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6·25전쟁이 발발한 지 4개월이 지난 1950년 10월 29일, 함경북도 두만강 근처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유엔 참전용사인 조셉 레이즌 힐 롱모어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가 6·25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한국 땅을 밟은 지 3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조셉의 시신은 호주인 목사에 의해 평안북도 박천군에 있는 교회 마당에 묻혔다가 1955년 4월 11일 부산 유엔군 묘지에 안장됐다.
재입대가 사랑하는 가족 지키는 길이라 믿어
조셉은 1902년 11월 13일 호주에서 태어났으며, 스물다섯 살이 되던 1927년 4월 26일 메리 터너와 결혼해 슬하에 딸 넷을 뒀다.
부인과 커피숍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지내던 그는 1940년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한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10년 전의 일이다.
조셉은 중동과 시리아, 그리스, 뉴기니 등에서 근무하며 5년 4개월을 군대에서 보냈다. 1945년 10월 큰 부상 없이 전역해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주유소에서 일하며 가족들을 부양했다. 그리고 딸 셋을 더 낳았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그에게 머나먼 땅 코리아에서 전쟁 발발 소식이 들려왔다. 조셉은 부양할 가족이 8명이나 있었지만, 주저 없이 군대에 다시 입대하기로 결정했다. 1950년 8월 8일 그는 48세의 나이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조셉은 적지 않은 나이였기 때문에 입대가 거부될 수 있다고 우려해 10년을 낮춘 38세로 입대서류를 작성했다. 낮춘 건 나이만이 아니다. 제2차세계대전을 끝내고 제대할 당시 병장이었지만 6·25전쟁 시에는 이등병으로 입대해 싸웠다. 하지만 강한 신념이 적의 총알로부터 그를 지켜주지는 못했다.
조셉의 전사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망연자실했다. 그의 죽음은 가족에게 ‘생활고’라는 또 다른 시련을 안겨줬다. 당시 7명의 자녀 중 4명이 아직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조셉의 부인 메리는 눈앞이 캄캄했다. 호주 정부에서 연금이 나왔지만, 이등병 계급의 유족에게 주어지는 위로금이 전부라 턱없이 부족했다. 그가 전사하기 전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는 병장으로 진급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지만 호주군대는 이 사실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한 부산의 묘비 명판
1년 뒤인 1951년 어느 날 조셉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던 19세의 어린 병사가 메리를 찾아왔다. 그는 다른 전우들에게 조셉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에 대해 메리에게 이야기했다. 또한 자신을 포함한 모든 군인이 그를 ‘아빠(pop)’라는 애정 어린 별명으로 불렀던 사실도 알려줬다. 그해 말 메리는 조셉의 시신을 처음으로 묻어준 목사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편지에는 연락이 닿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조셉을 기독교식으로 안장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메리는 이후에도 힘겹게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했으며, 건강마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급기야 치료를 받기 위해 멜버른에 있는 하이델베르크 보훈병원에 다녔다. 결국 나이가 제일 어린 두딸을 아폴로 베이와 멜버른에 있는 친척집에 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호주 정부는 메리와 딸들에게 빅토리아 국경 부근에 있는 과수원에 일자리를 마련해 줬지만, 메리는 업무환경이 열악한 데다 정든 집과 친구들을 떠날 수 없어 정부의 제안을 거절했다.
메리는 첫째 증손자의 돌을 앞둔 1983년 2월 세상을 마감했다. 죽기 전 메리는 남편 조셉의 이름을 자신의 묘비에 대신 새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딸들은 어머니의 유언을 받들어 묘비 명판에 부모님 이름을 함께 새겼다.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메리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후손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게 우수리사업이다. 우수리사업은 참가를 희망하는 정부기관 중 동의서를 쓴 사람에 한해 매월 월급에서 1,000원 미만을 공제해 저소득 참전용사의 후손을 지원한다. 현재는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필리핀, 태국 4개 국가의 참전용사 후손 1,000여 명을 후원하며, 이는 연간 22억원 규모다.
글·정혜선 기자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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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