 듣기 싫었다. 이사를 간 뒤에도 그는 1년여 동안 집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사고가 난 중앙로역 3층에 가서 딸의 이름을 부르며 몇 시간씩 울부짖기도 했다.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 신세도 졌다. 그러다 집 근처 장애인 시설을 찾아가 설거지·청소 등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반 년 동안 봉사활동을 한 뒤 다른 희생자 가족들과 만났다. 서로 대화하며 아픔을 나눌 수 있기에 황 씨에게 이들은 피붙이나 다름없다.
황 씨는 딸에게 사랑을 다 주지 못했던 한을 봉사로 이겨내고 있다. 황 씨는 현재 대구지하철 참사 대책위원회 간부(사무국장)로 활동 중이다. 사고로 가족을 잃었다는 것은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든 비극이기에 눈물 흘리고 오열하면서 모두 쏟아내라는 게 황 씨의 조언이다. 그래야 덜 아프다는 것이다.

“섣부른 조언·위로보다 대화 원할 때 조용히 응해 줘야”
황 씨 말고도 불의의 사고로 천하보다 귀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또 있다. 4년 전인 2010년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사건 때 수많은 부모들이 피눈물을 흘렸다. 목이 터져라 불러도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자식들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 이인옥(50·고 이용상 하사의 부친) 천안함 유족협의회장도 4년 전 아들을 잃었다.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했던 아들을 먼저 보낸 슬픔을 겪은 그였기에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이용상 하사는 2010년 3월 26일 밤 해군 초계함에 탑승했다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백령도 앞바다에서 순직했다. 이 하사가 많이 아꼈던 막내동생 이상훈(20) 이병은 형과의 약속을 지켰다.
지난 1월 해병대에 입대했고 3월에는 무사히 수료식을 마쳤다.
이인옥 씨를 비롯한 천안함 유족협의회도 봉사활동으로 슬픔을 달랬다. 그동안 협의회는 틈나는 대로 노인요양원 청소 봉사와 기부활동을 해 왔다. 얼마 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는 배식 봉사를 했다.
이 씨는 참사를 겪은 가족들을 진심으로 위한다면 지나친 간섭은 금물이라고 당부한다. 본인이 실종자 가족의 입장이 될 수 없기에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같은 슬픔을 겪은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힘을 모으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이 씨는 전했다.
천안함 사건으로 산화한 고(故) 최정환 상사의 매형 이정국 씨도 자식과 형제를 잃은 가족의 슬픔이라고 일반화해 위로하려 한다면, 갑작스러운 사고로 고통받는 가족들에게 되레 혼란만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심영섭 교수는 “엄청난 비극을 겪은 유가족은 분노로 인해 감정 통제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금은 세상에서 소외된 느낌, 차단된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조언이나 위로보다는 대화 상대를 찾을 때 조용히 응해 주는 수용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최경호 기자 201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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