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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종업원과 동고동락… 신뢰로 기업 일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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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국 사람은 비 오는 날에도 공사한다.’ 방수업체 제이씨테크가 베트남 건설업계에 심어준 인상이다. 제이씨테크 남기수 대표는 “비가 오는 날에는 선풍기로 페인트를 말려가며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한 날짜에 맞춰 일을 끝마쳤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호치민 건설업계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좋아졌다. 한국 기업은 모든 면에서 믿을 만하다는 기분 좋은 소문도 퍼졌다.

남 대표는 원래 건설업과는 무관한 제조업 공장을 운영했었다. 공구 납품 대리점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지만 제조업의 매력에 빠져 본업이 시들해졌다. 직접 부품을 만들어보자며 조양공정이라는 부품 제조업체를 차렸다. 대리점을 운영할 때보다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공장은 어느 정도 기반을 잡기 시작했다. 직원과 수익이 늘자 여유가 생겼다. 회사는 직원들 손에 맡기고 골프와 클럽 활동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그렇게 보낸 후 돌아와보니 회사는 텅 비어 있었다. 거래업체가 거의 다 끊어진 데다 직원들 대부분이 그만둔 상황은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더 이상 끌고 나가기 어렵다는 판단에 10년을 경영했던 회사를 과감하게 정리했다. 그의 3전4기 사업 인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왕 새롭게 시작하는 건데, ‘해외에서 한번 도전해 보자’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가까운 중국 먼저 시장조사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남 대표의 예상과 달리 중국은 중소기업으로 도전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시장이었다. 해외 창업자에 대한 지원도 기대치보다 낮았다. 그러던 중 TV 뉴스를 통해 베트남이 새로운 해외투자 국가로 각광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일단 어떤 나라인지 둘러보고 오자며 베트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03년 4월 베트남에 첫발을 디디고 보니 한국의 1970년대 같은 느낌이 다가왔다. 정감이 갔다. 한국인 투자자에 대한 따뜻한 환대도 이어졌다. ‘그래, 여기서 한번 시작해 보는 거야.‘

남 대표는 첫 사업으로 자판기 사업에 도전장을 던졌다. 더운 날씨이다 보니 시원한 음료를 많이 마실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바로 시련이 닥쳤다. 현지인들 사이에 자판기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았다. 사업을 너무 일찍 시작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또 통역이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해 소통 문제가 생겼다. 결국 자판기 사업은 본격 운영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접어야 했다. 먼저 베트남어를 배운 후 제대로 다시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곧바로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학교 어학반에 등록해 베트남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도 해외 진출을 앞두고 현지어 공부는 진짜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원을 채용하거나 계약할 때 정말 큰 도움이 되거든요. 베트남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이 여유를 갖고 베트남어 공부에 매진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창업자들은 인건비가 저렴하고 화폐 가치와 물가가 싸다는 이유로 베트남을 쉽게 생각한다. ‘투자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도 한다. 그러다가 망해 땅을 친다. 절대로 만만하게 봐선 안 되는 베트남 시장인데, 자만에 빠져 사업을 보는 눈이 흐려지는 것이다.

남 대표도 베트남 생활이 안정돼 자신감이 생기자 재기의 꿈에 부풀었다. 한국 주니어 골프선수를 대상으로 하는 호텔업에 손을 댄 것이다. 그러나 6개월 만에 투자금을 전부 날리고 빈털터리가 됐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은 실패해도 나는 성공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실패의 큰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경영자 스스로가 철저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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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선풍기로 건조작업하며 납기 지켜”

호텔사업 실패 후 3년 동안 죽을 각오로 공부했다. 베트남의 역사부터 관습, 문화, 베트남인의 특성 등 바닥부터 다시 차근차근 훑었다. 2006년의 베트남은 투자 열기가 최고조에 이를 때였다.

특히 외국 유수의 건설·제조기업이 앞다퉈 진출해 공장을 건설했다. 아파트와 빌딩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건설경기가 베트남 경제를 이끈다고 판단, 잘 아는 건설업자들을 찾아다니며 창업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그러던 중 비가 많고 습한 지역임에도 방수·도포사업이 그리 활발하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점에 착안, 건물 방수 전문기업을 설립하기로 했다. 초기 사업자금은 3만 달러. 아내가 고생하며 만들어준 귀한 돈이었다.

그러나 곧장 사업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섣불리 시작했다가는 실패 가능성이 크다는 걸 잘 알기에 마흔넷의 나이에 1년여간 교통비만 받고 시공회사에 도장 기술을 배우러 다녔다. 2007년 드디어 제이씨테크라는 이름으로 세번째 도전을 시작했다. 6개월 동안 휴일에도 쉬지 않고 베트남 현지 직원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종업원들과의 신뢰를 쌓는 것이 최대 관건이라고 보았다. 다른 베트남의 경쟁기업은 도저히 일정을 맞출 수 없다고 한 일을 맡아 밤을 새워가며 납기를 맞췄다. 대형 선풍기를 가동해 비가 오는 날에도 도장 건조작업을 했다. 대표가 현장 작업자와 똑같이 먹고 일하는 모습에 고객은 물론 직원들도 감동했다. 베트남식 작업에 익숙해지면서 한국의 선진화된 방수 기술도 도입했다.

빠른 공정과 우수한 품질로 차별화를 기했다.

외국계 기업의 공장 방수사업도 따냈다. 그렇게 정신 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 새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연매출 3백만 달러를 넘는 알짜 기업으로 성장했다. 호치민에서 가장 큰 방수 기업이다.

남 대표는 “성공했다고 보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지금은 두 번 넘어졌다 세 번 일어서 나아가기 위해 자세를 취하는 단계”라며 “언제 다시 넘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자만하지 않고 한 걸음씩 여유를 갖고 베트남 최고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고 말했다.

글·김상호 기자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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