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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푸르디푸르구나 조선왕실의 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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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위에 한폭의 푸른 동양화가 펼쳐진다. 여백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나무는 시원하게 뻗어나갔고, 기상이 서린 소나무 한그루는 둥근 항아리의 몸을 무섭게 휘감았다. 수줍은 매화는 푸른빛으로 농염함을 더했다.

조선의 명품 청화백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청화백자 특별전 <조선청화, 푸른빛에 물들다>를 열었다. 국내에서 열리는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청화백자 전시로 출품작이 국보·보물 10점을 포함해 500여 점에 이른다.

일제강점기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청화백자 150여 점이 처음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진귀한 조선 전기의 청화백자부터 원숙미를 뽐내는 19세기 작품까지 망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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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경 조선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청화백자는 왕실의 그릇이었다. 왕실은 ‘관요(官窯)’를 직접 관리하며 사군자나 산수·인물·화초·동물 등을 그리도록 했다. 페르시아에서 수입한, 금보다 비싸다는 청화(코발트)를 안료로 만들어 왕실과 사대부, 문인 지식층 등 부유층들이 향유하는 ‘사치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최고 수준의 공예와 회화가 결합된 왕실 미의식의 정수로 불리며 그 명성을 이어왔다.

청화백자 ‘용무늬항아리’에서는 왕실의 권위와 예법이 느껴진다. 가장 오래된 백자인 ‘백자청화흥녕대부인묘지’(보물 제1768호)를 비롯해 홍치이년(弘治二年)이라고 쓰인 ‘소나무 대나무무늬 항아리’(국보 제176호),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국보 제219호) 등의 국보와 보물도 놓치면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청화백자는 화려함을 좀 덜어낸다. 17~18세기 청화백자는 안료 사용이 절제되고 그림도 단순해졌다. 조선 후기 청화백자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당시 사람들이 갈망했던 수복강녕(壽福康寧)이 화려한 민화풍 그림으로 바뀌어 나타나는 것도 이색적인 볼거리다.

글·박지현 기자 2014.10.06

 

기간 11월 16일까지
문의 ☎ 1688-2046
장소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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