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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긴 잠에서 깨어난 ‘비사벌의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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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19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고적조사를 이유로 우리나라 고분을 발굴해 화려한 금공예품 등 많은 유물을 발굴했다. 이 중 일부 유물은 일본으로 반출됐거나 발굴 이후 행적을 알 수 없는 상태다. 발굴 이후 관리 소홀로 도굴도 빈번히 일어나 정식 보고서도 발간하지 못한 것이 태반이다.

경남 창녕군 교동 고분군도 그 중 하나다. 고분이 발견된 창녕지역의 옛 이름은 비사벌이다. 비사는 ‘빛’, 벌은 ‘들판·벌판’의 순우리말이다. 한국 고대부터 창녕은 지정학적으로 낙동강을 사이에 둔 군사 교통의 요충지였다. 비사벌은 가야 및 신라와 교섭관계를 활발하게 맺었다. 창녕지역 큰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가야’와 ‘신라’가 복합적으로 섞여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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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정치공동체인 비사벌 지배자들의 무덤이던 교동·송현동 고분군이 소개됐다. 가야에서 신라로 넘어가던 4세기 말부터 6세기 초에 형성된 것이다. 100년 전 고적조사에서 금공예품 등이 다량 발견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국립김해박물관에서 마련한 이번 전시는 창녕 교동 고분군이 발굴된 배경을 살펴보며 민족 수난의 역사를 되짚는다. 또한 일제강점기 고적조사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했던 창녕군과 우리 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교동 7호분 조사의 과정과 성과를 알아본다.

비사벌의 지배자가 잠든 고분군인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등 대형 무덤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용도별로 나누어 살펴본다. 유물은 교동 고분군을 비롯한 창녕지역에서 출토된 장신구 등 200여 점을 중심으로 관련 영상과 문서를 함께 전시했다. 특히 교동 7호 무덤에서 출토된 안장 등은 1년간의 보존 처리를 통해 새롭게 공개된 것이다.

교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신발편’은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비사벌과 신라문화를 비교해서 살펴보기 위한 경주 황남대총 출토 유물 등 신라 유물도 함께 전시됐다.

국립김해박물관 김혁중 학예연구사는 “허리띠, 관, 귀걸이 등 비사벌 유물에서는 가야의 토대 위에 신라문화가 활발하게 유입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비사벌의 문화유산을 새롭게 살펴보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박지현 기자 2014.11.10

기간 2015년 3월 1일까지
문의 ☎ 055-320-6800
장소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90 국립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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