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이렇게도 다채롭고 아름다운 언어가 한국어 외에 또 있을까. 시인의 짧은 시 한편 속에서도 순우리말은 이토록 생동감 넘치는 변주로 이어진다. ‘웅숭깊다’는 생각이나 뜻이 크고 넓음, 또는 사물이 되바라지지 않고 깊숙함을 의미하는 순우리말 형용사다. ‘질깃질깃’은 몹시 질긴 느낌을, 사‘ 리사리’는 연기 등이 가늘게 올라가는 모양을 각각 나타낸 부사다.
‘살줄치다’는 연을 얼리다 섰던 자리를 바꾸거나 얼레를 이리저리 넘겨 다시 풀리게 한다는 뜻의 동사다. 수국이 주는 심상이, 시인의 순우리말 시어들을 타고 물레노래가 돼 활기차게 용솟음친다. 순‘ 우리말 시인’ 김두환(78) 시인과 그의 시 이야기다.

한글날을 며칠 앞둔 10월 1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두환 시인은 “매일 시를 쓰고 알맞은 시어를 선택하려 공부를 한다”며 “공부할수록 순우리말의 무한한 세계에 감탄하면서 즐거워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서재 한쪽에는 손때가 완연하게 묻은 두꺼운 국어대사전이 놓여 있다. 벌써 수십차례 보고 또 봤다. 책상에는 언제라도 시를 쓸 수 있도록 원고지가 준비되어 있다. 고령임에도 지치지 않는 문인(文人)정신이다.
약사로 일하며 틈틈이 창작에 몰두
김 시인은 1987년 등단해 제2회 영랑문학상 본상, 제10회 허균문학상 본상, 제2회 한국신문학 대상 등을 수상했다. 주로 서정시를 썼다. 올 7월에 10번째 시집 <어디쯤 가고 있는가>를 출간하는 등 총 10권의 시집을 냈다. 그 사이 책으로 소개된 그의 시만 1,513편이다. 원래 그의 전공과 직업은 시와는 무관했다. 성균관대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36년 동안 약사로 일했던 정통파 약학인(藥學人)이다. 그런데 어떻게 시에 푹 빠지게 됐을까.
“대학 3학년 때 교내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날이 갈수록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더군요. 상도 몇 번 받고 자신감이 붙다보니 어느덧 시를 많이 쓰는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으로 족적을 남긴 고(故) 박재삼 시인이 김 시인의 시를 읽어보고 추천한 것이 계기가 돼 <약업신문>에 고정으로 시를 연재하기도 했다. 약사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시를 쓰고 순우리말을 익혔다. 배움에는 끝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한국어가 얼마나 섬세한 언어인지 알게 됐다.
“우리말이 참 섬세해요. 예를 들어 아‘ 름답다’는 영어로 뷰‘ 티풀(Beautiful)’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이 되지만 우리말로는 ‘아리땁다’, 곱‘ 다’처럼 저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표현으로 나뉘거든요.”
‘눈(雪)’만 해도 우리말로는 ‘함박눈’, ‘진눈깨비’, ‘가루눈’, ‘도둑눈’, ‘소나기눈’, ‘싸라기눈’ 등 10가지가 넘는 표현이 존재한다. 단 하나의 적합한 시어를 고르기 위해서 어떤 때는 꼬박 몇 달을 고민했을 만큼 우리말은 다채로웠다. 김 시인은 “뭘 만들고 손으로 작업하는 일에 능하며 다정다감한 특유의 민족성이 언어에도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곧 여든을 바라보는 노련한 시인에게도 우리말은 나날이 새로운 숙제를 안긴다.
팔순 가까운 요즘도 11번째 시집 준비
충북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던 임보 시인은 김 시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사라져가는 우리 아름다운 고유어들을 캐내서 새 옷을 입혀 세상에 드러내는 일을 한다. 우리말에 대한 사랑과 탐구정신이 언어학자들의 수준을 넘어선 느낌이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기 위해 언젠가는 ‘김두환 시어사전’이라도 따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김 시인은 “나도 아직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요즘도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11번째 시집을 준비 중이다. 이번에도 독자들에게 순우리말을 최대한 많이 소개하려 한다. 김 시인은 “순우리말은 나라와 겨레의 정신을 지키는 근간”이라며 “외국어나 외래어 대신 순우리말을 더 많이 쓰려는 노력이 각계에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이창균/사진·오상민 기자 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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