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이하 <지슬>)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슬>은 지난 1월 26일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제29회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수상은 7년 만이다. 관객도 열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지난 3월 21일 개봉 후 누적 관객 수 2만 명을 돌파했다. 가히 ‘작은 영화’의 ‘큰 돌풍’이라 할만하다.
<지슬>은 1948년 제주 4·3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오멸 감독은 <지슬>을 통해 시대의 비극을 재현하거나 이데올로기를 가르고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일종의 씻김굿을 시도한다. 오로지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제주 사람들의 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찍었다. 그래서 작품의 구성도 신위·신묘·음복·소지라는 4가지 제사 형식으로 이뤄졌다.
오멸 감독은 “제주 4·3사건이라는 한국 근대사의 역사적 비극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상당히 중요하다”며 “개인적으로도 큰고모님이 그때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로 그 사건을 알리는 것과 함께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를 되돌아보는 게 절실했다”고 말했다.
산 자와 산 자, 산 자와 죽은 자 연결
<지슬>의 정서적 클라이맥스는 사람들이 동굴 속에서 감자를 나누어 먹는 모습이다. 흡사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장면이다. 어두운 식탁에서 오직 감자뿐인 초라한 식사지만, 고흐의 작품 속 인물들은 즐겁게 보인다. <지슬>에서도 사람들은 동굴에 모여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하얀 이를 드러낸 채 감자를 까먹고 키득거린다. 지슬은 제주 방언으로 ‘감자’를 뜻한다. 결국 감자를 나누어 먹는 모습을 통해 산 자와 산 자, 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하나의 상징인 셈이다.
오멸 감독은 “4·3사건을 제주만의 역사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사, 세계사의 시각으로 바라봐야한다. 한 편의 영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로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발판 혹은 제안을 <지슬>을 통해 할 수 있다면 그게 영광이다. 또 그런 시도를 앞으로도 누군가는 계속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시대의 희생이 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된 영화는, 영화라는 씻김굿을 통해 결국 살아 있는 자들을 말없이 위로한다.
강렬한 시적 이미지와 그것을 지탱하는 튼튼한 서사를 갖춘 영화, 바로 <지슬>이다.
오멸 감독은 그동안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뽕똘>과 <어이그 저 귓것>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오멸 감독은 왜 제주도에 천착해온 것일까?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시인 이상과 관련된 전위극을 보려고 돈을 꿔서 서울 대학로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배우가 장이 파열돼 공연이 취소됐다. 공원에 한참 앉아 있다가 극장에 찾아가서 따졌다. 억울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극장측에서는 다른 배우가 연습해서 하기로 했으니 3일만 있다가 다시 오라고 했다. 지인한테 돈을 더 꿔서 3일 동안 여인숙에서 버텼다. 하도 억울해서 공연을 두 번 보고 제주로 내려갔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많이 울었다.”
문화적으로 척박한 제주도의 삶이 분하고 억울해서 흘린 눈물이었다. 그는 “중학교 다닐 때까지 비닐하우스에서 촛불을 켜고 살았을 정도로 집안이 가난했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힘들지는 않았다. 물질적인 가난이야 얼마든지 이겨내겠는데, 내 가슴과 영혼의 결핍은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비행기 안에서 느꼈다. 제주 지역이 문화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런 감정이 몸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화를) 오기로 시작했다”고 했다.

문화 척박했던 제주의 과거 상처 치유
그렇게 시작된 그의 영화는 점점 제주도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스크린에 펼쳐놓기 시작했다. 제주로 마음을 돌려먹는 순간 그의 주변 삶의 깊은 모습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30대 중·후반을 넘어가면서는 이 섬이 내 삶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가 나를 낳고, 제주 섬이라는 또 하나의 어머니가 같이 키워줬다.”
제주도에 대한 애정은 작품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가 차기작으로 기획 중인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작품은 해녀 이야기다.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해녀들이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지역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지역의 영화들이 많은 관객들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도전해보고 싶다.”
오멸 감독은 충무로의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영화 만들기를 모색해왔다. 다음 작품도 그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돈으로 상업영화를 찍어서 그 사람들에게 돈을 벌어주는 역할은 별로 재미없다. 제작비 마련은 숙제지만 제주의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만들어서 지역의 특색과 문화를 확장시켜줄 수 있는 작품 구상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글·지용진(무비위크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