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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고향역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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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해마다 추석을 맞는 이맘때면 노천명 시인의 ‘장날’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시를 만나기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우는 막내딸 이쁜이”의 나이를 훨씬 넘어서였지만 그 감정을 고스란히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던 그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내 어릴 적 주변은 참으로 가난했다. 그래서 오곡백과가 익고 모든 것이 풍성한 추석은 언제나 설렘과 기다림으로 이어졌고,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덕담을 주는 어른들의 말씀을 감사히 여기며 마음에 새겼었다.

기차에서 맞이하는 추석이 올해로 딱 서른 번을 채운다. 그동안 세 번이나 강산을 바꾸었을 유수 같은 세월은 귀성길에 오른 승객들의 모습도 많이 바꾸어 놓았다. 이젠 고향으로 가기 위해 기차에 오르는 사람들은 날렵하고 세련된 KTX의 외양만큼이나 모두가 멋지고 행복한 신사와 숙녀들이다. 30년 전 궁색한 보따리를 든 사람들은 이제 쉽사리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풍요 속에는 고달픈 삶의 편린을 간직한 이들이 숨어 있다. 고향을 찾아 나선 사람 모두가 다 설렘과 기쁨에 젖어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유독 올 한해는 추석을 맞기까지 참으로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많았다. 산다는 것이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 사이를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것이라지만 교황방문 때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인지 잘 알게 됐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옛 조상들의 덕담을 떠올리며 때 이르게 다가온 이번 추석의 의미를 반추해 본다. 아마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한 이들에 대한 치유와 위로가 그만큼 시급하다는 의미 아닐까? 비록 설익은 추석과일이 우리의 입맛을 돋우진 못해도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 같은 넉넉한 마음으로 아픈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따스하게 감싸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보는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을 KTX에 오른 우리 손님들의 안전한 귀성을 위해 평소보다 굳세게 조종간을 움켜쥐며 나부터 행복해지고자 마음먹는다. 부디 이 마음이 뒤에 탄 승객들에게 전달되어 행복한 이들은 더 행복하고, 아픈 이들에겐 더욱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귀성열차가 달리는 철길가에 내 조상이 잠들어 계신 선영이 있다. 올해도 기적만 울리는 ‘기적성묘’를 해야 하지만 우렁찬 기적소리를 들으며 모두가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가져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기차는 언제나 희망을 싣고 달린다.

글·손민두 KTX 기장(2004년 4월 1일 고속철도 개통 첫날 첫 운행 기장) 20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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