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사랑한다, 한글!
여름의 타오르는 듯한 햇빛이 증발한 자리마다 엷은 빛들이 고즈넉하게 고여 있다. 여름 해변들은 한산하고 단풍 드는 가을 산은 사람들로 붐빈다.
걸어서 20분 거리의 한강변으로 산책을 나가는 일이 잦다. 바람이 선선해진 뒤 연일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얀 햇솜을 뜯어 말리는 모양새다. 무성한 가지를 공중에 뻗친 나무들이 제 아래 떨어뜨리는 그림자들도 유순하다. 무더위와 습기, 열대야에 시달리며 신경질이 잦았다.
여름 지나면서 나는 더 이상 무기력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는다.
나는 활력이 넘치고 자주 웃는다. 시월이여, 오라! 더위로 잃은 입맛이 돌아오는 것도 이 무렵이다. 파릇하게 돋운 식욕으로 찐 달걀 네댓 개를 앉은 자리에서 꿀떡 삼키는 일도 예사다. 단골 중국음식점에서 동파육을 씹을 때 깊어지는 살맛을 꽉 움켜쥐고 싶다.
사람은 말로 자기표현을 하며 소통하는 존재
더러는 등심 스테이크를 먹으려고 소문난 음식점을 찾기도 하는데, 육즙이 흐르는 두툼한 스테이크를 씹는 맛이 기절할 만큼 좋다. 벗들과 서해안으로 몰려가서 알이 꽉 찬 꽃게찜을 먹을 때, 콩을 갈아 만든 손두부를 파는 음식점에서 혼자 두부로 배를 채우고 돌아올 때, 나는 대체로 인생의 맛이 입맛에 정확하게 비례한다고 믿는다.
말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땠을까? 말들은 어둠 속에서 나와 세상을 비추는 빛이다. 말은 사물을 비춰 사물에 명확함을 부여한다. 사물들이 흐릿하지 않고 명확한 형태를 취하는 것은 말에서 뻗쳐 나오는 한줄기 빛 때문이다.
말은 빛이기 때문에 그것이 없다면 세상은 온통 캄캄할 것이다. 사람은 제 내면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자기 밖의 세상도 도무지 알지 못하면서 마치 장님과 같이 아득한 어둠의 심연 속에 가라앉은 채 무의미한 침묵에 잠겨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말로 자기표현을 하며 소통하는 존재다. 말은 ‘사람살이’의 근본이다. 말은 사람이 배우기 전에 이미 그 안에 내재해 있다. 말은 사람보다 앞선다. 사람과 동물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말에서 비롯된다. 사람에게는 말이 있고, 동물에게는 없다. 사람은 말을 함으로써 연속성을 가지며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로 거듭나지만, 동물은 말을 갖지 못한 탓에 불변의 동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 안에 갇힌다.
“동물은 대상을 움켜쥔 다음에야 자기자신 역시 획득할 수가 있다. 말을 갖지 못한 동물은 사물과 직접적으로 마주한다. 단 한번의 도약으로 동물은 사물과 하나가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동물은, 인간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분량의 자기를 사물에게로 이전해버린다.”(막스 피카르트, <인간과 말>)
말없음은 동물의 한계이자 헐벗음이고 비극이다. 한 철학자가 동물을 세계의 빈곤이라고 한 것도 말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인간은 말로 인하여 인간이다”라는 말을 진리로 인식한다.
내면의 부동하는 침묵에서 떨어져 나온 말은 세상 밖으로 나가는데, 이때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다. 사람이 사람 사이에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라면, 말은 사람을 사람이게끔 하는 근본 요소다. 결국 우리가 사람인 것은 말을 쓰기 때문이고, 우리가 한국인인 것은 한국말을 쓰기 때문이다.
나는 곰상스럽다, 웅숭깊다, 오솔하다, 소슬하다, 소록소록, 대궁, 아늠, 는개, 이삭, 섭돌, 안다미로, 그루잠, 나비물, 강울음, 들마, 비꽃, 눈시울, 고래실…… 따위와 같이 잘 쓰지 않는 토박이 한국어를 사랑한다.
이 말들은 잘 쓰지 않아 소멸할 위기를 맞았다. 보통사람들은 한국어와 한글이 같은 것인 줄 알지만 둘은 다름이 엄연하다. 한국어는 세종임금이 한글을 만들어 쓰기 이전부터 있던 언어다.
한국어가 한국 사람들의 얼과 혼이 깃든 자연언어라면, 한글은 한국인들이 쓰는 한국어를 적는 문자체계다.
언어학자들, 한글의 우수성에 입을 모아 찬탄
잘 알다시피 세종임금이 1443년 음력 12월에 28자를 창제하고 1446년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널리 퍼뜨린 문자체계가 바로 한글이다. 한글은 음성학적 변별요소가 두드러진 문자체계다. 한국인이 먼 선조 때부터 써온 제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있는 문자를 얻은 것은 축복이자 기적이다.
언어학자들의 분류법에 따르면 한글은 표음문자로 분류되는데, 언어학자들은 한글이 다른 문자언어에 견줘 매우 뛰어나다고 입을 모아 찬탄한다. 첫째, 한글은 한국어의 음소를 적는 데 어울리는 체계를 갖췄다. 한글은 음절을 닿소리와 홀소리로 나누는데, 받침은 닿소리가 다시 쓰이게 함으로써 매우 간결하다.
둘째, 한글은 모음조화를 잘 반영하는 문자다. 셋째, 한글은 음성기호로 사용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구조적으로 치밀하며 다채로운 표음의 능력을 갖췄다. 넷째, 한글은 구성원리가 쉽고 간단하다. 그것이 쓰이는 자리에 따라 문자와 소리가 다른 경우가 거의 없다. 한글이 창제되고 반포된 지 600년이 넘도록 오래 그리고 널리 쓰이는 것은 이 문자언어의 우수성 때문이다.
낭창낭창, 가르랑가르랑, 오동통, 둥글다, 동그랗다, 아장아장, 깡충깡충, 빙빙, 송송, 어화둥둥, 붕붕, 아롱아롱, 대롱대롱, 퐁당퐁당, 초롱초롱, 또랑또랑, 송이송이…… 따위의 한국어에서 얼른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 이 단어들을 소리내어 읽으면 한글 자모로 여덟번째 자리에 오는 O(이응)이 받침글자로 중첩되면서 맑은 울림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렇듯 한국어는 음성상징의 비중이 크고 그 분야로 잘 발달된 언어다. 아울러 한국어는 색채 어휘가 풍부하다. 한글이 이 한국어를 문자로 적는 데 부족함이 없는 문자라는 데 안도한다.
나는 날마다 한글로 된 신문들을 읽고 책들을 읽는다. 나의 사색적 삶은 한글 사용 범주를 넓히는 가운데 더욱 풍부해진다. 아, 내가 한글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사랑한다, 한글!
글·장석주(시인·문학평론가) 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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